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 듯 인공지능을 말하고 있다. 무슨 문제든지 인공지능이 해결해 줄 것처럼 초지능을 말하고 있다. 좀 깊이 따지고 물으면 앞으로 그런 세상이 닥친다고 한 발 물러선다. 과연 인공지능에는 한계가 없는 것일까? 물론 최근에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이 인간의 기대 이상으로 발휘되고 있다. 용도가 많아지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람의 힘만으론 해결하기 곤란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갈 실마리를 주고 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이 만사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려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나 가정이 필요하다. 성공한 인공지능 기술일지라도 실수가 없다는 보장은 없다. 인공지능의 성공도 사람의 판단과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컴퓨터 힘으로 이뤄낸다는 정도로 이해한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이라면 컴퓨터도 해결하기 쉬운 일들은 아니다. 사람이 문제를 정확히 분석하고 접근법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면 인공지능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커다란 문제라도 작은 문제들로 분할해서 기계가 제대로 학습할 수 있는 문제로 단순화해주면 쉽게 인공지능의 해법이나 대책이 효력을 발휘한다. 물론 작은 문제라도 제대로 학습하려면 수많은 유사 사례가 존재해야 하고 비정상적인 현상도 충분히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사실 세상일들은 바둑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상들로 엉켜 있다. 바둑의 승패처럼 깔끔하게 성공과 실패를 계산할 수도 없다. 이길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사다. 어느 한 순간의 결과를 가지고 전체 시간의 승패를 가름할 수도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도 스마트폰에 거주하는 ‘시리’나 ‘빅스비’에 여러 가지 질문을 해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인공지능이란 게 얼마나 엉터리이고, 말귀가 어둡고, 세상을 모르는지 느낌이 온다. 인공지능이 마치 세상을 곧 지배할 것 같이 매스컴이 말하지만 현실은 아직 멀리 뒤처져 있다.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아직은 인간의 두뇌가 정교하게 인공지능을 다룰 수 있어야 합작품이 나온다. 질문이 잘못되면 대답도 엉터리가 된다. 물론 질문이 곧바르고 핵심을 찌르면 원하는 해법에 유사한 답변을 얻을 수도 있다. 즉, 인공지능은 사람이 하기 나름이다. 사람을 일터에서 몰아낼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성공 사례들만을 듣고 있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실패 사례들이 수없이 묻혀있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에 인공지능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겸손’이다. 구글이 호기롭게 인공지능 우선 시대가 되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아직은 언어나 이미지 인식작업에서 일부 성과를 거뒀을 뿐이다. 이 세상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고 보면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말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말하는 컴퓨터를 만났다고 해서 진정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우리 실력으론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지능적으로 처리할 줄 아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갖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계학습기술이 발달하면서 경우에 따라선 알고리즘만으로도 데이터를 생성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항상 순탄하게 기술목표가 달성되지는 않는다. 기계학습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제에 따라선 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길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라고 이름을 붙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엄청난 기술적 노력과 성과가 합쳐져야만 좀 쓸 만한 인공지능이 탄생한다.

 

먼저 데이터가 있어야 AI가 가능해진다

기계학습을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은 잘 알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자세한 언급이 없다. 인간의 두뇌도 한 가지 개념을 이해하려면 수많은 데이터를 반복해서 익힌다. 물론 사진처럼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장시간 움직이는 물체를 통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익힌다. 눈으로 사물의 움직임을 관찰한다면 적어도 초당 20프레임의 이미지를 보는 셈이고 1분만 관찰해도 1200장의 이미지를 학습하는 효과가 있다. 만약 어린 아이가 고양이를 3분만 봐도 고양이를 다양한 각도로 관찰한 3600장의 사진을 학습한 효과를 지닌다. 인공지능이라면 적어도 수천장 또는 수만장의 고양이 이미지로 지도학습 받아야 고양이를 인식할 수가 있다. 단순한 정보인식에 수천 또는 수만장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데이터가 없으면 기계학습이 불가능하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도전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기보를 3000만수를 모아서 학습했다는 말이 있다. 물론 알파고 제로(AlphaGo Zero)처럼 스스로 강화학습을 통해 데이터를 생성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알파고 제로는 40일을 40개 시간 블록으로 분할해 각 블록별로 50만번씩 바둑을 두고 신경망 계수를 조정했다고 한다. 프로 기사가 평생 둔 바둑 게임 수를 다 합친다고 해도 10만판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인공지능을 질병을 진단하는 용도로 사용하려면 해당 질병에 대한 많은 사례들이 데이터로 존재해야만 한다. 일부러 환자의 병세를 다양한 수준으로 바꿔 가면서 데이터를 생성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데이터 수집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적은 데이터만으로도 학습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획기적인 알고리즘 개발 연구가 절실하다. 데이터양뿐만 아니다. 컴퓨터가 스스로 강화학습을 하려면 바둑처럼 승패의 가치판단이 명확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세상 일들은 사용자의 주관에 따라 가치의 기준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학습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AI는 아직 곤충의 두뇌 수준에 있다

