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전염병은 병 자체가 아니라 공포다. 중세 유럽 1000년 동안 뇌리를 지배한 흑사병이 대표적이다. 당시 사람들은 흑사병이 마귀가 옮기는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쥐에 기생하는 벼룩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예전에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병이었다. 누군가가 흑사병에 걸리면, 그 시체를 나른 사람ㆍ임종하러 온 신부ㆍ조문온 친구가 함께 걸려 네 명 모두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점심은 친구들과 먹고 저녁은 조상들과 먹는다’는 농담도 이때 나왔다.

병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 현대인들이 고치지 못하는 질병은 지금도 많다. 대표 사례가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다. 조류독감이 중국과 홍콩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거의 매년 겨울 아시아 지역을 덮치고 있다. 겨울 철새들 때문이다. 양계장과 오리 농장에서 조류독감이 발병하면 살처분을 하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됐다.

문제는 사람에게 옮았을 때다. 중국에서는 해마다 농촌과 도시 지역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절반 가량은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감염된 것이다. 아직까지 약도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별다른 의료 조치 없이 조류독감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된’ 환자는 극소수라고 한다. 걸렸다 하면 생사(生死)를 넘어야 하는 잔인한 병이다.

보건 당국 관계자들은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전한다.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비교적 치료가 쉽다고 한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백신이 개발됐다. 문제는 계속해서 돌연변이 형태로 진화하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다. 고양이ㆍ담비ㆍ사람 등 과(科)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병의 형태가 자꾸 바뀌기에 치료약을 개발하기 어렵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해마다 농촌을 습격하는 조류독감은 단순 질병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를 넘나드는 동물들 탓에 생기는 외교 문제인 것이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매년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오고 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국과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가 상륙하면 명동ㆍ이태원ㆍ강남역 일대는 보균이 쉬운 핵심 거점이 될 것이다.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해당 농가와 인근 농가의 가금류들을 살처분하고, 출입을 통제하고, 대대적인 경보를 발동하는 식의 조치가 반복되고 있다. 살충제 계란 때도 그랬고, 구제역 때도 그랬다. 정부는 ‘근본적인 농가 환경 개선’을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똑 같은 공식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문제의 해답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때 아닐까.

전염병이 퍼질 때 정부가 미디어를 대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책임 있는 관계자들이 언론에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보건 생활 매뉴얼과 현장 대처법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실보다 공포라는 감정이 훨씬 쉽게 퍼진다. 이 공포가 사회를 잠식해 들어가기 전에 제대로 된 국민 감성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