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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밥상 차린 사람보다 치운 사람이 더 고마운 법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12.04  16:42:09
   

연중 바쁘지 않을 때가 없지만 기자나 커뮤니케이션 담당들은 연말연시가 되면 더 바쁘다. 그 무렵 한가한 사람이 있을까 만은 ‘악’ 소리 날 정도로 정신 없는 생활이 된다.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 해가 저물어 감을 핑계 삼거나 새 해가 왔음을 구실로 한번씩 봐야 한다. 사내에서 진행되는 행사도 많고, 내부 회식도 늘어난다. 거기에 언론사들도 한 해를 마감하는 일들로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시로 이런 저런 요청을 할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도 챙기고, 보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어서 평소보다 스케줄이 몇 배로 늘어난다. 매일 술자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어떤 회사는 스케줄이 한꺼번에 몰리는 시기를 피하기 위해 11월에 미리 언론과의 송년행사나 연말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연말을 핑계로 거한 저녁 자리를 가지게 된다. ‘연말, 송년, 마지막’ 같은 대화가 이어지면 자리가 커지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술을 피하기도 힘든 시기다. 큰 돈 들여서 감동 깊은 행사를 준비하는 회사도 있다. 일년 동안의 일들을 독특한 형식의 동영상이나 인쇄물로 만들기도 하고, 정성스런 선물로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비싸고 좋은 음식과 술로 흡족하게 만드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취하게 해 준 사람 고맙지만, 깨게 해준 사람이 더 고마워

사회에 나와서 한번도 경기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지나고 보면 경기가 더 악화되곤 했기에 그나마 그때가 나았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어려운 시국일수록 여론에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회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연말 시기가 되면 의도적으로 저녁 약속은 줄였다. 몸 담았던 회사들이 대부분 예산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그런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았다. 연이은 술 약속이 넘쳐나는 그런 시기에 남들처럼 화려하고 비싼 술을 선택한다고 해서 더 기억에 남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때문에 언제부터인가는 반대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것은 연이은 저녁 술자리로 불편해진 사람들의 속을 풀어주는 해장미팅이었다. 다년간의 각종 술 경험에 의해 알게 된 노하우로 해장에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 했다.

추운 계절 뜨끈하고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요리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12월이 넘어서 기자들과 점심 식사를 위해 만나면 열에 아홉은 쓰러질 듯 피곤하고 초췌한 얼굴이었다. 다들 쓰린 속을 부둥켜 안고 사는 시기다. 이럴 때 평소 맛있는 복국이나 매운탕으로 속을 달래주면 의외로 효과 만점이었다. 전날 저녁 엄청난 비용으로 호사스런 저녁자리를 가졌지만 쓰린 속 때문에 다음날은 여지없이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얼마 되지 않는 가격의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준 사람에게 더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술자리가 대부분 시작할 때는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지만, 어느 정도 술이 오른 뒤부터는 이야기한 내용을 잘 기억하기도 힘들다. 마실 때야 좋지만 다음날은 힘들다. 가끔은 지나치게 마셔서 다음날 점심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기 힘든 경우도 있다. 기업에서 경영진이나 임원들까지 총출동해서 마련한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진 경우다. 중간에 빠져 나올 수가 없어 취할 수 밖에 없다. 그 다음날엔 십중팔구 식사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 하는데, 경험상 몸을 좀 움직이고 뭔가 먹으면서 속을 달래주는 것이 훨씬 낫다.

약속했던 기자가 점심 시간에 쪽잠이라도 좀 더 자기 위해 양해를 구하는 경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식사를 유도한다. 숙취에 핏기 없는 몰골로 나타나지만, 뜨끈한 탕 한그릇이면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돈다. 식사 마칠 무렵이면 원기를 회복하기 마련이고 그뒤에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 훨씬 낫다. 그렇게 회복한 기자들은 어김없이 하루저녁에 수십만 원어치 술을 대접한 사람보다 겨우 해장국 한 그릇 같이 먹은 사람을 더 기억하곤 했다.

