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난개발과 노후화 문제는 서울과 지방 구분 없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 특히 지방도시의 낙후는 더 심각하다. 지역을 이탈한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방 중소도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도쿄가 아니라 지방 도시가 급변하는 만큼 한국도 머지않아 이런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도시재생 사업에 투입할 재원은 도시의 생명을 그저 연장하는 데 쓸 게 아니라 도시를 근본으로 바꿔 자생하는 데 투입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동안 50조원을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그 결과 도시재생 관련 자금이란 이름의 ‘혈세’가 전국에 뿌려졌다.

국토연구원 산하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윤주선 박사는 이에 대해 “효용이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맥락에서 윤 박사가 일본 도시재생 프로그램 ‘베링스쿨’을 벤치마킹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간이 책임지고 기획 단계부터 도맡아 지역을 활성화하는 국내형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액티브로컬’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액티브로컬’은 ‘어반하이브리드’, ‘블랭크’, ‘로컬디자인무브먼트’ 등 도시재생 스타트업 3곳의 합작회사다. 이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지난 5월 시작했다. 전북 군산의 작은 시장 ‘영화시장’이 이들의 무대다. 사업비 12억원 규모의 실험 무대가 된 영화시장은 주변 상점에 납품하는 작은 규모의 블록형 도매시장이다. 생산성은 ‘0’에 가까웠다.

공공 디벨로퍼를 표방하는 ‘어반하이브리드’는 영화시장 건물주들을 설득하고, 블록 자체를 책임지고 위탁관리하는 일본의 ‘야모리’ 같은 위탁운영사 모델을 설계해 실험해 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디자인 회사인 ‘로컬디자인인무브먼트’는 공간 내부 콘텐츠들을 담당해 창업자나 기창업자들을 도와주고 전체 마스터플랜을 짜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지역 커뮤니티 전문기업 ‘블랭크’는 지역 상인, 주민들을 직접 만나서 워크숍 등을 통해 친분을 쌓는 일을 맡고 있다.

윤주선 박사는 “최근 도시재생 추세는 서울 연남동과 익선동, 일본의 야나카, 다이칸야마, 영국의 쇼디치 등 단일 건물이 아닌 소규모 도보권으로 재생의 단위가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해 개별 건물이 아닌 하나의 타운으로 정의하고 영화시장의 브랜딩과 홍보,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시설 유지관리, 공간개선 등을 일괄로 위탁하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영화시장의 점포들은 체류·업무·상업 등을 담아낸 복합시설로 개발돼 창업자 등 새 주인을 찾는다.

로컬디자인인무브먼트 김수민 대표는 “시장 활성화보다는 일종의 재생이 필요한 블록으로 보는 데 의견 일치를 했다”면서 “단기에 ‘맛집 거리’ 같은 걸 만들어 급하게 활성화하기보다는 장기간에 살아남을 수 있는 동네를 만들고, 이후 활성화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공정한 상황들을 어느 정도 예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역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직간접으로 지역 이익을 공유하는 형태를 마스터 플랜 안에서 설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개발을 통한 수익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는가도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대표는 “새로 들어오는 창업자들이나 이 공간을 오피스나 숙박 체류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지역 내부 자원을 얼마나 활용하는지, 다른 가게에 얼마나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장기로 지역의 전문성을 성장시킬 어떤 요인들을 가져갈지 등을 고민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액티브로컬 측은 공적 자금도 결국에는 지역을 활성화할 지역 주체나 외부 전문가군에서 투자 형식으로 주어져 책임을 갖게 해야 한다고 도시재생 사업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들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단순히 그 효과를 매출이나 방문객 수 이외에 지역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할 지표들을 개발하는 것도 병행한다고 설명했다.

영화시장 프로젝트는 내년 상반기 첫 입주자를 맞을 계획이다. 현재는 ‘액티브로컬’ 컨소시엄과는 별도로, 직장인 퇴사준비와 창업 교육 기관인 ‘퇴사학교’를 운영하는 ‘언더독스’가 마케팅을 맡고, 서울 양천구의 협동조합 ‘동네발전소’, 프랜차이즈 실무자 모임 ‘공유FC’ 등이 영화시장 창업자들의 실무교육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