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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내 운명…주체못할 열정 가업마저 박차고 나오게 했죠”문화외교관 꿈꿨던 클래시컬 팝 아티스트 홍범석씨


성악가를 꿈꾸던 아이. 그에게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외교관이다. 성악이 싫어졌던 것은 아니다. 더 큰 꿈을 꿈꿔보고 싶었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성악을 통해 한국문화를 알리리라. 큰 뜻을 세운 만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가업을 이어받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이 40에 기업 CEO의 직함이 어울릴 무렵. 안정적인 CEO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성악가 홍범석(43)이 주인공이다. “이색 이력에 손해를 보는 게 많다”며 투덜대는 게 ‘천상 CEO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괜스레 성악을 단순한 취미생활로 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나의 밥벌이는 성악이다.”

어떤 이는 홍범석을 또 한명의 팝페라 가수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정도로만 여길지도 모른다. 가업을 물려받아 CEO란 직함이 어울릴 무렵.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팝페라 성악가로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러나 그는 성악가 박인수와 조영남이 그랬던 것처럼 성악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멀리 떨어져 있던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실력에 비해 독특한 배경이 갖는 오해와 편견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현재가 재력을 바탕으로 취미생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통 성악을 전공하며 체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1987년 연세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성악가 김돈규, 임은경 등을 배출한 명문 중에 명문. 2학년에 진학해선 미국 맨해튼음악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 사이에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으로의 입성이다. 성악 전공자들 사이에서 실력으로 방귀 꾀나 뀌었다고나 할까.


줄리아드도 보고 다 봤다. 다 붙었다. 그런데 맨해튼음대가 장학금을 가장 많이 준다고 해서 갔다. “줄리어드음악대학을 비롯해 워싱턴DC 인근의 성악과가 있는 대학에서 오디션을 대부분 봤다. 모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맨해튼음대에서 장학금을 가장 많이 준다고 하더라.” 하고 싶었던 성악 공부를 했던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학기를 모두 마쳤다. 그런 그가 돌연 정치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정치학·CEO 멀리 돌아온 길 “후회는 없다”
홍범석은 승부사다. 결정에 있어 후회란 없다. 행여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해도 두 번 생각하지 않는다. 홍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며 피식 웃는다. “졸업연주회를 앞두고 정치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작정하고 알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덜컥 인디애나대학교의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졸업연주회를 하기 전 입학을 해야 했다. 오페라 가수가 될 게 아니면 한 학기를 손해 보는 게 싫었다.”

인디애나대학에 다닌 그는 학업을 마친 뒤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교관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은 외무고시 합격생들이 연수를 가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국제경제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 했다.

2000년 귀국과 동시에 그의 기업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유학을 마친 뒤 아버지의 회사로 곧장 들어갔다. 가업으로 내려오던 군납업체의 CEO를 맡았다. 음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기웃거리는 등 10여년 간의 생활을 보냈지만 제법 일을 잘했다.

그런 그가 2009년 제2의 인생을 선언한다. 회사 CEO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왔다. 때가 때 인만큼 아버지와 갈등이 심각했다. 2009년은 글로벌 경제위기 시절이다. 기업 특성상 큰 불황은 없었지만 CEO의 갑작스런 사퇴는 회사에 큰 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같이 사업을 하며 사업이 탄탄해졌으니 더 그랬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으니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다. 중책을 맡고 있으니 그랬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성악을 반대하는 선생님을 피해 설악산으로 일주일간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반대를 하던 음대도 갔다(웃음). 면역이 생긴 것 같다. 지금은 잘 봉합된 것 같다. 얼마 전 공연에 아버지가 오셔서 수고했다고 칭찬을 하더라.”

지난 달 22일 홍씨는 예술의전당에서 팝페라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홍범석이란 이름 앞에 예명인 ‘버뮤티(Vimutti)’를 붙이며 성악을 밥벌이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지난해 12월 앨범을 낸 뒤 9개월 만이다. 일반 콘서트와 달리 상대적으로 대중적이지 못한 장르임을 감안하면 대성공인 셈.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2시간30분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된 공연 동안 자리를 이동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홍씨에게 성공의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성악을 하고 있다.” 치열하게 한다고 되는 일일까? 정말 다른 것은 없는 걸까? 집요한 추궁(?)에 그가 입을 열었다. “청중의 심리적 안정과 휴식에 초점을 맞춰 앨범 작업을 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10년 동안 그것만 생각을 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정치학도 변신 “문화외교 큰 산 되고 싶었다”
그렇다. 홍씨는 성악에서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꾸긴 했지만 음악을 버렸던 것이 아니다. 음악을 통해 보다 더 큰일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학 생활 중 문화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 온몸으로 체득 했다. 여러 명의 외교관보다 문화를 전달하는 한 사람의 힘이 크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쪽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때마침 전 세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음악이 중심에 있었다. 마이클잭슨의 ‘힐 더 월드’와 같은 음악적 가치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아프리카 기아 돕기 캠페인을 벌인다고 해도 노래 한곡을 못 쫓아가는 게 현실이다. 문화의 힘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음악을 매개체로 한다면 효과는 배가 된다.

