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핵심 인터페이스가 스피커로 수렴되고 있다. 물론 '인공지능=스피커'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모든 사업을 플랫폼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수요와 공급의 마법'이 필요하며, 초연결 생태계에서 가장 핵심인 인공지능이 스피커라는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최근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이 달아올라 국내 ICT 업계도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누구'를 통해 T맵 내비게이션 인프라와 결합해 빅데이터 확보에 나섰고, KT는 기가지니를 스피커의 형태를 넘어 IPTV와 결합한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ICT 포털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뛰어들었다. 이들은 각각 웨이브와 카카오미니를 출시하며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의 판을 키우고 있다.

의문이 든다. 웨이브와 카카오미니는 분명 가격이 책정되어 있지만, 음원 서비스에 가입하는 조건이라면 거의 공짜, 무료로 뿌려진다는 점이다. 이유가 뭘까?

▲ 출처=디지에코

사용자 경험에서 찾아라

KT경제경영연구소 디지에코에서 발행한 최근 보고서에서 문형철 이화여대 교수는 "사용자 경험에서 인사이트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선택이다. 문 교수는 "지금 나와있는 네이버의 웨이브, 카카오의 카카오미니 스피커들을 사용해 보면 소비자가로 적혀 있는 것처럼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제품을 판매했다면 과연 얼마나 팔렸을까?"라고 되물었다.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에 익숙하며, 인공지능 스마트 스피커에 대한 기대가 낮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웨이브 가격은 15만원, 카카오미니는 11만9000원이다. 웨이브를 구입하며 9만9000원의 네이버뮤직 1년 이용에 가입하면 웨이브는 무료로 준다. 카카오미니도 예약판매에서 멜론 1년 스트리밍 무제한 이용권을 구입하면 4만9000원으로 할인해 판매한다.

보급을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문 교수는 "인공지능 스피커의 기술력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을 확보하려면 고객을 설득해야 한다"면서  "음악 서비스를 제공해 사실상 무료로 스피커를 제공, 일종의 낮은 진입장벽으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인공지능 스피커에 부담없이 다가가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음원 시장 점유율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네이버 뮤직과 멜론이 치열한 전쟁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 스피커가 큰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큰 부담없이 인공지능 스피커를 구입하고 여기에 익숙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 교수는 "음성으로 인공지능을 작동시키는 사용자 경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면서 "TV에 이어 인공지능 스피커가 제3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생태계 전략이다. 문 교수는 "프린터 비즈니스와 비슷하다"며 "프린터 회사들이 소모품을 팔기 위해 기기 자체는 저가에 공급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스피커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하드웨어로 수익을 올릴 수 없어도 생태계 수준의 저변 확보만 가능하다면 소프트웨어를 통해 무궁무진한 사업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 등 운영체제를 가진 기업들이 모바일 패권을 장악했던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플랫폼을 생태계로 조성하는데 성공했으며, 기본적인 인프라에 들어온 콘텐츠 객체들은 '스스로' 판을 키웠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인공지능 스피커 무료 전략에도 비슷한 플랫폼 전략이 숨어있다는 해석이다.

문 교수는 "이는 공급하는 콘텐츠 입장에서만 봐서는 안된다"면서  "우리가 공짜와 다름없이 받은 이 스피커들은 우리의 말을 끊임없이 듣고 학습하고 있다.  더욱 정교한 정교한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를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 축적이 필요한데 이러한 노드(node)를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보급을 우선 해야했다"고 말했다.

▲ 네이버 웨이브. 출처=네이버

답은 스마트홈에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플랫폼, 생태계 전략을 가다듬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스마트홈이다. 문 교수는 "컨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시작과 확장은 결국 스마트홈 시장으로 이어진다"면서 "특정 행동을 목소리로 제어하고 조절하는 사용자 경험은 자연스럽게 음성 비서형 기기의 발전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욱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이 발생하며 스마트홈의 거대한 플랫폼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왜 음성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문 교수는 "간편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기존 스마트폰 사용자 경험에서 얻을 수 없는, 터치 스크린 기반의 인프라에서 체험할 수 없었던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은 '활용하기에 간편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직관'의 개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문 교수는 "이것저것 선택하지 않고 바로 뭔가를 제어할 수 있는 경험 , 이는 스마트홈과 같은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ICT 업계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구글 어시스턴트가 한국어 공부를 마쳤지만, 글로벌 ICT 기업 전체로 보면 아직 이들의 한국어 공부는 미흡한 편이다. 나아가 텍스트의 한글은 더욱 요원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포털 기업들은 한글이라는 텍스트 기반의 인프라로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한국어에 이어 한글이라는 텍스트도 언젠가는 글로벌 ICT 기업들에게 정복될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서둘러 인공지능 스피커를 출시한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 문 교수의 설명이다.

개인형 기기가 아닌, 가족형 기기라는 것과 전 연령층이 스마트 기기에 빠르게 다가설 수 있게 만드는 점도 두 회사의 인공지능 스피커 저변 확보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 카카오미니 체험. 출처=카카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문 교수는 "음성에 주목하는 가치있는 콘텐츠가 더욱 나와야 하며. 스마트폰과 비교해 더 좋은 매력 포인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웨어러블에 대한 질문과 비슷하다. "왜 인공지능 스피커를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아가 문 교수는 "오픈 생태계를 빠르게 도입해 생태계의 성숙을 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