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30일 대응계획을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하루 전인 29일에는 사전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내용을 공유하며 구체적인 계획도 알렸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등장과 함께 이에 대응하고 활용하려는 위원회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그러나 총론을 넘어 각론을 향해 나아간다는 위원회의 행보에 약간의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소한 내용일 수 있지만, 조심스럽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구현’이라는 표현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근간을 이루는 핵심 중 하나는 ‘무인(無人)’입니다. 여기서 일자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반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입니다.

위원회가 말하는 ‘사람’을 ‘소비자’으로 한정한다면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은 당위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노동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단적인 사례로 온디맨드 플랫폼을 보겠습니다. ICT 기술을 바탕으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순간 권력은 플랫폼 사업자가 가져가며, 공급자는 자연스럽게 ‘을’이 될 수 밖에 없어요. 4차 산업혁명으로 논의를 확장시키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나아가 무인 시스템에 의한 일자리 축소를 피할 수 없습니다.

대응계획의 1번 챕터 지능화 프로젝트의 2번 카테고리에 ‘사회문제 해결 기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ICT 기술로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핵심 가치입니다. 이는 ‘사람 중심’의 키워드에 가장 부합되지만 역시 ‘소비자’에 해당됩니다. 문제는 대중이 소비자이자 노동자라는 사실이에요.

위원회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보고서가 있지만 늘어난다는 보고서도 있다며 애써 이 부분을 덮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더욱 편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약간 위험합니다.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이번 확정계획에 이 부분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없어요. 단지 일상적인 ICT 기술 발전방안을 제시하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보고서‘도’ 있다”고 넘어가는 것은 문제입니다. 사람, 즉 시민을 ‘소비자’과 ‘노동자’로 정확하게 분류해서 그에 걸맞는 맞춤형 전략을 보여줘야 합니다. 현 정부의 코드에 지나치게 맞춘 레토릭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정책의 식상함을 꼬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발표안은 대부분 데자뷰를 일으킬 정도로 ‘어디선가 본 계획’입니다. 장병규 위원장도 인정했습니다. 다만 장 위원장은 “정책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며 시간을 두고 지켜봐달라는 말을 했어요. 생각해보면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발족했으나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정책은 뻔해요. 현실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정의를 소비자로만 상정하고 ICT 기술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향상만 말한다면,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닐까요.

29일 기자회견에서 스마트시티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스마트시티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지적. 정부는 “시설관리 중심의 기존 u-시티 수준에터 탈피해 스마트 도시재생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단순하게 시설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위원회가 말하는 스마트시티라고 합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시설관리와 지속가능한 경험의 차이를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기자회견 당시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한 기자가 상당히 오랫동안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로 질문공세를 퍼부었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시간인지라 모든 기자의 마음이 급했기 때문에, 썩 기분좋은 경험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장 위원장의 행동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처음에야 질문을 다 듣고 대답도 했지만, 재차 이어지는 질문공세에 “소통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해당 기자의 방식이야말로 ‘진짜 소통’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위원회는 소통을 하려고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나아가 “앞으로 해당 기자가 포함된 언론사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심정적으로 장 위원장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 엇나간 마음일까요? 소통의 범위와 정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미처 던지지 못한 질문을 위해 장 위원장에게 갔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카풀앱 불법 논란을 말하며 “규제 완화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현장의 스타트업들은 어떻게든 결론이 빨리 나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장 위원장은 “내 생각은 다르다”고 하더군요. 큰 그림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장고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동의합니다. 다만 “신사업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위험하고, 규제 완화나 규제 강화 등 빠른 결론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니 “스타트업은 자주 망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신중하게 정책을 입안해 큰 그림을 봐야한다는 뜻입니다.

역시 동의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드라마 대사 하나가 생각나네요. 2012년 드라마 ‘추적자’에서 권력자 강동윤은 이렇게 말했죠. “큰 마차가 먼 길을 가다보면 깔려죽는 것도 있기 마련이지”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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