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그남자 - 그 남자가 사랑하는 모든 것. 400GB 샌디스크 울트라 마이크로 SDXC UHS-I 카드 편

#시크릿 메모리카드 공강시간. 그 남자가 학교 카페 테이블에 손을 얹는다. 앞에 앉은 녀석한테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듯하다. 얼굴을 보니 친구라기보단 후배 아닐지. 복학하고 매번 이런 식이다. 외로운지 아무나 붙잡고 이런다. 병이다.

새끼 옆에 뭔가 있다. 새끼손가락 옆에. 빨갛고 납작하다. 손톱보다 약간 크다. 돋보기 안경으로 봐야 할 듯한 깨알 글씨가 적혀 있다. 손수 작은 사이즈를 강조하려고 테이블에 손을 얹은 모양이다.

“빨·회 조합 괜찮지? 이건 나의 시크릿 메모리카드. 내 보물 여기 다 있지. 고르고 고른 영상 컬렉션. 잃어버리면 나 망해. 휴학 각이야.” 도통 뭔소리인지. 아무튼 중요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중요한 데이터가 있는 메모리카드.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400GB 컬렉션의 유혹 후배가 빨간 손톱(?)에 적힌 글씨를 입 밖으로 읽는다. “400GB.” 놀란 눈으로 묻더라. 이 용량 실화냐고. 그 남자가 자기 메모리카드 자랑을 시작할 눈치다. “세계에서 용량이 가장 큰 마이크로 SD카드지.” 표정이 너무 비장해.

샌디스크 제품이더라. 웨스턴디지털에 인수된 브랜드다. 제품명이 길다. 400GB 샌디스크 울트라 마이크로 SDXC UHS-I 카드. 그 남잔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외우더라. 어쨌든 ‘세계 최대 용량’이 맞다. 올해 10월 출시된 따끈한 물건.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은 참 소리소문 없이 발전한다. 400GB라니. 내 노트북 하드디스크 용량을 가뿐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내 스마트폰엔 고작 16GB짜리 마이크로 SD카드가 들어있다. ‘대체 저기에 뭘?’

못된 상상을 하고 있을 무렵. 그 남자가 후배(?)한테 제안하더라. “여기선 좀 그렇고. 내 자취방 가서 여기 모아둔 영상이나 보다 수업 갈래?” 후배 각막이 떨린다. 정적이 흐른다. ‘라면 먹고 갈래?’ 이후 가장 치명적인 유혹.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내 데이터는 안전해! “40분밖에 안 남았는데요 뭘.” 후배가 단호박이다. 그 남자가 무안한 표정을 짓자 녀석이 말을 돌린다. “400GB면 좀 불안해요. 메모리카드 오류 잘 나잖아요. 데이터 다 날아가면 어떡해요? 이것도 휴학 각 아닌지.” 그래, 나도 그게 궁금해. 기특한 이 남자.

그 남자 표정이 묘하다. 자기 컬렉션이 몽땅 삭제되는 충격적 미래를 잠시 상상한 건지. 멘털을 부여잡고 답한다. “아니야. 재수없는 소리. 싸구려 메모리카드랑 다르지. 방수! 온도 영향 방지! X-레이 영향 방지! 자석 영향 방지! 충격 방지! 내 데이터는 안전해!”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자기 메모리카드가 저런 안전 장치를 지원한단 얘기다. 그 남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오히려 폰 내장메모리에 저장된 걸 여기에 백업할 수도 있지. ‘샌디스크 메모리 존’이란 앱으로 데이터를 쉽게 메모리카드로 옮길 수 있어.”

▲ 사진=노연주 기자

#데이터 부자의 선택 그 남자한테 세뇌당한 건 나다. 뒷 테이블에서 과제하는 척 시간 떼우고 있던 내가. 어쩌다보니 인터넷에서 그 400GB 마이크로 SD카드에 대해 찾아보고 있더라. 리뷰를 하나하나 읽어보며 그 카드와 함께하는 일상을 상상해버렸다.

오해는 마시라. 영상 컬렉션 따위 내겐 없으니. 그저 폰 용량이 부족한 1인.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댔다. 설치한 게임도 엄청 많다. 요즘 모바일 게임은 용량 왜 이렇게 큰지. 블랙박스용으로도 괜찮을 듯하다. 궁색한 변명 아니다. 오해 마시라니까.

제품 설명을 자세히 살핀다. 대개 지르기 바로 전 과정이다. “100MB/s 읽기 속도. 데이터 전송 속도도 동일. 풀 HD 비디오 지연 없이 촬영 가능. 분당 최대 1200장 사진 전송 가능. SD 어댑터 기본 포함.” 마우스 커서가 장바구니로 향한다.

그래서 가격은? 40만원 정도. 입이 떡 벌어지고야 말았다. 아메리카노 뿜었다. 그 남자, 당신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