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는 1일 '잔류농약 기준치 초과 야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11월까지 잔류 농약 성분 기준치를 초과한 채소 적발 건수가 400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식약처 측은 “대부분의 채소에서 잔류 농약 성분이 검출됐고, 성분 초과로 부적격 판정을 받는 농식품 수가 매년 줄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주된 원인은 채소 유통 경로에 대한 데이터 부족과 농가에 대한 처벌 수단 미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올 9월까지 기준치 초과한 ‘농약 채소’ 224건.. 11월까지 400여 건

식약처는 올해 9월까지 기준치를 초과한 ‘농약 채소’가 224건이고, 11월까지 적발된 건수를 합하면 400여 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상추나 배추, 무와 같은 일반 채소 뿐만 아니라 고사리, 더덕, 부추, 우엉과 같은 작물들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한 농약이 검출됐다. 잔류농약이 많은 채소는 암과 폐렴, 당뇨와 같은 질병 뿐만 아니라 불임의 원인도 될 수 있다. 식약처 측은 “비록 소량이라도 검출되면 안 되는 카벤다짐이나 카보퓨란 같은 맹독성 물질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제초제에 들어가는 유독 물질들로 이들 성분이 함유된 채소를 많이 먹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

▲ 식약처는 1일 '잔류농약 기준치 초과 채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파프리카, 토마토와 잎 채소에서 기준치를 넘은 농약 성분이 자주 검출된다고 밝혔다(출처=식약처)

도매시장에서 조사된 농산물들도 문제가 많았다. 지난 9월 부산보건환경연구원이 추석 도매시장에 출하된 농산물 80종을 검사한 결과 9종(11.3%)에서 잔류농약이 나왔다. 쑥갓과 취나물, 사과 등에서 프로사이미돈, 카벤다짐과 같은 살충제 성분들이 검출됐다. 부산시 관계자는 “농약이 검출된 농산물은 전량 회수에 폐기하는 게 원칙이지만 ‘농약 채소’가 줄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은 더 심각하다. 서울 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달 2일 발표한 ‘서울 강남지역 유통 농산물 잔류농약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서울 강남에서 유통된 농산물 중 22%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강남 지역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반입된 농산물 6291 건 중 1436건의 농산물에서 잔류농약이 나왔다.

식약처 관계자는 “2015년과 지난해 ‘농약채소’ 적발 횟수가 각각 654건과 653건으로 좀처럼 줄지 않는 추세”라며 “농약 과다살포 농가를 제재할 방법을 농식품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 농기평이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진행한 '농산물 잔류농약 정보사전' 과제 개요(출처=농기평)

‘잔류농약 관리 시스템’ 연구 계속되는데.. 왜 근본 대책 안 나오나

잔류농약과 관련된 문제 제기는 10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게 농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농촌진흥청과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 몇 차례 연구과제를 냈고 시스템 개발도 했지만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하 농기평)은 이미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농산물 잔류농약 정보사전 구축’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시장에서 많이 유통되는 54종의 농산물에서 자주 나오는 농약들을 분류하고, 유통사나 농협 등이 사전에 농약 채소 공급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2004년 식약처도 ‘식품 중 개별 농약의 잔류 시험법 개선 연구’라는 제목의 과제 결과를 내놨다. 잔류 농약 성분들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프로젝트다. 제목은 다르지만 농기평 연구과제와 비슷한 내용이다.

국내 농대 농경제사회학부의 모 교수는 “살충제 계란, 농약 채소, 구제역 등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데 농업 당국에서 대안이라고 내 놓은 과제들이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치고 있다”며 “A 기관에 냈던 프로젝트 산출물을 B 기관에 글자만 바꿔서 제출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꼬집었다.

농가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기 위한 제도도 부족하다. 현재 식약처 기준에 따르면 도매시장 단계에서 ‘농약 채소’가 발견될 경우에는 지자체가 출처를 파악해 행정 처분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마트ㆍ백화점 등 소매 단계에서 농약 채소가 발견되면 ‘주범’을 찾기 어렵다. 조용환 한국농어촌빅텐트 사무총장은 “롯데마트ㆍ이마트에서 판매되는 농산물은 이미 5~6 단계의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친 상품들”이라며 “대부분 직거래가 아니라 산지수집상과 도매시장을 거쳐 들여 오는 농산물들이기 때문에 출처를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조 총장은 “실제로 농가들이 ‘주범’으로 적발되더라도 경고나 주의조치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전했다.

농가 제재조치 강화와 교육ㆍ상호 모니터링제 실시 필요해

‘농약 채소’를 근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학교 급식과 같이 대량 농산물이 유통되는 현장에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매년 계속되는 친환경 농산물 급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해부터 농장 출하 전 사전조사와 유통 전 단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역 교육청과 급식관리지원센터가 협력해 노지 채소와 과일, 버섯류 등을 일제 검사하고, 잔류 농약 기준을 초과한 농가들은 급식 납품을 못하게 한다.

충청남도는 급식 납품 농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함께 농가 간 상호 모니터링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이미 잔류농약 기준치를 초과한 농가들은 단체 급식 납품을 지원하는 공선 조직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부적합 판명 농가 사례들을 꾸준히 도내 농민들에게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남 함양의 정용하 이든농원 대표는 “잔류 농약 적발 문제는 농업의 기초를 회복하기 위한 기초와 관련된 과제”라며 “정부가 가공식품 산업화, 6차산업화만 강조할 게 아니라 1차 산업 현장의 윤리를 회복하는 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