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월 29일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5년간 무주택 서민에게 공적 임대 주택 85만가구와 공공분양 15만가구 등 총 10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대학생·사회초년생 등 청년 주거 지원을 위해 셰어형·창업지원형 등 맞춤형 청년주택 총 25만실(연 5만)을 공급하고 신혼부부에게는 공공임대주택 특별공급 비율 상향 등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2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고령가구에게는 무장애 설계 적용·복지서비스 연계 등 맞춤형 공공임대 5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먼저 정부 발표를 환영한다. 저소득 무주택자들이 집 없는 설움을 얼마나 당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책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년 계약을 해놓고 1년 만에 수천만원을 올려주든지 나가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밤잠을 설친 적이 있고, 창고 같은 반지하방에 사는 세입자가 전세금을 올려주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일을 본 적이 있기에 국토부와 이 정책을 세우고 다듬은 공무원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럼에도 짚고 넘어갈 일이 한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정부 발표를 정책의 대상인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이 납득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번 정책의 주된 대상인 청년층과 고령층에 정부가 마련한 정책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공공임대 주택이 무엇이며, 매입임대 주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청년층이나 고령층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수십 년 취재하고 글을 쓴 기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하물며 이들인들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날 발표문은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쓰는 ‘입말’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그들 사회에서 통하는 ‘문어’를 발표한 것에 지나지 않아 전달력이 형편없다. 발표문 곳곳, 정책브리핑 기사 곳곳에서 나온 용어를 한번 보라. ‘주거복지로드맵’, ‘사회통합형 주거정책’, ‘패러다임 전환’ ‘셰어형·창업지원형 등 맞춤형 청년주택’, ‘공공임대주택’, ‘매입임대 공가’, ‘주거급여’ ‘협력적 주거복지 거버넌스’

이는 그동안 보도 자료에서 자주 등장한 용어로 아마 공무원들이 잘 알리라. 기자들도 잘 아는 용어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찾아보면 될 것 아니냐며 뺨을 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이런 용어들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주거, 복지, 로드맵 등 한자어와 영어를 조합해 짜맞춘 국적불명의 이 용어들은 우리말을 죽이고 국민들이 해독을 못 해 애를 먹게 하는 주범들이다. 번역자, 통역자 노릇을 하는 기자들도 잘 모른다. 그러니 이 정책이 과연 정책의 수요자들인 청년층과 고령층에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왜 ‘용어풀이’는 제대로 하지 않는지 납득할 수 없다.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과 표현을 두고 굳이 어려운 말을 써가며 대책을 세우고 발표하는 공무들의 속내는 무엇인가. 정말로 임대주택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집 없는 설움을 덜어주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런 어려운 말을 쓰고 있으니 받들어 모시라는 관존민비 의식의 발로인가. 아니면 대통령 공약사항을 정책으로 만들어 발표했다는 보여주기 행사를 하는 것인가. 아마도 제일 뒤에 나온 게 답이 아닐까.

이번 정책은 중고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젊은 사무관이 입안하고 서기관, 과장, 국장, 실장, 차관, 장관이 단계별로 수정하고 가필해 빛을 보았을 것이다. 모양새는 그럴듯하고 장관은 발표했으며 포털과 신문지면, 방송은 도배하고 보도했으니 만점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다 된 것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국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발표하는 게 순서다. 그래야만 전달력이 높아져 정책 수요자인 대학생과 청년층, 신혼부부, 고령층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책은 효과를 낸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사무관이 아무리 밤을 새우고 정부가 발표를 하더라도 시큰둥한 반응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입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두터운 보고서를 만들어도 정부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사소한 데에 뿌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관련 부처와 정책 실무자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본인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일반 국민의 눈으로 정책 보고서를 한 번 보고 발표를 해보란 뜻이다. 자녀들이 이 말을 알아듣는지, 집안 어른, 이웃 어르신들이 이해하는지 물어보고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보여주기, 보고형 정책은 그만두자는 제안이다. 좀 쉬운 말로 하자는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