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1100원선이 무너지며 가파르게 하락했던 원·달러 환율이 20일 정오를 넘어서며 반등세를 보였다. 이날 오후 1시 15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00.20원으로 1100원대를 회복했다.

당국의 구두개입 시사 이후 시장이 안정세를 찾아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원화 강세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한 수출∙관광 산업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원달러 환율이 20일 오후 1시 15분 현재 1100.20원으로 1100원대를 회복했다. 출처=네이버 환율

환율 하락은 곧 원화 강세를 의미한다. 지난 9월 이후 꾸준히 높아지던 원화 가치는 지난주들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3분기 경제성장률 서프라이즈, 경상수지 흑자폭 확대, 한국은행 금리 인상 가능성 등 내부적 요인과 더불어 한중 관계 개선, 북한 리스크 감소 등 외부적 요인이 더해진 결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한국 원화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Korea Won is Surging)”면서 “이번 주 들어 달러 대비 2.3%나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북한은 지난 9월 이후 새로운 미사일을 쏘지 않고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기간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원화 강세 연말까지 계속된다”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일 보고서에서 연말까지 원화의 강세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신흥국 위험관련 지표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원화의 나홀로 강세가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라면서 “환율이 현재 수준에서 1000원대를 위협하는 레벨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 달러화 대비 주요국 등락률. 출처=블룸버그, 한국투자증권

정희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1월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상 여부가 결정되고,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영향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연말까지 원화의 급격한 강세는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날 실시되는 삼성전자의 중간배당 지급도 단기적인 환율 변동 가능성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보통주와 우선주의 외국인 비중은 각각 53.66%와 82.93%로 이날 중간배당으로 지급될 9590억원 중 약 5444억원 규모가 빠져나갈 수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삼성전자 중간배당금 대부분은 외국으로 역송금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에 대한 경계차원과 변동성 관리 차원에서 당국의 미세 조정이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수출∙관광산업 타격 불가피…한국기업 가격경쟁력 잃을 것”

원화 강세 기조가 계속됨에 따라 우리 수출기업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라 관광산업도 위축될 위험성이 높아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7일 보고서를 통해 “환율 하락은 수출 둔화, 수출 기업의 채산성 악화 등 경제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환율로 인한 수출가격 전가로 우리 수출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환율이 10%포인트 하락(원화 가치 10%포인트 상승)하는 경우 수출가격은 1.9%포인트만 증가할 뿐 나머지 8.1%포인트 부분은 기업의 손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원달러 환율 하락시 내려간 환율만큼 달러표시 수출가격을 충분히 인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화표시 수출액이 하락,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중국 기업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일반 공산품 제조업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화가치가 강세인 가운데 달러대비 엔화가치는 계속해서 약세 기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엔화가치보다 원화가치가 더 높아지면서 일본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은 올라간 반면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상황이다.

▲ 원달러환율과 신흥국 통화지수. 출처=블룸버그, 한국투자증권

반면 3분기까지 한국경제 수출을 견인한 반도체 사업의 경우 환율로 인한 리스크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신유란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반도체는 기술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산업은 아니다”라면서 “환율 하락으로 인한 반도체 수출 타격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반도체 수출 호황이 원화가치를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국내 수출산업의 ‘쏠림 현상’이 크기 때문에 반도체 등 일부 수출 호황에 가려져 일종의 ‘착시 현상’이 생긴다는 것. 더욱이 반도체 등 기술집약적 산업의 경우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일부 산업군이 올려놓은 원화 가치에 다른 제조업군이 피해를 입는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시장에서 그런 얘기가 있는 것은 맞지만 따져봐야할 문제”라면서 “반도체산업이 호황인 것은 맞지만 국제수지에서 반도체가 절대적인 부분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광산업의 경우 환율이 내려가면서 외화 환전, 해외 송금이 좋아짐에 따라 해외 관광은 늘어나고 국내 관광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드 여파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관광업계는 환율이라는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할 위기에 놓였다.

현경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환율 수준 1184원”

현대경제연구원은 17일 보고서를 통해 환율 하락 배경을 진단하고 향후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한국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환율 수준은 달러당 1184원이라고 분석했다. 1184원은 지난 1월 수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2월 이후 1100원~1150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해왔다.

▲ 달러 대비 절상률과 원달러 환율과 균형환율 간 괴리율. 출처=한국은행, 블룸버그, 현대경제연구원

현경연이 균형환율 모델로 추정해본 결과 2017년 11월 평균 원달러 환율인 1116원은 균형환율 1184원 대비 약 5.7%정도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 경제의 대내외 여건을 감안했을 때 산업과 기업이 견딜 수 있는 환율 1184원 수준보다 과도하게 고평가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경우 한국 경제에 큰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경연은 원달러 환율 급락을 방지하기 위해 미세조정을 포함한 시장 안정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9월 FOMC 이후 신흥국 통화는 약세로 전환된 반면 원화만 유독 ‘나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조정을 통해 원화 가치 급등 속도를 조절해 외환시장 불확실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환율 하락으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현경연은 원화 강세 시점을 이용해 자본재 투자, 해외 투자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국내 설비투자에서 수입 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적극적인 설비 도입을 통해 향후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한다”면서 “해외자산 매입을 통해 해외시장 진출 거점도 마련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 등 소재∙부품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대한 원화 강세는 청신호다. 우리나라의 대일 수입규모는 대일 수출규모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원화 강세가 되면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 가격은 내려가 우리 제조업군에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