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산업연구원(KIET)은 최근 '2018 경제산업 전망'에서 내년 한국 경제가 3%의 성장율을 기록하고  무역수지 흑자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한국경제의 주축 중 하나인 전자산업의 미래를 두고는 업계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 (자료사진) 출처=픽사베이

깨어나는 일본 전자 주식회사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2002년 아시아 전자기업의 흥망성쇠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일본의 전자거인  중 하나인 소니의 몰락을 비중있게 다뤘다. 당시 타임은 "1997년까지 사람들은 일본 소니와 미쓰비시의 TV를 구입했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제품을 구입했다"면서 "밀레니엄에 들어서며 이제 사람들은 성능은 소니에 뒤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저렴한 삼성전자를 선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타임의 분석대로 2000년은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전자업계의 지형이 격변한 시기다. 1990년대를 풍미한 일본의 전자거인들이 몰락하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전자기업들이 대약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거인인 소니와 파나소닉 등은 '메이드 인 코리아'의 고품질 전략에 휘청거렸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메이드 인 차이나'에 발목을 잡혔다.  달빛관광(일본의 엔지니어를 한국으로 초대해 단기파티를 열어주는 일)도 불사하며 기술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당시 국내 엔지니어들은 일본 현지 공장에서 교육을 받은 후 숙소에 모여 기억을 총 동원해 자기들이 영역별로 외운 설계도면을 일일히 복기해 맞춰 설계도를 완성했다. 교육은 가능했지만 설계도면과 같은 자료는 일본 공장에서 기밀로 취급돼 외부 반출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게 삼성전자는 샤프에서 TV 기술을 배웠고, 도시바 한테는 반도체 기술력을 습득했다. 덕분에 2000년 이후 글로벌 전자업계의 중심은 '한국'이 됐다.

그러나 2017년 현재, 긴 잠에 빠진 일본 전자거인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는 게 한국에는 새로운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혹자는 '일본 전자 주식회사'의 부활이라고 말한다.

▲ 소니의 새로운 워크맨.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부활의 선봉은 소니다. 1980년대 소니의 베타맥스가 VHS에 밀리며 비싼 대가를 치루고 콘텐츠 시장의 중요성을 간파한 소니는 영국 출신의 노련한 협상가인 하워드 스트링거 최고경영자(CEO)를 내세워 퀀텀점프를 노렸으나 결국 실패했다. 사업부는 각각 다른 목소리만 내고 충돌했으며 사내정치만 심해졌다.

이를 극복한 게 현재의 히라이 가즈오 CEO 체제다. 1984년 평사원에서 시작해 2012년 소니의 수장에 오른 히라이 가즈오는 노트북처럼 실적이 나오지 않는 부문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한 후 조직의 효율화를 다지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어 2014년 9월17일 소니 설립 56년 만에 처음으로 배당을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당시 주주들의 반발이 상당했으나 히라이 가즈오 CEO는 "소니를 위한 일"이라며 일축했다.

2017년을 부활의 해로 규정한 히라이 가즈오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지난 10월31일 소니는 올해 상반기 회계연도 기준 매출 38조2200억원, 영업이익 3조5300원을 기록하며 70년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22.1%, 346.4% 늘어난 수치였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수치였다.

TV부터 살아났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소니는 17.5%의 점유율에 그쳤으나 올해 1분기 39%로 뛰어오르며 깜짝 1위를 기록했다. 물론 전체 점유율과 2500달러 이상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강세가 여전하지만 '찰라의 순간' 보여준 소니의 실력은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올해 3분기 글로벌 TV 시장에서 소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중국의 TCL, 하이센스에 이어 점유율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OLED 진영에 적극 참여하며 올해 IFA 2017을 통해 프리미엄 OLED TV 기술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의 전폭 지원에 힘입어 사물인터넷과 로봇 산업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흐름을 타고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한 소니가 날개를 달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 이미징 센서 시장에서 지난해 기준 무려 44.5%의 점유율을 기록한 가운데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으며 내년 1월 인공지능 반려견인 아이보의 부활도 예고했다. 지난 8월 도쿄전력과 협력해 사물인터넷 사업 제휴를 맺었으며 최근 소니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워크맨을 새롭게 출시하기도 했다.

▲ 아이보 2세대. 출처=갈무리

이 외에도 히타치, 파나소닉, 후지쓰 등 굴지의 거인들도 몸을 일으키고 있다. 부품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차를 아우르는 날카로운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파나소닉은 올해 상반기 차량용 전자부품에서만 13조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한편 테슬라와 함께 세계 최대 차량용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 폭스콘에 인수된 샤프는 11월2일 중관춘온라인이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TV'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후지쓰는 호주 아시아 수출 물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깨어난 일본 거인들이 내수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점이 심상치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