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진료기록, 의료영상, 생체정보, 유전정보 등의 의료용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소프트웨어가 의료기기인지를 구분하는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미국 IBM의 ‘왓슨포온콜로지(이하 왓슨)’는 국내에서 의료기기로 분류되지 못해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의료용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적용된 소프트웨어의 의료기기 여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진 데 따라 의료기기와 비(非)의료기기 구분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최근 밝혔다.

식약처는 또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개인이나 업체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예측성을 높이고 관련 산업 발전을 지원할 예정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3월부터 산업계, 학계, 의료계 등의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가이드라인 전반을 자문·검토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가이드라인(안)을 의견 수렴하는 과정 등을 거쳤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식약처는 환자 맞춤으로 질병을 진단·치료·예방하는 의료용 소프트웨어는 의료기기로, 일상생활에서 개인 건강관리에 사용하거나 치료법을 검색하는 제품은 의료기기가 아닌 것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의료기기에 해당되는 소프트웨어는 ▲데이터를 분석해 환자의 질병 유무, 상태 등을 자동으로 진단·예측·치료하는 제품 ▲의료영상기기, 신호획득시스템 등을 통해 측정된 환자의 뇌파, 심전도 등 생체신호 패턴이나 시그널을 분석해 진단·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제품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폐 CT영상을 분석해 폐암 발병 유무 또는 폐암의 진행 상태를 자동으로 진단하는 소프트웨어, 심전도를 분석해 부정맥을 진단·예측하거나 피부병변 영상을 분석하여 피부암 유무를 미리 진단하는 소프트웨어,그리고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치료계획을 수립해주는 소프트웨어 등이 해당된다.

의료기기에 해당되지 않는 소프트웨어는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의료기관에서 보험청구 자료 수집·처리 등 행정사무를 지원하는 제품 ▲운동·레저 및 일상생활에서 건강관리를 위한 제품 ▲대학·연구소 등에서 교육·연구를 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품 ▲의료인이 논문·가이드라인·처방목록 등의 의학정보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법 등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품 등이 있다.

대표적으로 ▲약 복용시간을 알려주고 고혈압 환자의 영양 섭취와 체중 조절을 관리해 주는 소프트웨어 ▲의료인을 교육하기 위해 의료영상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임상문헌·표준 치료법 등에서 치료 관련 내용을 검색·요약해주거나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약물 간 상호작용, 알레르기 반응을 확인하는 소프트웨어 등은 의료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 왓슨이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 출처=길병원 제공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가천대 길병원이 처음 도입한 암 진단 인공지능 프로그램 ‘왓슨’도 비의료기기로 구분된다. 왓슨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전 세계 관련 문헌과 최신 연구자료 등 빅데이터를 단 몇 초 만에 분석한 뒤 암 환자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면서 모든 자료를 접할 수 없는 인간(의사)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 부산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 계명대동산병원, 대전 건양대병원, 광주 조선대병원 등에서 활용 중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왓슨은 처방·진료에 관한 문헌정보를 검색·정리하는 도구로 분류된다. 기존에 나와 있는 논문을 빠르게 읽고 요약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료기기에 해당될 수 없다는 것.

또 식약처는 왓슨에 입력하는 환자 정보 역시 이미 의사가 진단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진단한 정보를 입력하는 점에서도 의료기기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미국이나 중국 등에서도 왓슨은 의료기기로 분류되지 않는다.

참고로 현재 국내에서 의료용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의료기기로 허가된 사례는 없다. 비의료기기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사례도 없기 때문에 왓슨에 기반을 둔 진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도 어려울 전망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기기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국내외 개발 중인 제품들에 대해 제품 개발 동향, 자료조사·분석, 모니터링 등을 통해 위해요소가 확인되면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의료기기로 분류·관리될 수 있다”면서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환자에게는 더욱 정확한 질병 진단·치료로 치료 기회가 확대되고, 제품 연구·개발자에게는 제품 개발 및 시판에 소요되는 기간과 비용 등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