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을 디자인하다> 마쓰무라 나오히로 지음, 우다혜 옮김, 로고폴리스 펴냄

행동디자인학은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는 장치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행동디자인은 세 가지 조건(FAD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아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공평성(Fairness)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하는 유도성(Attractiveness) ▲행동디자인을 설정한 쪽과 그 설정에 따라 움직이는 쪽의 목적이 서로 다른 목적의 이중성(Duality of Purpose) 등이다.

행동디자인의 열쇠는 트리거(Trigger)에 달렸다. 트리거는 방아쇠, 유인(誘因), 계기 등의 의미다. 행동디자인은 사람이 지각할 수 있는 물리적 특징인 ‘물리적 트리거’와 그로부터 사람 내면에 유발되는 심리적 움직임인 ‘심리적 트리거’로 구성돼 있다. 이 트리거를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행동디자인의 특징과 효과가 달라진다.

이 책은 재밌다. 책에는 행동디자인 사례 31가지가 나오는데, 읽다 보면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는 4차산업시대에도 사람의 행동에 집중하면 상당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본 오사카시 덴노지(천왕사, 天王寺) 동물원 코끼리 구역에는 가늘고 긴 원통이 곳곳에 박혀있어 관람객들이 호기심에 통 속을 들여다 본다. 원통을 통하면 짚과 같은 코끼리 대변 속 구성물들이 보인다. 관람객들이 코끼리의 겉모습뿐 아니라 생태에도 관심을 갖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장난감들로 난장판이 되기 일쑤인 아이 방에는 ‘장난감을 먹는’ 대형 자루모양의 인형을 두기도 한다. 아이들은 놀다가 그 인형에 먹이를 주듯 장난감들을 넣어준다.

한 공항의 무빙워크에는 왼쪽에 발자국이 그려져 있다. 승객들이 왼쪽으로 서라는 의도다. 남자용 소변기 안쪽에 파리나 과녁, 장작불 등이 그려진 스티커를 붙여 소변이 변기 밖으로 튀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말고 운동삼아 계단을 걸어 올라가도록 소리 나는 피아노 계단을 설치하기도 한다. 계단에 한 칸 한 칸 소비칼로리를 적어둔 곳도 있다.

특이한 가정용 제빵기계도 있다. 잠잘 때 이곳에 밀가루 등 원료를 넣어두고 예약시간을 입력하면, 기상시간에 달콤한 빵 굽는 냄새가 퍼지면서 빵이 만들어진다. 기분 좋은 냄새를 맡으며 기상하도록 고안됐다. 만일 제때 기상하지 않는다면 그 빵은 까맣게 타버리게 된다. 유도성이 뛰어난 행동디자인이다. 커피머신에 타이머를 부착해도 마찬가지 효과가 난다.

내부가 놀이공원 슬라이드처럼 생긴 모금함도 있다. 이곳에 동전을 넣으면 동전이 슬라이드를 타고 빙빙 돌며 내려가다가 구멍 속으로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려고 앞다퉈 동전을 모금함에 투입(기부)하게 된다.

진동을 이용한 행동디자인으로는 삼각 두루마리 휴지가 있다. 둥글게 말린 휴지는 손으로 당길 때 잘 돌며 휴지가 풀리지만, 삼각형 휴지는 덜컹덜컹하며 풀려 휴지를 많이 사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실험 결과 삼각형 두루마리는 30% 절감효과가 있었다. 리카짱 인형에는 쓴 맛이 도포되어 있다. 아기가 무심코 입에 넣지 않도록 미각을 활용했다. 오사카 한큐백화점 쇼윈도에는 특수거울이 달려 있다. 거울을 보며 웃으면 쇼윈도에 있는 벚꽃이 핀다. 쇼윈도를 최대한 노출하기 위해서다.

도로에 설치된 ‘YOUR SPEED’라는 스피드카메라 표지판은 달려오는 차량의 실시간 속도를 표시한다. 그걸 본 운전자는 속도를 조절하게 된다. 톨게이트 직전 도로면의 우툴두툴한 포장재도 감속효과가 높다. 다이어트를 위해 파란 선글라스를 쓰라는 조언도 있다. 파란 음식을 보면 상한 것처럼 느껴져 거부감부터 든다. 승강기가 있는 로비에 거울을 설치하면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차림새를 가다듬느라 지루하지 않다.

유리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서 서로 문을 밀거나 당기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 경우 당겨야 열리는 문에는 손잡이를 달고, 밀어야 열리는 문에는 누름판을 달면 해결된다. 저자가 직접 실험한 바 전단지를 꽂아놓는 광고판 위쪽에 거울을 설치하자 거울을 보기 위해 광고판으로 다가간 사람이 평소보다 5.2배, 광고판에서 전단지를 뽑아간 사람도 2.5배 많았다. 거울을 보러 간 김에 전단지까지 들고 간 것이다. 거리의 악사는 악기통을 펼쳐놓고 팁을 받는다. 악기 케이스에 지폐밖에 없으면 행인들도 지폐를 넣고, 동전뿐이면 다들 동전만 던져준다.

책에는 오랜 농담이 하나 소개돼 있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을 하던 시기, NASA는 무중력 공간에서는 볼펜으로 글씨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10년 동안 거액을 들여 우주에서도 쓸 수 있는 볼펜을 개발했다. 그런데, 소련은 그냥 연필로 썼다.” 저자는 우주에서 연필을 사용했다는 것이 행동디자인적 접근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NASA도 초기에 연필을 썼다가 전용펜을 개발했다. 영화 <세 얼간이>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연필을 쓰다간 부러진 연필심이 기계장비 속에 날아 들어가 고장을 낼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