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에이전트는 선수를 대신해서 구단과 연봉 계약을 맺거나 광고 출현, 개인 스폰서 등의 개인 계약까지 맺어주는 비즈니스맨이다. 우리에게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말은 그리 낯설지 않다. 1997년 스포츠 에이전트 이야기를 담은 <제리 맥과이어>를 통해 대중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도 했다. 또 2014년에 개봉된 <드래프트 데이>를 통해 스포츠 에이전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에게 스포츠 에이전트는 축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풋볼 매니저’를 통해 ‘악마’로 각인돼 있다. ‘세계 3대 악마의 게임’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에서 게이머가 감독 역할을 해 축구선수와 연봉 협상을 하려 하면, 불쑥 에이전트가 나타나 부대 조항을 들먹이며 협상을 거절한다. 이에 많은 게이머가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과 계약을 하는 일에 곤혹을 느낀다. 심지어 에이전트들이 너무 비싼 연봉을 제시하자 게이머들이 버그를 남용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게임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가 이 버그를 막기 위해 패치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에이전트가 몹쓸 사람이라고 치부할 만하다. 에이전트는 스포츠 구단이 계약을 할 때마다 등장해 계약 수수료를 뜯어가는 악덕 업주 이미지로, 오늘도 수많은 구단이 그들에게 계약 수수료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바치며 이를 갈고 있다.

▲ 드레프트 데이(왼쪽)와 제리 맥과이어 영화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갈무리

에이전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게임을 하면서 “가끔 협상하고 계약금만 조절하는 것 빼고 할 일 없어 보이는 거렁뱅이”라고 비판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에이전트는 선수와 구단과의 계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면서 보통 5~10%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것이 주 업무가 맞지만, 실제 에이전트 추가 업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에이전트는 선수가 소속된 구단에 불만이 있으면 선수와 상의하고 구단 프론트에게 이적 신청을 한다. 다른 구단으로 이적을 제의하기도 한다. 희망하는 구단이 있으면 대상 구단과 접촉해 영입이나 이적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에이전트가 관리하는 선수가 구단에서 방출되면 책임을 지고 새로운 구단을 찾아주어야 한다. 새로운 구단으로 이적했다면 선수가 쉴 수 있는 집을 찾아 나서야 한다.

특히 에이전트는 재산과 납세를 철저히 관리해 선수들이 탈세와 같은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돕는다. 모든 법률지식을 동원해 선수가 법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시 재빨리 처리한다. 이 때문에 변호사 출신 에이전트가 많다. 보험이나 상해처리 등 모든 의료서비스 등의 혜택들을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 전문적인 상위 에이전트는 선수들의 개인 훈련 스케줄 프로그램부터 식단을 마련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이외에 에이전트는 광고 출연 계약을 비롯해 선수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위한 커리어를 설계하기도 한다.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스포츠 협회에 악법을 개정해달라고 에이전트들이 모여 공동 성명을 내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수십명의 선수를 상대로 에이전트 단 한 명이 이 업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선 극한 직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에이전트의 노고가 있기에 프로선수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선수가 법이나 재산 등 운동 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서다. 굳이 비교하자면 에이전트는 부동산 중개인과 여행사 여행 컨설턴트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고용인으로 하여금 이용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람이다.

특별한 역할을 하는 만큼 에이전트 시험도 존재했다. 2014년 폐지돼 지금은 역사 속에 사라진 FIFA 에이전트 제도는 100명이 지원하면 몇 명만이 합격할 정도로 시험 난이도가 높았다. 거기다 전 문제가 영어인데, 영어 난이도는 웬만한 대학 강의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민법과 상법, 형사법, 국제법 등 법률지식도 필요하다. 합격하면 약 20만스위스프랑(약 2억2500만원)의 보증보험금도 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여러 논의 끝에 FIFA에서 폐지했다. 2015년부터는 중개인 제도로 변경됐다. 각국의 협회에 필요한 서류와 중개인 보험 가입증명서, 우리나라 기준으로 등록비 70만원만 있으면 누구든 중개인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 각광받는 스포츠 에이전트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해외 스포츠 무대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제 해외에서는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아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선 일찍이 대형 스포츠 에이전트를 설립,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의 수익 또한 대단하다. 2015년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이전시 47개를 선정했다. 포브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에이전시의 총 계약 금액은 376억달러(약 40조5700억원)에 달하고, 커미션으로 가져가는 금액은 약 18억5000만달러(약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에이전시인 크리에이티브 아티스츠 에이전시(CAA)는 선수 계약 규모만 2015년 기준으로 약 64억달러(약 6조9000억원)에 육박한다. 수수료로 받은 금액만 약 2억6000만달러(약 2800억원)다. 이 에이전시에는 미국 미식축구 리그인 내셔널풋볼리그(NFL)의 에이전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트리오 에이전트인 지미 섹스턴, 톰 콘던, 벤 도그라가 근무한다. 이들은 2015년 한 해에만 총 26억달러(약 2조8050억원)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했다.

유명한 에이전트 중에서는 야구에선 스캇 보라스가 단연 ‘원탑’이다. 그는 미국의 스포츠 에이전트 중 야구와 관련된 가장 거대한 에이전트 조직인 보라스 코퍼레이션을 이끄는 대표다. 우리나라에선 야구선수 박찬호의 에이전트로 유명하다. 선수의 나이와 신체능력 발전에 대한 리포트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한 몸값 협상을 처음 선보인 인물이기도 하다. 뛰어난 협상 능력과 특유의 배짱을 가진 에이전트로 ‘US TODAY 선정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인물 5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연봉 협상 능력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스캇 보라스는 MLB 30개 구단 모두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보통 5%의 수수료를 받는다. 미국 시장은 연봉 규모 자체가 600억달러 정도 되기 때문에 많은 에이전트가 활동하며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스콧 보라스가 세운 보라스 코퍼레이션은 크리에이티브 아티스츠 에이전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총 17억달러(약 1조8340억원)의 커미션 수입을 올렸다.

