SK텔레콤과 KT가 '또' 멱살을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장비 무단 훼손입니다. SK텔레콤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쓰일 KT 장비를 무단으로 훼손한 사실이 발견되자 KT가 고소카드를 꺼내며 두 회사의 전면전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KT는 4일 입장자료를 내고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위치한 KT 소유 통신시설 관로를 훼손한 혐의로 SK텔레콤을 고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올림픽 기간에는 세계 언론사들이 대거 기자를 파견하기 때문에 국제방송센터(IBC)에 강력한 보도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서 SK텔레콤 현장 작업자가 KT의 관로를 훼손하고 자사의 광케이블을 설치해 사단이 났습니다.

SK텔레콤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조직위원회의 인프라로 오인해 현장 작업자가 실수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직위원회와는 장비 증설 과정에서 구두로 협의를 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KT의 관로를 훼손한 것은 실수가 맞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는 주장입니다. 취재를 해보니 더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SK텔레콤 내부에서는 ‘수 만건의 공사현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인데, KT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KT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내관에 분명 KT라는 글자가 적혀있기 때문에 ‘고의가 아니었다’는 SK텔레콤의 주장에 더 발끈하는 분위기입니다. KT 관계자는 “현지에 가보면 알겠지만 공사현장은 허허벌판에, 누가 공사하고 있는지 모두가 알 수 있는 장소”라며 “수 만건의 공사현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이번 일은)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가장 중요한 고의성에 대한 부분은 법의 판단에 맡겨두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두 회사가 보여준 충돌의 역사를 통해 그 기저에 깔린 '감정의 소용돌이'를 짚어보겠습니다. 

두 통신사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의 기원을 찾아보면 4G LTE 시절부터 두 회사는 서로 자신의 LTE가 ‘국내 최초’라며 요란한 마케팅을 벌였고, 이를 두고 법적 소송까지 걸기도 했습니다. 실제 커버리지 구역이 좁고 상용화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속도를 자랑했던 4G LTE 시절 초기, 두 회사는 ‘우리가 최초니까 너희는 최초라는 단어를 광고에 사용하지 마’라고 싸웠습니다.

지난해 SK테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전 당시도 생각납니다. 불발되기는 했으나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의 9부능선을 넘었을 당시 KT와 LG유플러스는 연합전선을 구축해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에 성공하면 결합상품 경쟁력이 무선시장에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발했습니다. 결국 인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통합 방송법 소급적용과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등을 두고 으르렁거리던 두 회사는 지난해 11월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습니다. KT가 LG유플러스와 함께 협대역 사물인터넷 표준기술 NB-IoT(NarrowBand-Internet of Things) 상용화를 공동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하며 공식석상에서 SK텔레콤의 로라(LoRa)를 노골적으로 폄하했기 때문입니다. SK텔레콤은 이례적으로 KT와 LG유플러스의 기자회견 직후 입장자료를 내고 "후발주자의 초조함이 엿보인다"며 "상대의 기술을 폄훼한 것에 유감이다"고 비꼬았습니다.

유료방송 발전방안 토론회에서도 SK텔레콤을 겨냥한 KT, LG유플러스 공동전선을 빛을 발했습니다. ‘1위 통신 사업자의 결합상품 경쟁력 무선시장 전이’를 두고 치열한 여론전을 벌였습니다.

올해 4월에는 한 편의 웰메이드 정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KT는 4월12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에서 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는 ‘C-DRX’ 기술을 도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갤럭시S8이 출시되었기 때문에 가입자 유치를 위한 야심만만한 카드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자 SK텔레콤이 나섰습니다. SK텔레콤은 KT 발표 직후 “이미 지난 2016년부터 우리는 C-DRX 기술을 적용해 왔다”며 “KT의 기술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반전은 4월12일 오후에 벌어졌습니다. SK텔레콤의 발표 후 KT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SK텔레콤은 C-DRX 기능을 제대로 모른다”고 재반격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경쟁사의 로그 기록까지 제시한 것으로 보아 하루 이틀 준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KT가 SK텔레콤이 어떻게 움직일 줄 알고 이미 자료를 준비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말이 업계에 공공연하게 퍼질 정도였습니다.

주파수 기술 이슈도 있습니다. SK텔레콤이 4월20일 5밴드CA 기술을 갤럭시S8에 적용해 4.5G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자 KT는 4개의 주파수가 아니어도, 4개 대역에 1개 광대역 4X4 다중 안테나를 적용하면 5밴드CA의 700Mbps가 가능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여기에 LG유플러스는 “5개 대역이 있어도 만족할 수 있는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은근히 KT의 옆에 섰습니다.

7월에는 KT와 LG유플러스가 모바일 내비게이션을 통합, 원내비를 출시하며 SK텔레콤의 T맵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KT의 지니뮤직에 LG유플러스가 투자를 단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영역에서 SK텔레콤과 KT의 경쟁구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를 바탕으로 누구 미니까지 진출했고, T맵과의 연동도 끌어냈습니다. 반면 KT는 IPTV 최강자라는 입지를 바탕으로 기가지니 스피커를 출시해 인공지능 기술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직 인공지능 스피커를 출시하지 못한 LG유플러스는 KT의 AI 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잘 살펴보면, 100%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주로 SK텔레콤과 KT-LG유플러스의 공동전선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대3대2(SKT-KT-LG유플러스) 시장 점유율 구도가 5대5가 되는 순간입니다.

4일 벌어진 KT 시설물 훼손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결국 헤묵은 감정이 연이어 분출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평창올림픽은 두 회사 모두 네트워크의 미래라는 5G를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 훼손된 KT 시설물. 출처=KT

경영학 전문가인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는 두 회사의 최근 충돌을 '시장의 차이에 따른 상이한 접근법'으로 해석했습니다. 정 대표는 “기존 통신시장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치열한 감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시장의 파이가 정해졌기 때문에 두 회사의 전략적인 상생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과 5G 등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에는 초조함이 엿보인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정 대표는 “모든 회사들은 새로운 시장이 열렸을 때 시장선점을 위해 앵커 이펙트(anchor effect) 전략을 구사한다”며 “배의 닻을 누가 먼저 내리느냐에 따라 시장의 향배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초연결 시대의 주역이 되고싶은 통신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상대보다 먼저 닻을 내리려다보니 약간의 불협화음에도 초조함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건전한 경쟁은 지향돼야 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하면 게임의 법칙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어쩌면 두 회사의 신경전은 기술이나 정치적 이슈가 아닌, 경영학적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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