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업종의 귀하고 낮음을 떠나서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직업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되다. 특히 ‘칼을 쓰는 직업’은 위험부담이 많고 다치기 쉬운 직종이다. 칼잡이의 운명은 칼과 함께 시작되고 칼과 함께 마친다. 무인의 명예로운 죽음은 전쟁터가 아니던가. 대장군이 차는 칼에서부터 요리사의 식도, 이발소의 면도칼, 양아치들의 허접한 칼에 이르기까지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칼이 있다.

격이 높은 칼잡이는 생살지권(生殺之權)을 가지는데 판사, 검경, 군인, 의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펜을 칼로 쓰는 직업군으로 평론가, 심사위원, 언론인 등이 있으며 세 치 혓바닥을 칼로 쓰는 직종으로 변호사, 방송인 등이 있다. 회계사, 인사과, 감사원, 사정관 등은 소소하게 칼을 쓰는 행정업무를 한다. 이들은 프로답게 자신의 칼을 잘 갈고 닦아서 사람과 사물을 분석하고 잘라낸다. 칼질의 궁극적인 목적은 병소를 도려내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무리 능숙한 칼잡이라도 실수하면 자신의 칼에 베이거나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가는 ‘국가공인 칼잡이 자격증’을 부여하며 이들을 특별히 관리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쓰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칼은 살기(殺氣)가 많아서 감정적으로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망나니의 칼이 되고 전쟁에 미친 광인의 칼이 된다. 올바른 칼질의 덕목은 냉정하고 차가워야 한다. 감정이 절제되어야 서슬 퍼런 칼날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정곡을 향한다. 가슴은 불처럼 따뜻하고 칼은 얼음처럼 차가워야 한다.

칼잡이의 관상은 보통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훌륭한 무인이라면 서늘한 가을의 서릿발 같은 기운이 느껴져야 한다. 살이 많아서 체중이 많이 나가면 좋은 칼잡이의 관상이 아니다. 체구가 날렵하고 눈매와 입은 작고 가늘어야 한다. 눈의 흰자위가 맑고 피부가 얇으며 투명할수록 훌륭한 칼잡이다. 음성은 맑고 음폭이 굵지 않은 테너바리톤의 목소리가 좋은 상이다.

하급 양아치 관상은 체격은 크고 얼굴이 우락부락하고 눈을 부라리고, 굵은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입술은 씰룩인다.

오랜만에 담금질이 잘 된 보기 드문 칼잡이의 상을 보았다. 얼굴과 목소리, 걸음걸이, 눈빛 등을 살펴보고 인터뷰와 동영상을 꼼꼼히 관찰했다. 칼을 쓰는 자, 이국종 교수의 관상이다.

가늘고 길게 생긴(세장, 細長) 두 눈이 매서워 보이지만 눈빛이 노광(露光)되지 않아서 맑고 청량한 살기가 서려 있다. 선명한 입술라인과 얇은 입 매무새는 절제된 감정을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하는 무인의 의지가 엿보인다. 반듯하게 잘 뻗은 콧날과 얇은 피부는 풍족한 부자의 상이 아니라 절개를 지키며 명예를 중시하는 대쪽 같은 선비의 관상이다. 좌우로 곧장 뻗은 팔자주름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외길인생을 보여주며 쉴 틈 없는 칼질의 기상이 느껴진다. 진심으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따뜻한 심성과 책임감, 동료애는 그린 듯이 길게 뻗은 두 눈썹에서 알 수 있다.

얼굴에 비해 귀가 작아서 소년시절 고단함이 있을 지라도 30대 이후 발복하는 관상이다. 예전에 비해 이국종 교수의 볼 살이 많이 빠진 편이다. 광대뼈가 홀쭉해지면 주변사람의 도움이 없어서 고전 분투하게 되고 두 뺨의 낯빛이 어두워지면 시기와 질투, 구설수에 주의해야 한다.

훌륭한 칼도 벼릴 틈이 있어야 오래 가는 법이다. 이국종 교수에게 충분한 휴식과 수면, 그리고 음악을 즐길 여유가 있기를 바란다. 오래도록 그가 내는 ‘칼의 노래’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