단 영향력 있는 뮤지션이 됐을 경우란 단서가 붙지만….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꼭 성악가로서 한국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가업을 이어받은 2000년부터 CEO 생활을 마감 할 때까지 단 하루도 음악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밥을 먹을 때에도 서류에 사인을 할 때에도 악보가 그의 머리속을 맴돌았다고 한다. 심지어 자는 도중에도 영감이 떠오르면 악보에 적었다. 자신의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했다는 얘기다.

“살아온 것을 후회하기 보다는 언제든 올 수 있는 기회를 준비했다. 몸소 체득한 경험들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나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큰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성악가 홍범석이 실제 갖고 있는 경쟁력은 그렇게 탄생됐다. 성악을 전공했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색깔에 경계를 없앴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무장르 음악을 추구한다. 물론 어릴 적 주변 환경이 큰 도움이 됐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모두 접하며 형성된 동물적 리듬감, 피아노와 기타 등의 악기 연주를 배웠던 게 주요했다. 또 작곡과 편곡, 작사까지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성악계의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일례로 성악을 하는 사람은 성악만 하는 경우가 많다. 악기를 연주할 수는 있지만 실력급 수준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 작곡과 작사, 편곡을 할 필요도 없다. 못한다고 해서 뛰어난 성악가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 모두 할 수 있다고 해서 뛰어나다고 하기 힘들다. 특이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만약 홍씨가 성악 한우물만 팠다면 지금의 특이한 능력을 갖추긴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해 발매된 그의 앨범엔 그의 음악적 특이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휴식이라는 큰 테마에 맞춰 총 15곡의 노래를 담았다.

“앨범의 테마는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평온함을 주는 쪽에 맞췄다.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잠시나마 여유를 주고 싶었다. 굳이 장르를 정하자면 크로스오버에 가까운 곡들이 주를 이룬다. 기존 크로스오버 노래와는 차별성을 뒀다.”

홍씨는 국내 크로스오버 아티스트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훌륭한 아티스트들이지만 주목받는 음반이나 곡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외국 유명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들이 부른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는 식이 많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외국에서 넬라판타지아가 떴다 하면 대부분 그것을 녹음한다. 오버 더 레인보우, 유 레이즈 미 업 등도 마찬가지였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한국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들의 음반은 큰 의미가 없다. 노래는 들을 수 있지만 음반을 살려고 마음먹는다면 해외의 원조 아티스트의 음반을 찾는다.

설령 국내에서 히트가 됐다고 해도 해외에선 안 된다. K-POP은 미국을 넘어 유럽시장까지 공략에 나서고 있다. 클래식의 고향인 유럽 등에 국내 크로스오버 음악의 진가를 보여 주는 것은 가능하다. 향수와 같은 노래를 리메이크 하고 만들어 부르면 된다. 크로스오버 콘텐츠는 대부분 영어로 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부른다. 이게 난센스다. 한국적인 색채의 크로스오버 음악이나 정통 클래식에 가사를 붙여 만들면 충분히 경쟁력이 될 수 있다. ” 의욕적으로 설명을 하는 그의 얼굴에서 사업가적 기질이 엿보인다.

“월드컵·올림픽 축가 부르는 게 마지막 꿈”
“출시된 앨범을 보자. 첫 다섯 곡은 쇼팽, 쌩상, 푸치니 등에 영어가사를 붙여서 크로스 오버 형태로 리메이크를 했다. 감히 쇼팽곡을 망쳐놨다는 비난을 감수했다. 그러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다음 다섯 곡은 창작곡을 넣었다.

나머지 다섯 곡은 70년대와 80년대 유명했던 케니로저스, 보니타 등의 노래를 편곡했다. 클래식으로 시작해 댄스로 끝난다. 곡마다 편차가 크지만 모두 듣다보면 장르가 바뀌는 것에 무리 없이 들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10대 명지휘자 중 한명인 Dian Tchobanov로 부터 긍정적인 평가들 들었다.

다른 외국인들도 정말 혼자 다 만들었냐고 묻는 등 반응이 온다. 크로스오버 아티스트가 프로듀싱하고, 작사 작곡하고 연주하고, 가사도 다 쓰니 특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국내를 넘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를 꿈을 꾸고 있다.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준비를 할 것이다. “세계적인들과 호흡할 수 있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개막식 같은 대형무대에 서고 싶다.”자신만의 음악색으로 전 세계 대중들과 함께 음악의 여유를 나누고 싶은 성악가 홍범석.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세형 기자 fax123@


김세형 기자  |  fax123@asiae.co.kr  |  승인 2011.10.14  0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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