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영국. 증기기관을 탑재한 28인승 자동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등장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 최초의 자동차는 런던 시내와 인근 도시 정기 노선에 10대가 배치되어 운행을 시작한다.

물론 처음부터 매끄러운 시동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 증기 자동차의 성능은 말이 끄는 마차의 성능과 비교해 크게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2002년 개봉한 가이 피어스 주연의 영화 [타임머신]에 당시 사람들의 시각이 잘 묻어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믿는 가이 피어스는 타임머신을 만들어 시간을 넘나들다가 성능나쁜 증기자동차의 앞을 가로막는다. 증기자동차가 성능이 좋았다면 큰 사고를 당할뻔 했으나 다행히 자동차가 버벅거려 위기를 넘긴다. 이 때 자동차 운전사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이런 물건을 어디에 쓰겠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자동차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동시에 "이런 물건을 어디에 쓰겠어요"라고 비웃던 이들은 새삼 자동차의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게 됐으며, 그 중에는 마차를 몰아 생계를 유지하던 마부들도 있었다.

이들은 증기자동차 보급이 늘어나자 위협을 느꼈고 반발하기 시작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빅토리아 여왕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 이른바 적기조례를 발표한다. '붉은 깃발법'으로 불리는 이 조례안은 1865년 최초로 선포됐으며 세 번의 개정을 거쳤으나 핵심은 하나였다. "자동차가 보급이 되면 마부들이 실직하니 자동차는 말보다 느리게 다녀라"

이 법의 백미는 2차 조례안에서 나오는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의 존재다. 하나의 자동차에는 운전사와 기관원, 그리고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함께 있어야 하며 기수는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의 접근을 사람들에게 예고한다. 자동차가 자동차가 아니게 되는 셈. 다행히 이는 1878년 마지막 개정을 통해 사라졌으나 대신 새로운 규칙이 생긴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정지해야 하며,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는 금지한다"이다. 증기자동차가 연기나 증기를 뿜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이 말하는 것은 자명하다. '자동차를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이후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대신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제조업의 총아라는 자동차 산업 르네상스가 펼쳐졌다.

▲ 최초의 증기자동차 스케치. 출처==위키디피아

붉은 깃발의 후손이자 반대자들
붉은 깃발법으로 사라진 마부를 대신해 자동차를 생계로 삼은 사람들은 당연히 '붉은 깃발의 반대자들'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붉은 깃발법으로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전혀 다른 붉은 깃발을 들어 세상에 없던 신사업에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이제 그들이 '붉은 깃발의 후손'이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난달 카풀앱 풀러스가 유연근무제에 따른 영업시간 확대에 나서자 서울시가 제동을 걸었다. 나아가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주최로 열리려던 토론회가 택시업계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이미 계획되었던 서울시 토론회도 무기한 연장됐다. 국토교통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으며 카풀앱 스타트업가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이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장병규 위원장은 "무리하게 속도를 내어 결론을 낼 수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오는 21일과 22일 예정된 끝장 토론회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는 순간에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김중로, 김삼화, 김경진, 정동영 의원 등 10명이 공동 발의자로 나선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달 23일 발의됐다. 지금까지 카풀 영업시간으로 인정하던 '출퇴근 시간'을 삭제하는 것이 골자다. 황주홍 의원실은 법안 발의의 배경을 설명하며 "최근 택시의 과잉공급 및 과소수요로 택시 사업의 어려움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택시의 감차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카풀을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며 "카풀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동승자에 대한 책임 등의 기준이 모호하여 법적 문제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안 배경설명이 잘 보여주고 있지만, 최근 카풀앱과 택시업계의 충돌 기저에는 '택시사업의 어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문제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각론이다. 여기에서 카풀앱 반대자들은 '카풀앱이 택시사업을 어렵게 만들고, 법적인 보호조치가 완벽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옹호론자들은 '어려운 것은 하루 사납금 14만원을 맞춰야 하는 택시사업의 구조적인 문제이며, 여기에 더 집중해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관건"이라고 맞선다. 법적인 보호조치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지적에는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카풀앱 럭시의 최바다 대표는 "엄격한 기준을 통해 드라이버가 되는 사람이 범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은 낮다"며 "서비스 기간동안 700만 매칭(기사와 손님의 만남)이 있었지만 중대한 사고는 단 한 것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논의를 확장시켜 '카풀앱이 필요한가'라는 논쟁도 있다. 카풀앱 업체들은 "대중교통의 보완재이자, 추후 비슷한 서비스를 가진 글로벌 사업자에 대비해 국내 ICT 역량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택시업계는 "카풀앱이 없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논리만 내세우고 있다.

