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이 재단 체육대회에 동원돼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받은 '성심병원 사태'이후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극심한 노동강도로 간호사 10명 중 7명 이상이 이직을 고려할 만큼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대한간호사협회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는 5.4년에 그친다. 지난해 이뤄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서도 간호사의 76%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하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극심한 노동강도’ 가 꼽혔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임신도 맘대로 못하는 근무환경

근로기준법상 국내 간호사의 근무시간은 일 8시간, 주 40시간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난 법에서 정한 것일 뿐이다.  간호사들은 통상 주간, 저녁, 야간으로 근무시간을 나눠  ‘3교대’ 근무를 한다. 교대를 위한 업무 인계, 약을 환자 처방전과 맞추는 작업 등으로 주 40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최근 간호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한 학생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근로기준법상 근무시간은 일 8시간, 주 40시간이지만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심하면 14시간을 근무한다. 추가 수당도 받지 못하고 근무시간보다 더 일한다고 생각하는 게 의례적”이라고 폭로했다.

강도 높은 근무에도 간호사들의 임금 처우는 좋지 않다. 한국지속가능기업연구회 조중근 회장이 지난 9월 열린  ‘간호인력 부족 해결’ 정책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올해 간호사 평균 연봉은 3634만원으로 나타났다. 상위 25%만이 4150만원을 연봉으로 받고 있었고, 하위 25%는 3120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들은 임신도 맘대로 못한다. 임신자율성을 박탈당하고 있다는 이들의 하소연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간호사는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을 통해 “누군가 (임신)순번제를 어기고 겹치게 임신을 하면 먼저 임신한 사람이 분만 휴가를 갈 때까지 밤 근무를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신순번제는 간호사들이 같은 시기에 임신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병동 내에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임신과 출산을 하는 관행이다.

▲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게시된 간호사 출산 관련 글. 출처=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임신출산을 경험한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임신 결정의 자율성을 파악한 결과 응답자의 30.3%가 ‘자율성이 없다’고 답했다.  임신 결정의 자율성이 제한받은 이유로는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부서내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이 많아서’가 19%, ‘부서 분위기가 자유롭지 않아서’가 12.8%로 뒤를 이었다.

임신 중 초과근로를 경험한 비율도 48.5%에 이르렀다. 임신 중 야간근무를 경험했다는 응답비율은 17.9%였다.

 

인사를 해도, 하지 않아도 계속되는 욕설…간호사 ‘태움 문화’ 
간호사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간호사 업계 특유의 ‘태움 문화’이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의 말, 행동 등을 트집 잡아 혼을 내는 직장 내 괴롭힘 문화를 말한다.  포털사이트에 ‘태움’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병원태움’, ‘간호사태움’, ‘태움문화’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뜰 만큼 태움 문화는 간호사와 연관이 깊다.

한 현직 간호사 이모씨(27)는 이코노믹리뷰에 “과거  빅5라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했을 때 선배(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혼이 나고, 인사를 해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뒷담화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장모씨(31)는 “간호사들은 99.9% 태움을 당했다고 보면 된다. 인사를 했는데도 받아 주지 않고, 오히려 인사를 하지 않았다며 욕설을 했다”면서 “가만히 있는데 발로 차거나 가지고 있는 펜으로 팔이나 손을 툭툭 치기는 폭력도 있었다. 심한 스트레스로 일시 하지마비가 온 동기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차라리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간호사를 그만두고 현재 다른 진로를 택했다. 내 자식은 절대 간호사를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의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전직 간호사 이모씨(29)는 “지각을 하지 않았어도 선배보다 늦게 왔다는 이유로 혼난 적이 많다. 옷을 갈아 입는 순간까지 혼이 났다”면서 “또 직급이 높은 선생님들이랑 밥을 먹을 때만 천천히 먹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밥을 마시는 수준으로 먹어야 했다. 일이 많을 때 밥을 거르는 것은 자주 있었다. 퇴근 시간에도 눈치가 보여 제 시간에 퇴근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사협회 관계자는 “간호사는 생명과 연관된 직종이기 때문에 한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어 생긴 게 태움 문화”라면서 “태움 문화를 비롯해 임신순번제 등 간호사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개선하고, 재방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협회에서도 ‘간호사인권센터’ 설립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콜센터를 먼저 운영해 태움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센터가 가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간호사가 건강한 근무 조건에서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이다. 전문상담원을 배치해 신변 노출 등으로 인한 2차 피해도 예방할 것”이라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시엔 해당 병원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현재 병원 내에서도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간호협회 측에서 간호사 인권 문제와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