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무부가 수경재배 작물에도 유기농 인증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수직농장ㆍ컨테이너 농장 등 도시형 대규모 농업에 진출한 기업들이 반기는 소식이다. 그러나 기존의 친환경 농업 종사자들은 “미국이 친환경 농업마저 기업 위주의 질서로 만들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지난 1일  수경재배 작물에도 유기농ㆍ친환경 인증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미 농무부 산하 ‘국립유기농 프로그램’(National Organic Program) 위원들은 “토양에서 자라지 않은 작물들도 꾸준히 환경 친화적으로 관리된다면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2000년대 초반까지 미 국립유기농프로그램은 친환경 인증 기준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아무리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더라도 전통 친환경 농법대로 토경(土耕) 재배가 되지 않으면 유기농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 미국 농무부(USDA) 전경(출처=미국 농무부 홈페이지)

美 친환경 농업 종사자들, "친환경 인증 구하자" 시위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 관계자는 “원래 유기농은 국제식품규격(CODEX)에 따라 땅에서 재배된 농산물에만 한정된다”면서  “식물공장과 같이 첨단자본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시설들이 유기농 인증을 받게 되면 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내의 저항 운동이 거세다. 뉴저지 주 하노버와 벌링턴 일대는 지난 2일부터 '친환경 인증을 보호하자(Save the organic label)'는 구호가 적인 티셔츠를 입은 친환경 농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농업계는 이 운동이 ‘제 2의 러다이트’(Luddite : 기계 파괴 운동)가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수직농장 업계도 이 움직임에 지지 않을 기세다. 플랜티의 창업자 매트 버나드(Matt Barnard)는 지난 2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우리가 틀린 것이 아니다. 나도 파머스마켓(농부들의 도시 내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파머스 마켓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친환경 농산물의 (극히) 일부를 제공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미국 친환경 농산물 시장 매출 규모는 470억달러(한화 50조원)에 이른다. 미국 농산물 시장의 5% 규모다. 친환경 농업 종사자들은 자본력과 공급력을 가진 수직농장 업계가 대거 친환경 인증을 받을 경우 농산물 가격 교란ㆍ유통망 장악 등 부작용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는 ‘수직농장’ 확산 제한적.. 장기 효과는 장담 못해

국내 시장의 경우 ‘엔씽’, ‘만나씨이에이’ 같은 수직농장 기업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전체 농식품 시장을 장악하는 수준은 아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수직농장의 높은 운영비ㆍ농산물 가격으로 한계가 있어 기업 하나가 시장을 좌지우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팜 전문가 이인규 NIR 그룹 상무는 “수경재배가 꼭 친환경 농업 시장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일부 수경재배 사업자들이 사업성을 위해 친환경 영역을 넘보기 시작하면서 생긴 문제”라고 분석했다.

김양환 계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장 기존 친환경 농산물 소비가 줄지 않더라도 ‘가성비’를 중시하는 국내 소비자들 특성 상 대기업 브랜드로 옮겨 탈 위험도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