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특히 1인 자영업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대부분 음식점이나 서비스업 등 친숙한 분야에서 창업하기 마련이지만, 남들과는 다른 것 이른바 틈새시장을 찾아 창업한 이가 있다. RFID태그라는 일종의 전자태그 제조업에 뛰어든 유재형(49) 알에프캠프(RFcamp) 대표 이야기다. 그는 1인 기업으로서는 독특하게 제조업을 선택했고, 14년 차로 접어든 자기의 운영 노하우를 한 마디로 “2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열심히 하면 돈이 벌린다”라고 말한다.

제조업을 혼자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수많은 사람에게 그 방법에 대해 강연하고, 그것도 모자라 책 <1인 제조>, <20년 한 우물 20억>으로 정리해냈다.

“창업 준비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되, 실제 창업 시점은 최대한 미뤄라” “‘이번 달 매출을 얼마 맞추겠다’보다 차라리 ‘재작년 고객 리스트를 다시 찾아 안부전화를 하루에 다섯 통씩 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라” 등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하는 그에게 험난한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더불어 20년 동안 갈 수 있는 방법 등을 물었다. 11월의 시원한 가을날, 서울 시내 한 커피숍 야외 테라스에서 만난 유 대표는 특유의 열정 가득한 눈을 빛내며 인터뷰에 응했다.

'1인 제조업' 생존기

유재형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행정고시 재경직렬에 합격해 관세청 행정 사무관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공무원으로 큰 부침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바로 그 점에 염증을 느끼고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MBA를 취득한 뒤 미국계 벤처캐피털사로 이직했다.

그러다 결국 2004년 특수 RFID태그를 제조하는 회사 알에프캠프를 창업했다. RFID태그는 일종의 무선주파수 인식 기술로, 대부분의 물건에 붙어 있는 바코드를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광학으로 코드를 읽는 방식의 바코드와는 달리, 주파수를 인식하는 RFID태그는 다량의 물건을 한 번에 인식할 수 있다. 유 대표는 RFID태그 아이템 선정의 계기가 “벤처캐피털사에서 투자 담당 이사로 일했다. 투자 대상을 찾다가 내가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창업하게 된 것”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 유재형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한때는 한국과 중국 공장을 합쳐 직원 수 200명을 넘기는 등 전투적으로 사세를 확장했지만, 현재의 1인 기업으로 변모한 것은 2009년이다. 유 대표는 “국내에 영업·개발직원 20여명, 중국 칭다오 공장에 200여명의 직원을 두었다. 하지만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 그와 같은 전략으로는 수익을 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원들이 모두 떠나 1인 기업이 되었지만 나는 고품질 고마진 정책으로 방향을 틀어서 다시 시작했다”라고 ‘1인 제조업 대표’가 된 과정을 설명했다.

혼자서 제조업 회사를 이끌기 위해 그는 ‘직접 생산’과 ‘제품 개발’ 부분을 아웃소싱으로 돌렸다. 유 대표는 그 외에 모든 부분들을 맡는다. 즉 전화를 받고 사무실을 청소하는 일부터, 제품 기획, 마케팅, 관리 업무와 물품의 최종 검수까지 일일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1인 기업으로 8년, 창업 14년 차가 된 지금, 알에프캠프의 매출 규모는 전 세계 특수 RFID태그 시장에서 3위를 차지한다. 국내의 한미약품, 현대모비스, LG디스플레이 등에 납품하고 있으며 해외에는 할리 데이비슨, 지멘스, 토요타 등 30개국에 납품처가 있다.

시장을 좁고 명확하게 봐라, 품질 관리는 확실하게

유 대표는 현재 성취에 대해 “특수 RFID태그의 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서 도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큰 시장은 중국 등 대량생산업체들이 이미 점령했고, 자기는 그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유 대표는 “1인 기업을 할 때 큰 시장을 보려 하지 말아라”고 조언한다. 타깃이 넓으면 아이템의 특색이 다양해지고, 결국 이도저도 잡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시장 규모가 작고 수익률이 높은 업종을 골라라. 초기 자본이 적고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타깃이 작아지면, 자기만의 특색이 단순하고 아주 명확해진다. 여기에 더해 오래 갈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여야 한다”고 장수 1인 기업의 아이템 선정 기준에 대해 충고했다.

사업 초반에는 물론 매출을 내기가 힘들다. 유 대표 역시 2009년 1인 기업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직원들 퇴직금 등으로 엄청난 빚을 끌어안았다. 난방도 안 되는 지하 2층에서 그는 꾸준히, 해오던 대로 제품을 개발하고 잠재고객들에게 샘플을 계속 보냈다.

유 대표는 “최고의 영업은 전시회 참석이나 거대 광고가 아니라 물건의 품질 관리다. 내 샘플을 받은 고객들은 모두 초반에는 소량씩 구매하다가, 결국 뛰어난 품질을 인정하고 고정고객이 됐다. 이 과정이 최소 3년 걸린다. 너무 길고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를 거꾸로 보면 내 고객을 뺏길 염려가 적다는 뜻이다”면서 “현재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30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전 세계 시장에서 3위라는 의미는 이미 나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유재형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유 대표에게는 더 이상 고객이나 매출을 늘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현재 관리하는 규모를 넘어서면 품질 관리에 집중할 수가 없어 제품의 일관성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현재의 매출 규모를 유지하면서 순이익을 올리는 방법이 눈앞의 과제고, 그러려면 아직 남은 빚을 갚아야 한다.

이제는 빚을 거의 갚은 상태라는 유 대표는 “빚을 갚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채권자와 빚 목록을 엑셀 파일로 만들어서 빚을 갚을 때마다 하나하나 지워 나가는 재미가 있다”고 1인 기업 대표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깊은 내공이 엿보이는 말을 했다.

“하루라도 일을 안 하면 가려운 기분이 든다”

그가 묵묵히 1인 기업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중독”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를 해답으로 꺼낸 그는 “단순한 일 중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때 몸과 머리, 감정을 모두 한꺼번에 복합해서 쓰면 정말 즐겁게, 오래 일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통 직장인들은 한 가지 일만 반복해서 하기 때문에 특정 능력만 계속 쓰게 되고, 그래서 쉽게 지치고 피로도가 높다는 것이다. “여러 감각을 한 번에 쓰는 복합 노동이 역량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며 “하루라도 일을 안 하면 가려운 기분까지 든다”는 유 대표에게서 그저 ‘열심히, 꾸준히’ 같은 단순한 열정 외의 것이 엿보였다.

다만 후배 예비 창업자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1인 기업을 하기에 좀 더 적합한 성격이 있고 관계지향, 의존 성향의 사람들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 맷집을 기르고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