심화 신경망 기계학습을 통해 AI가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현재 개발된 AI시스템들은 한 가지만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기능을 가졌을 뿐이다. 구글의 딥마인드가 바둑선수 알파고를 개발했지만 다른 게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바둑을 잘 둔다고 해서 의료용 인공지능이 탄생한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알고리즘으로 서로 다른 게임들을 멀티태스킹할 수가 없다. 아무리 간단한 게임이라도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고 규칙들이 다른 게임에서는 서로 충돌하고 간섭하게 된다. 게임마다 다른 게임에서 활용했던 불필요한 규칙들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게임별로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병렬로 나열해 처리하게 되면 관리해야 할 소프트웨어의 크기가 너무 커진다. 사람은 한 개의 두뇌로 시도 쓰고 음악도 작곡하고 미분방정식을 풀기도 하고 번역도 하고 멋진 가구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한 가지씩 기능을 구분해 전문화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인공지능은 지엽적인 인지능력이다

AI 비평가로 알려진 뉴욕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게리 마커스(Gary Marcus)는 인간과 동물의 행동으로부터 신경과학, 유전학과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는 AI가 사람들에게 너무 과장되게 포장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로봇이 신경망학습을 한다고 곧바로 지능기계가 되는 건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논조는 간단하다. 지능은 결코 한 가지로 단순화할 수 없다. 지능은 상식, 인식, 언어, 추론, 유추, 그리고 계획하는 능력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했다고 말하지만 단지 인지능력이 좀 높아졌을 뿐이다. 인지능력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일부분을 재현했을 뿐이다. 기계는 빅데이터 사례를 보고 판단기준을 삼지만 사람의 두뇌는 소량의 데이터만으로도 연역하고 유추해서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이런 격차는 상식뿐만 아니라 이해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심화기계학습은 지능기계로 접근하는 극히 일부분의 수단일 뿐이다. 학습만으로는 인과관계를 모른다.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얻지 못하고 논리적인 추론도 할 수 없다. 지식을 요약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두뇌지능과 달리 경험을 통해 기능이 향상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가 발생할 수가 있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접근 및 사용방법은 사람의 지능과 매우 다르다. 기계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응답을 변경할 수 없다. 인공지능의 세계에선 온 마음으로 열정을 다해서 일하는 것과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기계지능에겐 주의나 관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속감이나 공생, 사람과의 접촉도 없다. 인공지능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비효율적인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악당인지 선한 자인지도 모른다. 물론 질문자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도 알 바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디자인이나 창작활동을 흉내 낸다고 해서 창작활동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의 두뇌가 가지고 있는 사고력이나 독창적인 사고능력을 AI에 기대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감성을 가졌지만 이런 능력이 기계지능에 전달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두뇌가 주로 활용하는 직관적인 판단력을 기계지능에 기대할 수 없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이족로봇 아트라스(Atlas)의 뒤집어 돌기 묘기 장면을 유튜브에 공개하면서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해진 장애물에서 반복 훈련을 통해 익힌 기계동작으로 실용적인 활용도는 없다. 2족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위험한 환경에서 사람을 대신해서 위험물 처리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있다. 로봇을 기계체조선수로 만들려는 게 아니고 영화처럼 전쟁에 참가할 지상 전투병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병자들을 위해 집안 살림을 도와주고 일터에서 사람의 힘을 덜어주는 일 정도다. 따라서 로봇의 역할은 공장로봇이 아니라면 힘쓰는 동작능력보다도 지적인 판단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지능로봇이라면 낮선 공간에 나서더라도 실시간으로 지각해서 자유자재로 이동이 가능한 지적능력을 가져야 한다. 로봇은 몸동작보다 시각인지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