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일 전에 이사를 했습니다.결혼후 다섯 번째 이사였습니다.

이사중 두 번은 출장을 가있었고, 나머지도 회사일 한다고

삐끔 둘러보고 간 정도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처음이나 마찬가지로 이사 전 과정에 참여하며,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어 난감함을 겪었습니다.

이제까지 이사는 물론 살림의 전체를 아내 손에 많이 의지하며,

무임승차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거죠.

포장 이사였는데도 웬 일이 그리 많은지,또 살림은 왜 그리 많은지,

이걸 끌어안고, 정리하며 살아온 아내가 대단해보였습니다.

그러며 ‘여자들이 명절병에 이어,이사병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자, 아내가 짠해지고, 정말 미안해졌습니다.

이사를 마치며 또 몇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집안 큰일에 어른의 역할.

이삿날 아버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집을 비워주는 분들의 사정으로 이사 당일 오전에 그들이 집을 비우면,

우리가 오후에 청소를 하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계실 데도 없으니,다음에 오시는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음에도 오신 겁니다.

예상대로 짐을 올리고, 풀어 정리를 동시에 해나가니 얼마나 혼란스럽고 추웠겠는지요?

이삿짐 회사의 나이든 직원이 옛날 시절에는 집안에 큰 일이 있으면

어른들이 반드시 함께 했는데,이제는 그런 문화가 없어졌다며,

오랜만에 이삿집에서 어른의 존재를 보게 되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집을 둘러 보시고,우리와 이삿짐 회사 직원들을 격려하신 후에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시는 팔순 넘은 아버님을 배웅하며, 이제 이런 문화도,

또 오실 어른도 도심에는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들조차도 ’할아버지가 고생스럽게 왜 이런 날 오시지?‘라 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른의 존재나 역할이 얼마나 남을지 착잡해진거죠.

다른 하나는 살림 줄이기였습니다. 나는 살림, 책, 옷가지, 소품등에서 잘 안쓰거나,

유행이 지났거나, 두 개이상 있는 것등은 과감히 버리거나 내어놓으려하는데 비해,

아내는 줄이는 것은 찬성하면서도 앞으로 쓸 일이 있을 거라며

내가 내어 놓은 것 중 많은 것들을 다시 들여놓더군요.

지금도 무얼 찾다가 안보이면 꼭 묻습니다. ‘이것 버렸어요?’

경비 아저씨가 놀랐습니다. 끝도 없이 버릴 것들이 나오는 것을 보구요.

그 주말 마트에서 또 몇 박스 정도를 새로 사오는 것을 보고는 더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옛 어른들이 늙어서 집짓지 말라고 하죠.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하면서 말이죠.

이사도 대충 비슷해 보입니다.그래도 나중에 한번은 더 이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아내에게 이사는 잊고,여행 다녀오라고 하려구요.

또 그때는 더 많은 것을 버리고, 또 내가 귀중하게 생각하고,

보관해 왔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인을 찾아 떠나보내고 싶습니다.

좀 더 가볍고, 단순하게 정리를 하는 겁니다. 또 그 자리를 빌어서

이제까지 고마웠던 분들과 개별적으로 특별한 이별 의식(?)도 해보고 싶습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