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53만개.’ 이는 구글 검색창에 ‘도시재생’을 검색하면 나오는 자료의 숫자다. 이처럼 쉽게 찾을 수 있는 말이지만 도시재생이란 말은 여전히 낯선 무엇으로 남아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조차도 도시재생이란 말의 정의를 쉽게 내리지 못한다. 서울과 부산의 폐공장이나 창고를 철거하지 않고 약간의 리모델링만으로 개성 있는 전시장으로 만드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선진국에서 유행한 양식의 개성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도시재생일까.

인구 증가, 경제 성장에 힘입어 급격히 팽창한 우리나라 도시들은 한결같이 ‘빠르게 늙는다’는 중병을 앓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3년 사회·경제·환경 지표를 통해 전국 3470개 읍·면·동을 분석한 결과 65%에 해당하는 2239곳에서 인구가 감소하는 등 ‘쇠퇴’가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4년이 지난 현재 쇠퇴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늙어가는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거주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본격 도입된 도시재생은 도시 낙후를 막기 위한 대안책으로 제시됐지만 철거, 수익 개발, 환경 파괴 등 기존의 개발 사업과 같은 사회적 분쟁을 야기하기 일쑤였다. 도시재생 역사가 십여년이 훌쩍 넘어선 이제는 물리적 정비 위주로 추진된 재생사업의 한계를 넘어 사회전반의 합의를 바탕으로 도시가 생기를 되찾고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되살아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뉴딜’은 1930년대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마비 상태에 빠진 미국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정부가 채택한 제반 정책을 일컫는다. 조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당시부터 기존의 ‘도시재생’에 ‘뉴딜’을 붙인 ‘도시재생 뉴딜’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사업을 적극 펼칠 뜻을 내보였다. 출범 7개월여가 지난 지금 한국의 도시재생 뉴딜은 어디까지 왔을까. 도시재생 사업이 진정한 ‘뉴딜’ 사업으로 청년 일자리까지 맡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까.

 

도시재생과 일자리, 이질적인 가치의 연대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당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첫 번째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정부 출범 후인 지난 5월 국토교통부내 내 도시재생 뉴딜사업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두 달여 뒤인 7월에는 ‘도시재생사업기획단’을 공식 출범시키는 등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향후 5년간 해마다 10조원씩 총 50조원을 투자해 전국 500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 개선을 본격화할 계획을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은 우리동네살리기, 주거지원정비형, 일반근린형, 중심시가지형, 경제기반형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진행된다.

국토부는 올해 초 제7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울 창동, 상계 일대와 대구 서·북구, 부산 영도구 봉래동, 울산 중구 중앙동, 충북 충주시 성서동, 전북 전주시 풍남동,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등을 국가지원 도시재생지역으로 선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과 차별화를 이룬다. 도시재생특위 위원이기도 한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기업이나 프로젝트, 또 건설 공사가 늘어나는 데 따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도시재생이란 구도심 등 낙후 지역의 환경을 개선해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사업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산업화·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단기간에 발전했지만 고령화, 1·2인 가구 급증 등 사회경제 변화 역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 시기 정부의 공급 위주 정책과 재정비 사업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내면서 도시재생은 화두가 됐다.

문재인0 정부는 도시재생 사업을 신 성장동력처럼 여기고 있지만 그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호병 단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시재생 사업은 도시 재개발 사업과는 달리 수익이 안 난다”면서 “일자리 창출이란 입장에서 보면 비용 대비 성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1호 공약’ 50조원 투자, “서울은 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1호 공약인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골자로 한 8.2 대책에 ‘발목’을 잡혔다. 국내 도시재생 사업을 선도한 서울에서 올해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서 배제됐다. 국토부는 대책 발표 당시 투기과열지구인 서울 전역과 수도권, 세종시 등을 올해 사업 대상에서 뺀 것이다.

서울시는 여전히 반발한다. 서울시는 자체 예산으로 하는 사업은 계속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관계자는 11월 23일 “올해만 도시재생사업 활성화지역으로 14곳이 지정됐다”면서 “이 중 국비를 지원받는 사업은 창동·상계, 가리봉, 해방촌, 창신·숭인 등 4곳에 불과하다면서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진행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이미 지정된 사업인 이상 진행한다”고 못 박았다.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 전체 면적의 4분의 3이 쇠퇴지역”이라면서 “국토교통부가 내년 도시재생 사업에서 서울시를 선정해야 한다”고 지원 사격에 나섰다. 도시재생 특별법에서 정하는 법정 쇠퇴기준에 따르면, 2013년 시 전체 면적의 약 76%가 해당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런던대 UCL 인문지리학과 펠로우인 김정후 한양대 도시대학원 특임교수도 도시재생사업의 판단 기준은 ‘쇠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을 이해하나 차선책을 찾지 않고, 도시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서울이 제외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재생 활성화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지역들의 주택 거래 가격 증감률과 서울시 전체 주택가격 증감률을 주택유형별로 전수조사한 결과, 도시재생사업과 부동산 투기와의 연관성은 매우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도시재생 사업은 다른가요?” 이주민의 눈물

서울에서 도시재생은 2002년 뉴타운사업이 시작된 이후 그 논의가 시작됐다. 무분별한 재개발 사업은 서울의 역사를 파괴하고 가난한 원주민을 몰아냈다. 투기판이 된 재개발 사업장에는 폭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때 주민들과의 합의를 거쳐 소규모 정비사업을 함으로써 환경을 개선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인 도시재생 사업을 한다는 외국의 사례들이 공론장에 등장했다.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사업이라 정부가 주도하고 나섰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보니 도시재생 사업도 변형된 재개발 사업으로 전락했다. ‘마중물’이란 이름으로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다양한 종류의 기금과 지원금이 새어나갔다. 민간 개발업체들은 자본과 기술력이 있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머뭇거렸다. 주민들은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에 시달렸다.

종로구 익선동에서 활동하는 도시재생 스타트업 ‘익선다다’가 최근 고민에 빠진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슬럼화된 익선동을 그야말로 ‘핫한’ 동네로 만든 주역인 이들이 둥지 내몰림을 걱정하는 신세가 됐다. 박현아 익선다다 대표는 “3년이면 계약이 보통 완료되는데 집주인이 월세를 올릴까 봐 걱정이 된다”면서 “다른 많은 가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익선동이 개발되기 전에는 쪽방에 월세를 사는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에 대한 책임도 느껴 임대주택을 조성하는 건 어떨까 하는 고민도 했다”고 토로했다.

최창규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은 한 끗 차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관 주도로 이뤄지는 우리의 도시재생 사업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주민들 합의를 이끌고 주민 자치역량을 키우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적극적 개입은 도시재생의 틀에서 벗어난다. 경제기반형 재생 사업 등 큰 사업지에 대해서만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홍성덕 LH 도시재생본부장은 “도시재생뉴딜 사업에서 둥지 내몰림을 막기 위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경기도 파주운정의 노인돌봄, 서울가좌 집수리 등 리모델링 사업, 화성통탄2 방문요양 등 다양한 사회적 기업이 참여하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늘어가는 빈집을 활용해 둥지 내몰림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도 있다. 권혁삼 LH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주거 재생’을 위한 빈집을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권 수석은 “재생 사업지인 낙후지역에는 서민이 많이 산다”면서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의 피해를 줄이고 늘어나는 빈집을 정비해서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거나 지역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 등으로 만드는 방안 등을 연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특례법이 시행되면 빈집 활용을 통한 도시재생은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 부산시 등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조례를 제정하여 빈집 정비를 추진해왔으나, 내년 2월부터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제정(법률 제14569호)이 본격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