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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의 비사(秘史) 속 정사(正史)를 찾아서] 淸 볼모된 소현세자다시 만나고 싶은 역사 속의 인물-소현세자(2)
신용우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12.02  19:17:28
   

조선 조정에서 화친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동안 1월 1일 탄천에 결집한 청나라 병력이 30만이나 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남한산성 안에서 얼마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조선 조정은 화친하기로 결정하고 청나라에 화친하자는 국서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러자 기껏 생각해 낸다는 것이 용골대와 마부대에게는 각각 은 3천 냥을, 역관 정명수에게는 천 냥을 뇌물로 주어서 화친을 추진하게 해보자는 얄팍한 술수를 펼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마저 통하지 않자 조선은 방법을 잃고 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한산성 안의 조정은 그나마 명목을 유지하며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있었지만, 그러는 동안 성 밖의 백성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 희생되어 가는 것을 보던 소현세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스로 나섰다.

1월 22일 소현세자는 ‘백성 없는 조정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조정 없는 세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니 내가 항복하러 가겠다.’고 스스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청나라는 이미 화친의 조건을 세자에서 국왕이 직접 나서라고 정해놓은 터였다. 조선의 국왕이 나와서 평민 복장으로 삼배구고두례를 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서 주전론자들을 볼모로 데리고 가는 조건에만 화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다시 한 번 이 문제로 우왕좌왕했지만 소현세자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볼모로 보내도 좋으니 제발 전쟁을 끝내자고 했다. 소현세자는 지금의 정세를 누구보다 잘 읽고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했지만 자국 내의 복잡한 상황을 핑계로 소수의 병력을 파견하다가 그나마 풍랑을 이유로 철수해 버리고 말았다. 명나라는 이미 청나라의 기세에 눌려 버린 것이다. 청나라가 굳이 안 해도 될 전쟁으로 국력을 소비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명나라를 치고 들어갈 때 후방인 조선에서 명나라를 위해서 자신들을 공격해 들어오는 사태를 막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볼모를 요구할 것이고, 그 볼모는 적어도 세자가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조선의 힘으로는 청나라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판명되었고 명나라 역시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을 것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명분을 내세워 백성들을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며 백성 없는 세자와 왕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이미 상황을 판단한 소현세자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치욕의 삼배구고두례를 치르는 항복과 함께 기꺼이 볼모살이를 떠난다.

 

청나라에 볼모로 간 소현세자는 그곳에서도 볼모라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밝고 활기차게 살았다. 흔히 적국의 볼모로 잡혀 오는 왕자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이나 흘리고 앉아 있거나, 아니면 서러워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통상적인 태도들이었는데 소현세자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을 정복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삼은 청나라가 후방에 대한 걱정 없이 명나라로 진격을 할 때 소현세자는 이미 기울어가는 명나라의 국운에 매달리지 않고 기꺼이 청나라의 편에 서서 전투에 가담하여 자신의 용맹을 적국인 청나라 장수와 군사들 앞에서 유감없이 드러냈다. 비록 조선이 불시의 습격으로 병자호란에서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겪었지만 조선인이 약해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세자인 내가 명나라 군사에게 칼을 겨누니 조선은 이제 명나라와 더 이상 연을 갖지 않겠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는 조선을 침략하지 말라는 묵시적인 선포를 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명나라 시절부터 들어와 있던 서구 문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조선보다는 훨씬 발달한 청나라의 문물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가 절대 오랑캐가 아니라 깨어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조선으로 환국을 하는 날에는 백성들을 위해서 이 발달한 문명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구의 발달한 문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청나라에 들어와 있던 천문학자 이자 신학자인 아담샬 신부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몽골어를 배우는 등 국제적인 감각을 넓혀 나간다.

그런 소현세자를 본 청나라 장수 용골대와 구왕 다이곤은 소현세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아무리 상대국이 잘 대해 준다고 해도 볼모라는 것은 결국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인데 그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볼모살이를 하면서도 백성들을 생각해서 발달한 문물을 조선으로 옮겨 갈 구상을 한다는 자체가 가히 성군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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