해외 축구에선 조르제 멘데스와 미노 라이올라가 유명한 에이전트다. 이 둘은 유럽 축구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손꼽힌다.

조르제 멘데스는 대형 축구 에이전시 제스티후테의 창립자로, 현재 축구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거물 에이전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다멜 팔카오 등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은 물론 주제 무리뉴,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등 명감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9년 포르투갈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1644억원에 이적시키면서 약 10%에 해당하는 164억원의 로열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운영하는 에이전시 제스티후테는 2015년에 총 10억달러(약 1조790억원)의 계약을 이끌어 냈다.

조르제 멘데스와 함께 축구 에이전트계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미노 라이올라는 이름만 들어도 ‘억’ 소리 나는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의 에이전트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비롯해 헨리크 미키타리안, 폴 포그바, 마리오 발로텔리, 막스웰, 에티엔 카푸에, 블레즈 마투이디, 그레고리 반 데르 비엘, 로멜루 루카쿠, 잔루이지 돈나룸마 등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유벤투스의 레전드인 파벨 네드베드의 에이전트이기도 했다. 다수의 이탈리아 출신 선수들이 그와 에이전트 계약 중이다.
 

에이전트 제도가 불편한 국내 프로 구단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스포츠 에이전트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직업이다. 국내 프로 축구 리그의 경우 중개인 제도를 인정하고 있으나 프로 야구, 프로 배구, 프로 농구에서는 에이전트를 인정하지 않거나 제한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스포츠 시장에서 선수들의 몸값은 체감상으로는 고액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질적으로 일부 최상위 선수들만 연봉이 높다. 이 때문에 에이전트 시장은 협소하다. 또한 제도적으로도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와 같은 대형 에이전트가 생겨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도 에이전트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대부분 구단은 에이전트 제도로 인해 연봉 지출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선수 통제권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각에선 지난 시간 동안 큰 무리 없이 리그와 구단을 운영해온 탓에 선수의 기본 권익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2012년 김연경 프로 배구선수가 터키 이적을 둘러싸고 일어난 형평성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김연경 선수는 터키 프로 배구팀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 요건과 관련한 국내 규정의 해석과 계약 관계를 두고 구단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국제배구연맹이 직접 나서서 갈등을 봉합했다. 이때 선수의 권익과 신분 보호를 위해 국내에도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야구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프로 야구에서는 전통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때 선수와 구단 관계자가 직접 만나도록 하는 대면 계약 제도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001년에 시정명령을 내렸고, 한국야구위원회 규약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개정된 규약에서도 변호사만 선수를 대리할 수 있었고 2인 이상의 선수와 계약에는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해 에이전트 제도를 제한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칙을 통해 대리인 제도 시행을 유보해 사실상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국내 프로 야구 선수가 해외 리그에 진출하거나 해외 용병의 국내 입단 계약에서는 에이전트를 인정하고 있다.

국내 A 스포츠 에이전트 관계자는 “국내 프로 스포츠 구단은 에이전트를 고용할 권리에 차별을 두고 있다”면서 “내국인 선수의 에이전트 고용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프로 농구에서도 그동안 에이전트 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야 그 규약을 개정해 내국인 선수의 에이전트도 명목상 허용하고 있다. KBL 규약 제76조에 따르면 구단의 선수 계약에 관해서는 선수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에이전트 이외에 어떤 사람도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없다. KBL이 정한 절차에 따라 등록한 사람만 에이전트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KBL은 국내 선수의 에이전트가 공식으로 활동할 수 있는 등록 제도 자체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국내 프로 농구 선수들은 에이전트를 고용하기 어렵고, 고용하더라도 KBL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에 반해 외국인 용병의 에이전트에 대해서는 자격과 활동에 대해 별다른 제약 없이 인정하고 있다.

국내 프로 농구에서도 이와 관련해 문제가 불거진 사건이 있다. 2005년 2월 KBL 국내 선수 드래프트에서 추첨을 통해 KTF(KT의 옛 이동통신사이름)에 1순위로 지명된 방성윤 선수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 방성윤은 KTF와 연봉 협상 단계에 이르렀고, 방성윤은 스포츠 에이전트 IMG 코리아에 계약 협상을 위임했다. 이에 IMG 코리아는 KTF와 협상을 시도했으나, KTF는 KBL이 내국인 선수의 에이전트 고용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내세워 방성윤과 직접 연봉 협상을 하고자 했다. 문제는 KBL 규정상 4개월 뒤인 2005년 6월 말까지 방성윤 선수가 KTF와 계약 체결을 하지 못할 경우, 5년간 국내 프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에이전트를 통한 협상 문제를 두고 양측의 갈등은 고조되었다. 결국 방성윤과 KTF는 몇 차례 직접 협상을 한 후 2005년 6월 29일 연봉 9000만원에 5년 계약을 했다.

특히 앞서 모든 프로 리그는 해외 국적을 지닌 외국인 선수만 고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반쪽짜리 에이전트 제도를 운영하는 문제가 있다. 국적에 따른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점점 많은 해외 선수가 국내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물론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리그는 해외 스포츠 리그와 달리 외국인 선수와 일부 국내의 해외 진출 선수에게만 에이전트 고용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스포츠 에이전트 관계자는 “이러한 이중적인 규정은 하루빨리 손볼 필요가 있다”면서 “스포츠 에이전트가 활성화되는 것이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의 품격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