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박재성 기자

그가 벽에 붙은 세계지도를 가리킨다. 세계 곳곳에 빨간색과 파란색 스티커가 붙어 있다. “파랑은 우리 회사 대리점이 이미 진출한 지역입니다. 빨강은 진출을 목표로 한 곳이고요.” 이미 파란 스티커는 40개가 넘었다. 이를 50개까지 늘리고 싶어 한다.

이영식 GGM 대표다. 40년 가까이 ‘기어드 모터’ 한 우물만 팠다. 수입산 모터에 의존하던 시절 창업해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이젠 역으로 수출까지 한다. 사명 GGM(Global Geared Motor)에 담긴 열망을 실현했다. 지난 11월 경기 부천에 있는 GGM 본사에서 이영식 대표를 만났다.

기어드 모터 국산화 성공, 핵심부품 자체생산 시설 갖춰

그의 설명이다. “기어드 모터는 우리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손 역할을 합니다. 자동문이든 게임기든 자판기든 전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활용 범위가 넓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문은 사람이 가까이 오면 문을 열어줘야 합니다. 이 역할을 기어드 모터가 합니다. 가전은 물론 로봇에도 기어드 모터가 들어갑니다. 심지어 저수지 수문도 열어줍니다.”

기어드 모터는 ‘기어가 장착된 모터’를 의미한다. GGM은 감속기어가 장착된 소형 감속 모터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다. 생산하는 모델만 1000여종에 달한다. GGM이 생산한 모터는 온갖 자동화기기에 탑재된다. 냉장고, 자동판매기, 게임기, 에어컨, 공장자동화 시설 등에 활용된다.

GGM은 사람 나이로 내년에 40살이 된다. 이 대표가 70대이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기어드 모터에 바친 셈이다. 1979년 4월 회사를 설립할 당시에는 이 대표를 비롯해 직원이 2명뿐이었다. 지금은 150명으로 늘었다. 이 숫자가 GGM이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려준다.

▲ 사진=박재성 기자

창업 계기는 ‘기어드 모터 국산화’로 요약된다. 당시 이 대표는 같은 계통 회사의 기술부에서 일했다. 수입 기어드 모터에 의존하던 시절이다. 그는 결심했다. 회사를 창업해 기어드 모터를 국산화해야겠다고. GGM의 시작이다.

회사가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국산 기어드 모터를 개발해 LG나 삼성 같은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한편 해외에 역으로 수출하는 쾌거까지 이뤄냈다.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이 25%가량이다. 일본 같은 제조업 강국에도 수출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 코트라 수출육성 업체로 선정됐다. 2008년엔 경기 유망 중소기업으로, 2015년 부천 강소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여기에 경기 지역 대표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뤘다. 지난 30여년 장인의 마음으로 기어드 모터에 집중해 얻어낸 결과다.

기술개발에도 소홀하지 않다. 2007년 기존 수명 단축 요인을 없앤 BLDC(Brushless Direct Current) 모터를 개발해 기술력을 인정받은 GGM은 2009년 자체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기술개발에 매진해왔다. 이 결과 컨트롤러, 고강도 감속기, 제빙기 감속모터, 유성 감속모터 등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기어드 모터 핵심 부품을 자체 시설에서 모두 생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업체는 부품을 외주로 받아 조립만 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자체 시설로 자체 가공을 한다는 점은 GGM의 큰 장점이고, 재산입니다. 바이어에게 우리 라인을 보여주면 믿음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GGM의 경쟁력이다.

▲ 사진=박재성 기자

중국산 모터의 위협, 품질경영·팀워크로 맞선다

이 대표는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진 않다고 말한다. 중국산 모터 탓이다. “중국 업체는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계산해보면 원가도 안 나오는 수준입니다. 품질 측면에서는 안 좋을지 몰라도 언젠간 발전된 제품을 내놓을 게 분명합니다. 가격은 더욱 떨어질 것이고 이런 흐름을 조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그는 정면승부를 이야기했다. “자동차가 고급일수록 탑승했을 때 조용합니다. 기어드 모터 역시 마찬가입니다. ‘소리와의 전쟁’이 중요하거든요. 품질이 좋을수록 조용합니다. 이 부분에선 우리가 중국 업체에 확실히 앞설 것입니다. 첫째는 품질, 그 다음은 가격입니다. 소비자는 좋은 품질에, 좋은 가격을 갖춘 제품을 선택할 것이고요.”

고품질 추구는 GGM 경영이념과 맞닿아 있다. 품질은 혼과 인격의 표현이라 믿는 이영식 대표다. 그가 오래도록 흔들림 없이 품질경영을 추구할 수 있던 원동력은 따로 있다. 긴 시간 합을 맞춘 임직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생산부장 7명이 GGM에 근무한 지 30년이 넘었다. 다른 직원도 쉽게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이 대표는 “특별히 잘해준 건 없다”고 말하면서도 회사 대표로서 지켜온 두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 어음을 끊지 않는 것. 둘째, 친인척을 회사에 들이지 않는 것. “지금껏 잘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에 대한 기본 서비스 아닐까요?”라고 그는 말한다.

이 대표는 직원을 채용할 때 똑똑한 사람보단 신뢰가 가는 사람을 찾는다. 이런 사람을 찾는 게 쉽진 않지만 결국 함께 일하다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줌의 아쉬움도 표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에 관심이 많지 않아요. 대학엔 기어드 모터 전공이 없습니다. 이런 기초 뿌리 쪽에 기반이 없어 아쉽죠.”

▲ 사진=박재성 기자

고도 자동화 시대, 기어드 모터 시장 급성장 전망

이 대표는 기어드 모터의 미래를 낙관했다. “앞으로 생활 전반이 고도 자동화 단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집이든 사물이든 공장이든 말이죠. 자동화가 이뤄질수록 더 많은 기어드 모터가 필요합니다.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는 향후에도 사명에 담긴 뜻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한 우물 파기’를 지속할 생각이다. 방향성은 분명하다. ‘글로벌’이다. 내년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참가해 GGM의 비전을 보여줄 계획이다. 집무실 세계지도가 파란 스티커로 뒤덮이는 날까지 이 대표의 도전은 계속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