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반도체 존재감이 강력해지고 있다.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 분야의 투자가 확대되며 올해 인텔을 누르고 1위 자리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쟁업체의 막대한 시설투자,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의 힘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반도체에서만 10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일 단행된 사장단 인사, 16일 이어진 임원인사에서도 반도체 부문 인사들이 대거 승진했다.

회장 승진 1명,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7명, 위촉업무 변경 4명 등 총 14명이 새로 발령났는데 승진자 7명 중 4명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진교영 메모리 사업부장, 강인엽 시스템LSI 사업부장,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장, 황득규 중국삼성 사장이며 반도체 부문에서 한꺼번에 4명의 사장 승진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원승진도 마찬가지다. 총 221명의 승진자가 나온 가운데 반도체에서만 99명이 승진했다.반도체 부문 임원 승진자는 2017년 5월 41명에 불과했으나 이번에는 두 배 이상이다. 연구개발에서 50% 이상의 승진자를 배출하며 승승장구했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 사이클(장기호황)이 이어지면서 초격차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는 덕분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1위를 유지하며 2위와의 격차를 늘리고 있다. 

D램에서는 10나노급 D램을 적용한 64GB 이상 고용량 서버 D램, LPDDR4X 등의 제품 판매가 탄력을 받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D램에서 삼성전자의 우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D램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에 성공했으나 삼성전자의 아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21일 올해 3분기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56억19990만달러(약 6조3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시장 점유율 37.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위 도시바가 2분기 17.5%에서 18.1%로 소폭상승했으나 삼성전자는 두 배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3위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단독으로 인수했다면 삼성전자도 긴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3분기 기준 웨스턴디지털 점유율은 16.7%이기 때문에 도시바 18.1%와 합치면 삼성전자와 비슷한 점유율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하며 당분간 삼성전자의 독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평택 단지에서 64단 3D V낸드플래시를 본격 양산하면서 고부가, 고용량 메모리 제품 공급을 늘리고 있다. 초기술 격차 기조를 보여주며 단순 점유율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3D 낸드플래시에서는 2013년 업계 최초로 24단 생산에 성공했고 2015년 48단, 2016년 64단 상용화에 성공하며 2위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집권 2기를 맞은 시진핑 중국 국가 수석의 정치적 고향인 시안에 8조원 규모의 낸드플래시 공장 착공에 나서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해빙모드를 맞으며 시안 공장 건설에 속도가 붙었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5월 가동을 시작한 평택 공장과 함께 낸드플래시 주요 생산 거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시안에 2014년 1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2라인 공장이 완성되면 월 15만장의 물량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전략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올해 완전히 인텔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시종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21일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 분야에서 656억달러(약 72조원)의 매출을 기록해 610억달러(약 67조원)에 그친 인텔을 누르고 명실상부 1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분기에서 인텔을 뛰어넘었으나, 이제는 연간 기준으로 인텔을 누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1993년 이후 반도체 업계의 왕좌를 차지했던 인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대가 오고 있다.

연구개발도 탄력을 받고 있다. 특허청은 14일 반도체 분야에서 국내 특허출원은 지난 5년간 해마다 평균 4000건이 출원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총 2만655건이라고 밝혔다. 여기에서 삼성전자가 전체 4388건을 출원해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같은 기간 5만8838건의 반도체 관련 특허가 출원되었고 삼성전자는 2566건을 기록해 SK하이닉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치킨게임과 각국 견제가 변수

불안요소도 있다. 치킨게임 우려가 대표적이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3일 낸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시설투자가 시장에 위험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반도체 수요증가가 기업의 투자확대와 공급과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구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도 "대규모 설비투자는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출처=픽사베이

각 국의 견제도 변수다. 미국 반도체 업체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특허 침해 공세에 나선 것은 단적인 예이다. 다행히 최근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가 미 관세법 337조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예비 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리며 사실상 무혐의 판정을 내렸으나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특허 사냥꾼 테세라의 공세에 직면한 상태다. 테세라는 반도체 공정과 본딩(bonding), 패키징 기술, 이미징 기술과 관련된 24개 특허권을 삼성전자가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마트폰까지 포함된 포괄적 문제제기라 특히 눈길이 간다.

삼성 인재 영입 중국의 맹추격, 경계대상 1호

중국의 반격은 경고를 넘어 실체에 가깝다. 지난해까지 칭화유니그룹을 중심으로 반도체 굴기를 보여준  현지 업체들이 최근 심상치않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확보한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메모리 반도체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칭화유니그룹의 우한 3D 낸드플래시 공장, 루이리IC의 허페이 D램 공장이 내년부터 나란히 하반기를 시작으로 시험 생산을 시작한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거대한 내수시장부터 공략, 이를 바탕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석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 삼성전자의 우한 공장 착공을 두고 '중국에 영업비밀을 유출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 이유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미세공정 기술력 제고에 큰 역할을 담당한 양몽송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로 이직했다.

많은 전문가와 언론이 중국의 반격을 제일 걱정하고 있지만, 삼성전자에 밀리고 있는 인텔도 한 방이 있다. 최근 애플과 협력하며 모뎀칩 분야의 시장 강화를 노리는 한편 3D 크로스포인터 등을 내세워 메모리 반도체, 심지어 파운드리까지 전방위로 넘어오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강자들이 예의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인텔은 최근 삼성전자 송병무 상무를 데려가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역량 부족도 불안 요소다. 당초 평택 단지에서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나서는 것 아닐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4배에 육박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뚜렷한 두각을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