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뉴타운’은 서울 종로구 익선동이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지금으로 보면 부동산 디벨로퍼라고 할 수 있는 ‘건축왕’ 정세권이 북촌에 앞서 개발한 최초의 신식 한옥지구였다.

100년이 지나면서 낙후일로를 걷던 익선동이 달라진 것은 최근 3년 안팎의 일이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 4대문 안에서 새로 지어 반짝이던 한옥들은 빛을 잃었다. 비틀린 목재 대문에는 잠금장치가 무겁게 달렸고, 그나마 문을 연 곳이라곤 세탁소, 점집, 한복가게, 작은 잡화점뿐이었다. 두 사람이 걷기도 어려운 좁고 미로 같은 복잡한 골목길을 이따금씩 지나가는 사람들이라곤 동네를 지켜온 노인들과 낙원상가에 조성된 게이 커뮤니티를 찾는 동성애자들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동네가 천지개벽을 한듯 바뀌었다. 주말마다 젊은이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낡은 한옥은 현대적인 카페와 펍, 레스토랑 등 개성 있는 점포로 다시 태어났다. 2014년 42곳에 불과한 상점들은 2016년 101개로 늘었다. 일대 매매와 임대 매물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간혹 나오는 매물도 값이 크게 올랐다. 매매가는 3.3㎡당 4000만~5000만원, 임대료는 3.3㎡당 20만원까지 올랐다.

낙후된 뒷골목의 대명사가 20대 연인이 찾는 ‘SNS용 핫플’이 된 건 ‘익선다다’라는 민간 개발업체의 남다른 안목 덕분이었다. 박현아 익선다다 대표는 2014년 박지현 대표와 함께 ‘익선다다’ 프로젝트팀을 시작했다.

익선다다는 직접 운영한 ‘익동다방’을 시작으로 일대 상가를 기획하고 입주 업체들의 컨설팅 업무 등을 시작했다. 버려져 있던 여관을 리모델링한 ‘낙원장’, 만화방 ‘만홧가게’, 맛집 편집숍 ‘열두달’과 ‘별천지’ ‘1929경양식’ ‘동남아’ 등의 이국적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박현아 대표는 ‘슬럼화’의 길을 걷고 있던 익선동 일대의 숨은 가치를 한 눈에 알아봤다. 박 대표는 <이코노믹리뷰>에 “서울시 등 관(官)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은 가로등을 설치해 주거나 도로를 내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위주로 민간업체처럼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기는 어렵다. 민간 업체들이 낡은 동네의 변화를 보여주면 관은 구역 지정이나 해제 등 행정지원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선다다와 같은 도시재생 스타트업의 출현은 요즘 부쩍 눈에 띈다. 이들은 스스로를 재개발의 병리를 해결할 도시재생 실행 주체라고 주장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 부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도시재생 스타트업은 40여곳에 이른다.

도시재생 스타트업은 공공성과 함께 수익성도 추구하면서 그간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얻지 못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울 마포구 홍대의 ‘로컬스티치’는 다른 도시재생 관련 스타트업 ‘로컬디자인무브먼트’이 운영하는 공동 업무·주거공간이다. ‘로컬디자인무브먼트’의 김수민 대표는 로컬스티치 외에도 비어 있는 상가에 팝업스토어 개념의 레스토랑을 열어 신진 셰프들의 실험 공간으로 만들거나 쪽방촌 주민이 일할 수 있는 양말 작업장을 만드는 등 문화 콘텐츠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규모가 작고 유연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살려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시재생 스타트업도 있다. 지난해 경기도 시흥 월곶동에서 창업한 ‘빌드’의 임효묵 부대표는 “공공성을 추구하지만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수익성을 고민하는 게 도시재생 스타트업의 장점”이라고 자평했다. 보조금 비중을 줄여 재생 사업의 지속성을 향상시킨다는 뜻이다.

그는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점포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창업 교육, 도시재생 교육 등을 한다. 빌드는 횟집과 노래방뿐인 지역에 첫 브런치 카페를 열었다. 임 부대표는 “젊은 부부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유아를 동반할 수 있는 ‘익스큐즈존’을 만들었다. 편하게 데리고 올 수 있는 가게다. 2호점은 서점이나 꽃집이 될 것이다. 엄마들이 내면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빌드는 시흥시와 함께 창업 교육과 행사를 하기도 한다. 지자체들은 젊은 층의 이탈을 막기 위해 도시재생 스타트업들과 연계해 사업을 하고 있다.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인구 감소에 따른 재정악화는 공공서비스의 마비를 불러올 것”이라면서 “도시재생스타트업은 실업문제 해소를 위한 청년 복지나 청년의 재미있는 실험 지원 차원이 아닌 지역가치 상승을 통한 공공서비스의 지속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 부연구위원은 도시재생 단위사업과 도시재생 스타트업의 간의 정보를 공유할 도시재생 O2O 플랫폼을 구축하고, 중·소규모 도시재생에서 유연하게 사업 계획을 구성할 수 있는 ‘기획·설계·시공·운영’ 통합발주 체계를 도입하는 등의 정책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상영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산업의 공익성이 더욱더 강화될 것”이라면서 “플랫폼화, 공유경제 등은 업계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