이번 논의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붉은 깃발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보완재의 개념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마차 외 이동수단 대안이 별로 없었으나 지금은 버스도 있고 지하철도 있다. 결국 카풀앱의 서비스 영역을 어디에 두고 생각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여기에 카풀앱을 우버와 같은 '거대한 공포'로 이해하기 전 '택시사업의 불합리한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린다. 물론 후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카카오 드라이버가 대리운전 업계의 고질적인 산업구조의 불합리함을 해결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으나 상당히 장기간 진통을 겪었던 사례가 그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 지난달 20일 김수민 의원 주최 토론회 파행.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공공의 역할에 대한 관점의 차이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달 29일 배달앱과 숙박앱의 등장으로 소상공인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배달앱들이 소상공인들에게 높은 광고비를 경매식으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그 폐단이 커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배달의민족이 발끈하고 나섰다. 배달의민족은 "명확한 출처나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임의의 수치를 내세우며 배달앱의 ‘베팅식 경매 광고 방식’으로 인해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심각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며 "우리는 2015년 8월 이미 ‘수수료 0%’를 선언하며 건당 주문 중개 수수료를 전면 폐지한 바 있으며, 이에 따라 광고 상품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소상공인연합회가 거론한 200만원 광고 낙찰가에 대해서는 “내부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연 평균 매출은 7억원에 이른다”며 “소수의 ‘기업형 자영업자’를 대다수 ‘영세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소상공인연합회의 흐릿한 도덕성을 꼬집기도 했다.

사실 배달앱을 둘러싼 논란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청문회 당시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배달앱을 공공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현존하는 배달앱을 비판했던 일도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이미 답이 정해진' 교묘한 설문조사를 하며 배달앱을 구석에 몰아넣기도 했다.

물론 플랫폼 사업자의 초월적 갑질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타당하다. 그러나 비판과 견제의 근거가 사상누각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소상공인연합회의 주장은 배달앱에 월 50만원 이상 입찰 광고에 비용을 쓰는 업주가 전체 광고주 약 5만 명 중에서 4%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했으며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등 디지털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기업들이 ‘오버추어 광고’라는 이름으로 실시하는 입찰 광고에 대한 이해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업계에서는 플랫폼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필요하지만 목표에 대한 '영점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바탕으로 지적하는 한편, 비판과 견제로 얻을 수 있는 실익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배달앱에 쏟아지는 비판은 논리적 완성도가 떨어지고 실익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논리가 부족하니 배달앱을 말살시켜도 얻을 수 있는 소상공인들의 이득을 설명할 수 없고, 이와 별개로 ICT 온디맨드 플랫폼 발전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정말 소상공인들을 걱정한다면 현재 이들을 어렵게 만드는 오프라인 핵심 동종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먼저 지적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 출처=배달의민족

뉴노멀 법 격돌
ICT 뉴노멀 법도 화두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지난 9월 대표발의한 전기통신사업부 일부 개정 법률안과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말하는 뉴 노멀법은 포털 사업자에 대한 규제 강화와 정부의 개입, 나아가 포털의 방송통신발전기금 부담을 골자로 한다.

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홍문기 한세대학교 교수는 "포털은 중간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는 구조"라고 날을 세웠으며 김진곤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장은 "재주는 콘텐츠 제작자가 부리고 돈은 포털이 번다"고 꼬집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이제 포털은 육성의 대상이 아닌 대기업이 되었다"며 "뉴스 담당자들이 국민의 관심사를 좌우하는 상황은 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날 열린 다른 토론회에서 김민호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한국 기업의 역차별만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상원 경희대학교 교수는 "정부가 국내 기업규제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에 대한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뉴노멀 법을 두고 찬반이 팽팽하다.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한 네이버가 완전한 공적 플랫폼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원론적으로 이견의 여지가 없다.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네이버의 공룡화는 그 자체로 건전한 견제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국내를 대표하는 글로벌 ICT 업계의 강자이자 공룡이지만 글로벌로 시선을 돌리면 구글과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과 싸워야 한다. 이미 ICT 업계의 전쟁은 국지전이 아닌 무경계의 전쟁이다. 이 대목에서 지금 행해지는 규제와 감시가 오히려 글로벌 기업의 역차별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해결의 실익을 노려라
카풀앱과 배달앱, 네이버 등을 두고 벌어지는 뉴노멀 법의 핵심은 결국 규제다. 규제는 절대악이 아니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문제는 정부와 국회 등이 이 문제를 다루며 일차원적인 생각만 밀어붙이는 대목이다. 카풀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문제의 근원인 택시기사 처우개선 등의 업계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배달앱이 문제라면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네이버 등의 거대 플랫폼이 문제라면 이들을 합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나오고 있는 규제들은 '일단 때려잡자'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 토종 카풀앱이 무너지면 중국 디디추싱과 미국 우버가 국내시장을 쉽게 장악할 수 있고, 배달앱이 휘청거리는 것을 기다려 공공앱을 만들어 동일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몽상에 가깝다. 뉴노멀 법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백번양보해 '때려잡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싶다면 '때려잡은 후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여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셀ID를 탈취해 개인정보를 가져가는 구글에 법적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만만한 국내기업 때려잡기'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주파수 등을 활용해 국가기간 인프라로 활동하는 통신사와 포털사를 동일선상에 두고 방발기금을 징수하겠다는 주장은 초법적 발상이기도 하다.

아직 우리 주변의 붉은 깃발은 너무 많다.

물론 ICT 플랫폼 사업자도 긴장해야 한다. 글로벌 사업자 운운하며 역차별 카드를 빼들어 협박하고 징징거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견제와 비판의 기저에 깔린 진짜 문제제기는 상황에 따라 충분한 위협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제시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