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 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 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土地)입니다. 물론 한 달 전에 21권으로 된 <토지> 한 질을 고객사가 새로 개관한 ‘산마루작은도서관’에 기부했습니다. 독서 시간이 최소 1년 정도는 걸리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죠.

둘째가 알바를 시작했는데, 동네에 새로 생긴 ‘모던주막 월선네’라는 곳입니다. ‘월선네’는 토지에서 등장하는 월선이 엄마가 운영하는 국밥집 이름입니다. ‘월선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그 먹먹한 이야기들이 하나씩 되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어코 엊그제 저녁에 아내와 ‘월선네’에 들러 장터국밥과 김치전에 지평막걸리를 한 잔 걸쳤습니다.

 

# 박경리 <토지>의 연인, ‘월선이’

<토지>의 사랑 이야기 중 가장 가슴 시리고 애달픈 사랑은 용이와 월선의 사랑입니다. 용이와 월선은 서로 사랑하지만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합니다. 월선이 무당의 딸이기 때문이죠. 월선은 남편 봇짐장수의 폭력을 시달리다 다시 마을에 들어와 엄마가 하던 ‘월선네’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월선네’가 모던주막으로 부활했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월선네 장터국밥’, ‘월선이 세트’, ‘임이네 세트’ 등이 있는데, ‘임이네 세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임이네’ 역시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이죠. 용이와 동거하며 월선에게 붙어 사는 아주 악착같고 사악한 여자입니다. 그런 임이네를 생각하니 ‘임이네 세트’는 확 당기는 메뉴는 아니더군요(ㅋㅋ). 메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매장 분위기를 당시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기쁨을 나누는 공간으로 주막을 재현해, 마치 월선네가 내오는 듯한 넉넉한 국밥과 부침개에 누구나 막걸리 한 사발을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애틋한 용이와 월선의 러브 스토리는 덤이죠.

오늘 아침엔 우연히 신문에서 ‘서희건설’의 ‘서희스타힐스’ 광고를 봤습니다. 아, 토지의 주인공. 바로 평사리 대지주 최참판댁의 유일한 핏줄 서희, 그리고 길상이 생각나더군요. 물론 그 ‘서희’는 아니겠지만요.

 

# <천일야화>의 주인공, ‘지니’와 ‘알리바바’

<아라비안나이트>라 불리는 ‘천일야화(千一夜話)’는 이야기가 끊기면 죽임을 당하는 세헤라자데가 샤푸리 야르왕에게 1000일 동안 들려준 이야기들입니다. 그중 램프의 요정 ‘지니’가 있는 ‘알라딘과 이상한 램프’와 ‘알리바바’가 주인공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 있습니다.

‘지니(GENIE)’는 한국에서 두 개의 브랜드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니뮤직(GENIE MUSIC)’은 KT의 음악 서비스 사업과 음악 콘텐츠 전문인 음악 전문 포털 브랜드이며, 또 ‘지니네비게이션(GINI NAVIGATION)’은 현대엠앤스프트의 네비게이션 브랜드입니다. ‘알라딘과 이상한 램프’에서 알라딘의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지니’처럼 음악도 원하는 대로 마음껏 들려주고, 길로 원하는 대로 척척 알려주는 요술 램프 지니를 연상하게 하는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중국 전자상거래 브랜드 ‘알리바바(Alibaba, 阿里巴巴)’는 동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의 주인공 ‘알리바바’에서 가져왔답니다. ‘지혜롭고 착한 알리바바가 못된 도둑들을 혼내주고 부자가 되어 남을 돕는다’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마윈(馬雲) 회장이 선택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전래동화인 ‘흥부전’ 인물 중에서 가져온 브랜드로 ‘놀부’가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메시지와는 다르게 ‘놀부’는 재료에 대한 욕심, 맛에 대한 욕심, 건강에 대한 욕심이라고 스토리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 괴테의 연인 ‘샤롯데’와 그리스 상남자 ‘조르바’

‘샤롯데’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입니다. ‘롯데’의 사명이 이 소설에서 나온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창업자 신격호 회장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감명받아 베르테르의 연인이자, 사랑과 자유를 추구하는 ‘샤롯데(Charlotte)’의 정신을 생각하며 회사 이름을 ‘샤롯데’의 애칭인 ‘롯데(Lotte)’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물론 ‘샤롯데씨어터’처럼 ‘샤롯데’를 그대로 쓰기도 했습니다.

패스트패션의 선구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에서 상남자 ‘조르바’에서 가져와 자라(ZARA) 1호점을 세웠습니다. 원래 그는 매장 간판을 ‘조르바(ZORBA)’로 달았는데, 근처에 같은 이름의 술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글자를 재배치해서 지금의 자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스타벅스(Starbucks)’는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고래잡이 어선 피쿼드호의 일등 항해사 이름인 ‘스타벅(Starbuck)’을 딴 것이고요. 소설은 아니지만, ‘파파이스(Popeyes)’는 한국에서도 방영한 미국 만화 <뽀빠이>(Popeye)의 이름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브랜드로 다시 태어나면, 그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썸을 타게 되어 그 소설의 스토리를 그대로 담아냅니다. 모던주막 월선네, 서희건설, 지니뮤직, 지니네비게이션, 알리바바, 놀부보쌈, 롯데, 자라, 스타벅스, 파파이스에는 평사리 용이의 러브 스토리, 요정 지니의 마술 같은 스토리, 슬픈 베르테르의 애절한 스토리, 자유로운 영혼의 상남자 조르바 스토리, 거친 바다의 고래를 찾아 떠나는 모비딕 스토리가 담겨있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