술 깨는 노하우를 살짝 전수하기도 했는데, 자는 것 보다 뭔가 먹고 좀 움직이는 것이 훨씬 회복이 빠르다. 차가운 것을 피하고 배를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좋은데,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배 마사지라도 해주면 훨씬 수월해진다. 물을 많이 마시되 맹물만 들이켜면 오히려 속이 거북해지는데 이럴 때 꿀이나 설탕을 살짝 첨가해 먹으면 갈증에 훨씬 도움된다.

이렇게 하는 것을 두고 혹자는 상당히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평을 하기도 했는데, 사실 없는 형편에 기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성 들여 선물을 준비하고 거창한 행사를 마련하고 비싼 술과 고급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한 것을 기억 못할까 만은, 그런 정도에 빗대면 해장국으로 쓰린 속을 달래준 관계도 그에 못지 않다.

술 마시는 방식이 우리나라만큼 독특한 곳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해장하는 방법도 많다. 요색남들이 인기 있는 요즘, 남자들도 요리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요리하고 먹고 난 뒤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맛있는 요리를 차려준 사람은 고맙지만 귀찮은 설거지를 해결해 주는 사람은 더 고마운 법이다.

가끔 농담으로 ‘한국에서 해장국집 문을 처음 연 사람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 하다’고 했말이다. 해장국으로 쓰린 속을 달래는 것이 치료행위는 될 수 없고 경제나 물리학과에는 빗댈 것도 없겠지만, 주당들의 괴로운 속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그런 해장국이라면 상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싶다.

 

지금껏 명절 최고 선물은 하찮은 양말

명절이 다가올 때도 정신 없다. 심적으로도 쫓기듯 하고 실제로도 일이 많다. 선물도 챙겨야 한다. 과장 때까지는 제대로 선물을 보내기도 뭐했다. 뭘 보내야 할지도 몰랐고, 친분이 두터워지지도 않았는데, 주소를 물어보기조차도 쉽지 않았다. 연차가 제법 쌓이고 나서야 선물도 챙겨보냈는데, 친한 기자들 수가 늘어날수록 선물을 보내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지금은 김영란법 때문에 선물 비용도 제한적이다. 출입기자들만 해도 수십 명이고 팀장이나 데스크 그리고 수시로 연락하고 만나는 증권, 금융시장 담당 기자들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한 명 두 명 넣다 보면 몇 백명은 금방이었다. 거기에 챙겨야 할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었다.

재무적으로 힘든 회사 형편 덕에 비싼 선물은 엄두도 낼 수 없었는데,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할 수도 없었다. 그때 의류 계열사가 있었는데, 스포츠양말이 처음 출시되던 때였다. 지금은 아웃도어 의류가 지천이고 스포츠 양말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등산양말은 뭔가 모르게 촌스러웠고, 레저스포츠 양말은 흔하지 않았다.

등산, 골프 같은 야외 활동에 딱 이었다. 백화점에서는 제대로 된 브랜드 스포츠양말 한 켤레가 만원을 호가했지만, 내부 구입가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보내기는 했지만 선물치고 너무 간소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받는 데 부담 없고, 바로 착용이 가능했다. 웬만한 선물은 먹거나 쓰면 없어졌는데, 양말은 늘 신고 다니면서 보내준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장점도 있었다.

한번은 식당에서 구두를 벗고 함께 식사를 했는데 모두 같은 양말을 신고 있어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은 양말을 일부러 신경 써서 구입하지 않는다. 끼워 주기도 하고, 5천원 정도면 마트에서 10 켤레는 장만해서 일년은 버틴다.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아닌 양말이었지만 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수 많은 선물을 주고 받았지만 가장 많이 기억에 남기도 했고, 또 고맙다는 인사를 가장 많이 받았던 것이 바로 그 하찮은 양말이었다. 그게 마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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