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 당시 망 중립성 강화의 '성지'로 불리던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시대에서 180도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는 12월14일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에서 망 중립성 폐지를 위한 표결이 예정된 가운데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을 중심으로 '강화'가 아닌 '폐지'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아짓 파이 위원장이 직접 망 중립성 폐지를 추구할 것이라고 공언하는 한편, FCC 위원회 5석 중 여당인 공화당이 3석을 차지하고 있어 폐지안이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망 중립성은 통신사와 같은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서비스를 운용하며 특정 서비스와 콘텐츠 사업자에게 차별대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 출처=위키디피아

미 FCC가 망 중립성 폐지에 나서는 표면적인 이유는 규제 완화다. 망 중립성 강화가 통신사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을 방해한다는 논리다. 나아가 초연결 시대를 맞이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트래픽에 대비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모바일 기술은 당연한 말이지만 5G와 같은 네트워크, 즉 망에 의해 운영된다. 망 중립성 강화를 통해 기초 체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통신사는 호재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악재를 만나게 된다. 트래픽이 과도한 페이스북이나 넷플릭스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일각에서 "망 중립성이 강화되면 ICT 기업이 고사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구글을 필두로 망 중립성 폐지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미적이던 애플도 지난 9월 "오픈 인터넷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반발했다. ICT 기업들은 망 중립성 폐지가 곧 자신들에 대한 규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 아직 파이 FCC 위원장. 출처=링크드인

국내 통신, ICT 산업에도 미 FCC의 망 중립성 폐지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가 미 FCC의 모델을 그대로 들여왔듯이 국내 통신, ICT 산업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는 2011년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만든 후 올해 3월 방통위가 망 중립성 강화의 기조를 담은 고시 제정안을 확정해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망 중립성 강화가 정부 정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 FCC가 망 중립성 폐지로 돌아선 이상 국내 사정도 변할 수 있다.

지난 9월7일 국회에서 열린 ‘우리나라 망 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토론회’에서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은 "당분간 정부 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으나 "미 FCC가 망중립성을 폐기한다면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가능한지 검토해 볼 것"이라는 여지를 남겼다.

▲ 우리나라 망 중립성의 방향에 대한 토론회.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을 받고있는 통신사들이 초연결 생태계로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정부가 망 중립성 폐지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제로레이팅 이슈도 급부상할 전망이다.

국내 ICT 기업들은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트래픽을 운용하는 자신들의 사업모델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종량제와 같은 파격적인 상품이 나오면 급격히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이슈와 망 중립성의 상관관계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를 필두로 국내 ICT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는데,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글로벌 ICT 기업에 대한 정부의 현실적인 제재가 가능해진다"며 "분명 악재지만 자신들이 주장하던 글로벌 기업 역차별에 도움이 되는 묘한 상태가 됐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