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폰X가 17일 국내 예약판매를 시작한 가운데, 조만간 서울 강남 신사동길에 마련될 애플스토어((Apple Store)가 단순 유통은 물론 단말기 개통까지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애플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안마당인 국내 시장에서 '의외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2036년까지 총 48억원에 임차하는 조건으로 신사동 가로수길에 정식 애플스토어를 연다. 공사진척 상황을 고려하면 늦어도 내년 초 오픈될 전망이다.

▲ 애플스토어. 출처=애플

일반적으로 각 나라의 고객들이 애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총 네 가지다.

가장 낮은 등급의 애플 공인 리셀러(Authorized Reseller)는 '공인'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애플과의 연결고리가 없는 판매매장이다. 다음으로는 애플 프리미엄 리셀러(Apple Premium Reseller)가 있다. 국내 프리스비 등이 여기에 속하며 특정평수 이상의 공간을 갖추는 한편 애플로부터 느슨하지만 디자인과 직원교육에 대한 간섭을 받는다. 그 위에는 애플샵(AppleShop)이 있다. 애플이 운영을 담당하지만 매출은 현지 파트너가 가져가며 상당한 훈련을 받은 직원들이 포진해 있어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최상위 단계가 바로 애플스토어다. '지니어스바'로 유명한 애플의 직원들이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AS까지 책임진다. 팀 쿡 애플 CEO는 애플스토어를 두고 "단순히 애플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애플의 정체성을 특별한 사용자 경험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애플 코리아는 현재 유한회사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는 간접적인 시장 플레이어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애플스토어가 열리는 순간 국내 시장은 애플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애플은 19개 나라 492개의 애플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문을 여는 애플스토어가 그동안 엉망이던 AS 정책을 크게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애플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통신 업계에서는 아이폰 1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아이폰X가 예상보다 빠르게 국내에 출시된 점과, 애플스토어가 통신3사와 협력해 직접 단말기를 개통하려는 행보를 보이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폰8은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으나 아이폰X는 국내에서 초반 인기가 상당하다. SK텔레콤의 1차 예약판매가 단 3분만에 종료되는 등 그 인기가 심상치않다. 다만 국내 통신사 관계자에 따르면 애플이 1차 예약판매로 국내 통신사에 몰아준 아이폰X 물량은 10만대 남짓이다. 부품 수급이 어려워 아이폰X 물량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를 고려해도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아이폰X 국내 출시가 정해지기 직전에도 애플은 국내 통신사와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

▲ 아이폰X. 출처=애플

그러나 통신사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애플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아이폰X가 가지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영업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와 같은 국내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광고에 대한 권한을 통신사에 일임하는 반면, 애플은 애플이 원하는 광고 시안을 국내 통신사들이 99% 살리고 있다"며 "애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스토어에 통신사들이 개통권한을 부여하는 전산작업에 나선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의 존재감이 점점 강해지는 상황에서 애플스토어가 완전한 대리점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서울의 한 통신사 직영 대리점 관계자는 "약정할인 25% 인상이 확정되며 제조사 보조금이 낮은 애플이 더욱 유리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국내 스마트폰 유통 구조가 점점 애플에 유리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아이폰X의 인기, 통신사들 위에 군림하는 애플, 약정할인 25% 인상 등의 호재가 겹친 상태에서 애플이 애플스토어의 단말기 개통권한을 통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민단체인 통신비 인하 추진연대 이광훈 사무총장은 "우리는 국내 통신사가 개통시 지급하는 개통 판매 장려금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다"며 "애플이 막대한 판매 장려금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구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애플의 보조금이 낮은 상태에서 통신사들의 개통 판매 장려금이 고스란히 애플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분리공시 등의 법제화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도 추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이 사무총장의 주장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제조사를 견제할 수 있는 포석이 될 수 있다. 애플스토어를 중심으로 국내 스마트폰 유통 시장의 장악력을 올려 국내 제조사인 삼성전자 등을 안마당에서 견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국내 통신 유통가의 근본을 흔들 수 있다. 애플스토어가 문을 열면 지금까지 애플과 협력하던 다수의 국내 파트너들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실행되면 골목 대리점을 중심으로 상권이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과 비슷하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말기 완전자급제와 같은 투명한 유통구조를 마련하는 한편, 판매 장려금 등 중간 마진 단계의 '감춰진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보편요금제 등의 이슈와 맞물리며 통신사를 중심으로 반대기류가 감지되고 있으며, 유통 구조 투명화에 대한 담론도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사실상 실패하며 뚜렷한 모멘텀을 상실한 상태다. 애플스토어 개소가 다가오는 지금, 이해관계자들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