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파산부 판사는 ‘채무조정 과정과 내용이 채무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기자의 비판에 대해 “채권 금융회사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우호적일 수 있느냐”는 취지로 줄곧 답했다. 채권금융회사도 이 관계자와 같은 입장일 것이다. 때문에 까다로운 채무조정 절차를 완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금융 채권자가 양보하는 것도 정도껏이라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채무자가 밟는 개인워크아웃, 개인회생, 파산 때문에 금융 채권자는 원래 돌려받아야 될 돈을 못 받으니 손실을 본다는 주장은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금융 채권자가 손실을 본다는 점이 채무조정 절차를 엄격하게 해야 하는 이유일까. 정말 이들은 채무조정으로 손실을 보는 것일까.

채무조정 절차를 엄격하게 운영한다고 해서 금융소비자들이 이를 예상하고 소비와 지출을 줄이지는 않는다. 가계부채로 살림이 버거운 상황에서도 자녀의 학원비가 없다면 다시 빚을 내서 가르치는 것이 대한민국 부모다. 전주지방법원과 같이 파산절차를 엄격히 운영한다고 해서 전주시민과 전북도민의 가계부채 상황이 다른 지역보다 나을 리 없다.

가계의 소비행태는 사회구조 또는 경제구조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사교육비, 주거비, 물가, 임금체계, 산업구조 등이 오히려 가계부채와 직결된다. 개인워크아웃, 회생·파산절차가 엄격하다고 해서 이 때문에 금융소비자가 빚을 줄인다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게 채무상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또 채무조정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한다고 해서 금융채권자들의 손실이 늘어나는 것도 실제와는 다르다. 장기연체 채권은 이미 손실처리가 됐다. 오히려 거의 회수되지도 않는 장기 채권을 주기적으로 비용을 들여 시효를 연장하는 것이야말로 금융회사의 추가 비용이다.

법원과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자들의 빚을 조정하는 이 순간에도 은행 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내 은행의 3분기 중 영업실적을 보면 국내 은행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11조2000억원이나 된다. 역대 최고다.

금융채권자들이 도덕적 해이까지 들먹이며 문제 삼는 채무자들은 과거 어느 때에 은행들의 이익에 일조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채무자가 재산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만 확인되면 금융채권자들이 채무자의 채무조정 절차에서 더욱 관대해야 한다고 본다.

상환할 능력이 된다면 빚을 갚는 게 당연하다. 이 원칙이 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상환이 어려운 상황은 다르게 봐야 한다. 상환 능력 없는 채무자에게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 채무자는 더 이상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없다. 이들에게 유연하고 관대한 채무조정으로 활로를 열어주지 않으면 금융소비자들은 더 나락으로 떨어진다.

기자는 최근 불법 사채업자의 피해사례를 취재했다. 불법 사채업자들은 채무자의 급박한 사정을 이용해 폭리를 취한다. 이들은 20만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후 35만원을 받아낸다. 연 3800%가 넘는 이율이다. 200만원을 빌려주고 8000만원 공정증서를 만들어 강제집행도 일삼는다. 일숫돈을 쓰는 젊은 여성들은 유흥업소 일자리를 전전한다. 또 사채업자들은 10대 청소년들에게도 사채를 빌려주고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비를 착취한다. 이제는 독거노인이 불법 사채업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상담센터와 시민단체에는 이런 상담사례가 넘쳐난다.

일단 불법 사채시장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면 제도권의 채무조정은 요원해진다.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길을 넓혀야 줘야 하는 이유다. 어느 한편으로 그것은 채무자의 경제활동을 독려하는 방편 중에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