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의 그림자가 글로벌 전자업계에 진하게 드리우고 있다. 아직은 중저가에 머물러 있지만 중국 ICT 기술과 전자업계의 시너지가 매섭다. '기술에서 한 발 앞선 일본, 한국을 바싹 쫓는 중국의 추격 사이에 끼인 한국 전자업체의 생존비법은 무엇일까란' 질문이 자연 나온다.  '기술에 입각한 초격차 전략에 바탕한 프리미엄 경쟁'이라는 다소 어려운 답이 나온다. '기술' '초격차전략' '프리미엄' 등 3박자를 갖춰야 한국 전자산업은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데이터를 입에 물고 승천하는 용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3월 양회(당의 전당대회에 해당하는 정치협상회의와 정기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회)를 통해 인터넷 플러스, 스마트제조 2025 전략을 발표했다. 인터넷 플러스는 각 산업에 인터넷을 더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며 시진핑 주석의 의지를 바탕으로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가 양회 정부업무보고에서 인터넷 플러스 액션플랜을 제시한 이후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인터넷 경쟁력이 제조산업을 개조하고 바꾸는 알고리즘이다.

더 중요한 것은 스마트제조 2025의 등장이다. 중국 정부는 당창건 100주년인 2049년까지 세계를 선도하는 제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트랙1 조치이며 연매출 2000만위안 이상 대형 제조업 매출 대비 연구와 개발비 비중을 2015년 0.95%에서 오는 2025년 1.68%로 끌어올리기로 하는 등 다양한 세부전략를 내놨다.

이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스마트 팩토리 측면에서 보면 제조업에 ICT 인프라를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단순 제조업에 ICT 인프라를 연결해 '1+1=2'가 아닌 '1+1=10'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잇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 전자업계는 스마트와 초연결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우선 모바일 시대의 핵심인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은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올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21.2%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으나 11.9%의 애플이 불안한 2위를 기록한 반면 중국의 화웨이가 9.9%의 점유율로 바짝 추격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오포가 7.0%의 점유율로 4위를, 샤오미가 7.0%의 점유율로 5위를 기록했다. 1위 삼성전자와 2위 애플을 제외한 3위부터 5위 모두 중국 제조사다. 이들의 점유율을 합산하면 24.8%다.

▲ 오포 스마트폰. 출처=갈무리

중국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톱5에 밀렸지만 중국 업체인 오포와 화웨이가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 2일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포가 점유율 18.9%를 차지해 18.6%의 화웨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직 1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중국 제조사의 반격이 매섭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올해 3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26%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으나 샤오미가 무려 25%의 점유율로 추격하고 있다. 뒤를 이어 비보 10%, 오포 9.6%가 이름을 올렸다.

▲ 샤오미가 인도에서 출시한 스마트폰. 출처=샤오미

미국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시장조사업체 팍스 어소시에이츠(Parks Associates)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삼성전자가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47%의 애플에 이어 29%로 2위를 기록했으나 점유율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대거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수가 많은 편이다.

가전의 왕자라는  TV 시장에서도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 지난해 중국 TV 제조사들은 자국 시장의 75%를 장악했으며 올해부터 조금씩 글로벌 시장을 타진하고 있다. TCL은 로쿠와 협력해 스마트TV 판매량을 늘리고 있으며 하이얼은 미국 GE의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하이센스는 도시바의 TV부문 자회사인 도시바 영상 솔루션 주식 95%을 약 1270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13년 연속 중국 컬러TV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강력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중저가 가전시장을 조금씩 장악하는 한편, 필요할 때마다 미국과 일본 기업을 인수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다.

반도체 시장에서 단연 두각을 보이고 있다. 칭화유니그룹 등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파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샌디스크와 마이크론 인수에 실패했으나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7월 XMC를 인수합병하며 세운 창장메모리를 통해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 후베이성 지방펀드, 후베이성 과학투자 공동투자건설 등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국영 반도체 기업인 XMC는 후베이성 우한에 총 27조원을 투자해 20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규정하고 정부 차원의 막강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향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국부펀드인 국가IC산업 투자기금은 초기 자금규모만 약 21조원이다.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내에 적어도 26개의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전망이다.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막강한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전자업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무서운 점은 '빅데이터 확보'에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와 같은 중국 ICT 기업이 O2O 사업을 전개하며 확보하는 데이터를 하단의 결제 인프라와 연동해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풀어내는 장면이 조금씩 전자업계에서도 엿보인다.

앞으로 중국 전자업계의 대국굴기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가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흐름을 타며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당시 백악관 직속 과학기술자문회의(PCAST)는 칭화유니그룹의 샌디스크 인수 가능성 타진을 두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중국은 TV와 반도체는 물론 자율주행차, 디스플레이, 로봇 등 초연결 전자 생태계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2019년 기준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40%를 중국 업체가 장악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LCD에 이어 OLED 공장 증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DJI의 드론은 글로벌 드론시장에서 부동의 1위며, 글로벌 전기자동차 시장의 1위는 테슬라가 아니라 중국의 BYD다. 컨설팅회사 맥킨지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생산된 전기차 87만3000여대 가운데 43%를 중국 업체가 생산했다. 순수 전기차(B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를 합친 수치다.

▲ BYD의 전기자동차. 출처=이코노믹리뷰 DB

샌드위치 공포 엄습...활로 찾아라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 일본의 전자거인들이 깨어나고, 중저가 시장에서 중국의 오성홍기가 펄럭이면서 한국 업체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2000년대 일본 전자업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일본이 프리미엄 시장을, 중국이 중저가 시장을 장악하며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호 무역주의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1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를 대상으로 일부 세이프가드 권고안을 발표했다.   120만대 초과물량수입과 5만개 부품 이상에 50%의 관세를 매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권고안은 미국 현지에 생산거점을 건설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타격이라는 평가다.

▲ 삼성전자 미국 뉴베리 공장 부지. 출처=삼성전자

특히 부품 관세가 심각하다. 부품생산까지 미국에서 책임지면 가격 경쟁력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기준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월풀이 38%로 1위, 삼성전자가 17%로 2위를 달리고 있으며 LG전자는 13%로 3위다.

해법은 뭘까?  '기술에 입각한 초격차 전략에 바탕한 프리미엄 경쟁'이라는 말이 나온다.  샌드위치 공포가 현실이 되고 보호 무역주의가 극에 달한 현재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기술이라는 것이다.  국내 전자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는 이코노믹리뷰에  "TV와 일반 가전 시장에서 프리미엄 중심의 전략을 펼치며 시장 방어에 나서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반도체에서 삼성전자가 미세공정을 무기로 경쟁자와 기술격차를 벌린 것처럼 프리미엄 전략으로 활로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장기 안목에서 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기본 인프라를 착실하게 다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일본과 중국의 약진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라면서  "정부가 나서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선에서 기업의 기초체력을 기를 수 있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에 대한 이견이 분분한 것처럼 언제 위기가 닥쳐올 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를 인정하고, 긴 호흡으로 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