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가 원금 27만원이 600만원으로 불어날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강제추심에 나선 ‘약탈적 금융’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포용적 금융’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의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태다.

장기 연체 채권으로 추심을 받는 채무자와 채권 소각 운동을 하는 ‘주빌리은행’은 11월 28일 예보가 원금 27만6000원 때문에 채무자를 상대로 통장압류와 재산명시신청까지 한 사례를 공개했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거주하는 이 모 씨(39세)는 지난 2003년 대학 학자금이 필요해 솔로몬상호저축은행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 씨는 학교를 졸업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상당 기간 구직활동을 했다. 이 씨가 연체한 것은 이 무렵이다.

이 씨가 솔로몬상호저축은행의 대출을 갚은 것은 2013년. 이 씨는 이자가 다소 낮은 보해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솔로몬저축은행의 돈을 갚았다. 소득이 불안정했던 그는 나중에 보해저축은행의 대출금을 연체하고 말았다.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상당 기간 추심을 받았던 이 씨는 2015년 결혼을 하면서 보해저축은행의 돈을 모두 갚았다.

한편 파산한 솔로몬저축은행의 채권을 관리하던 예보는 최근 이 씨의 급여통장을 압류조치했다. 이로써 이 씨는 솔로몬저축은행의 대출금을 갚던 당시 원금 27만 6000원을 부족하게 입금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씨는 예보가 2014년에 자신을 상대로 소송까지 한 사실도 알게 됐다. 소송이 공시송달절차에 따라 판결이 내려져 이 씨도 모르는 사이에 재판이 끝나 있었다.

원금 27만6000원이었던 금액은 2014년 당시 이자가 붙어 319만원이 됐다. 현재 이 금액은 다시 이자가 붙어 600만원으로 불어났다.

추심 없다가 이자 늘려 강제집행

이 씨는 갑자기 목돈 600만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 소송이 끝났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30만원도 안 되는 돈에 대해 수년 동안 아무런 독촉이나 추심이 없다가 소득활동을 하니까 600만원을 청구하면서 압류와 재산명시신청을 한다는 것은 경제활동을 막는 것과 다름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현재 이 씨의 급여통장은 예보가 압류한 상태다. 현행 예금보험법은 예보가 국세청 등에 채무자의 자료를 요구하여 채무자의 주거래은행과 소득 유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쉽게 파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보는 또 이 씨를 상대로 재산명시신청도 했는데, 이 절차는 채무자가 재산을 밝히지 않으면 법원이 구속도 할 수 있는 일종의 강제집행이다.

이 씨의 채권회수를 담당하는 예보 관계자는 이 씨를 상담한 주빌리 관계자에게 “채무자가 아주 적은 원금도 안 갚고 피해 다닌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빌리 측에 밝혔다.

이 씨는 “이 정도 규모의 적은 원금이라면 보해저축은행의 돈을 갚을 당시 같이 정리했을 것”이라며 “보해저축은행의 대출금이 연체되었을 당시에는 채무 독촉장을 받아 채무 내용을 알고 채무를 변제했는데, 이 경우에는 예보가 채무 안내장을 보내지 않아 미납금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강변했다.

이 씨의 주장대로라면 예보가 전혀 채권관리를 하지 않았다가 4년이 넘은 시점에서 이 씨가 소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압류집행과 재산명시신청을 한 것이다. 예보가 채무자의 경제활동 재개를 막고 있다는 비판을 살 만하다.

이 씨와 관한 채권관리 내역의 확인을 요청하자 예보 관계자는 “개인정보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이 씨가 원금을 갚지 않고 피해 다녔다’는 말의 진위도 의심스러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