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과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청산 정책은 서로 통한다"

 중앙대학교와 교육문화기관 예인경영문화원이 13일 주최한 세미나에  초대된 알렉스 카르 드 말베르(Alex Carre de Malberg) 프랑스 고등상업학교(HEC) 교수의 평가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과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같이 근무하기도 한 동료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현재 투자자문사 알렉산더 파트너스(Alexander Partners)와 아랍에미리트의 투자은행 누르 캐피탈(Noor Capital)의 최고투자책임자도 겸임하고 있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이날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공공 영역에서 비효율을 제거하려는 마크롱 정부의 기조와 잇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 양국 모두 중앙집권화 전통이 강한 국가이고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가 높았기 때문에 개혁과정에서 서로 참고할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 알렉스 카르 드 말베르 프랑스 HEC 교수(촬영=천영준 기자)

‘한국, 프랑스만큼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프랑스의 가장 큰 과제로  고질적인 저성장과 실업의 해소였다.   2009년 이래로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1%대를 맴돌고 있고, 실업률은 10%대에 육박했다. 과거에는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를 대표하는 경제대국이었지만, 지금은 독일만 못한 수준이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이에 대해 “사회 전반에 고질적으로 배어 있는 비효율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풍부한 복지, 사회안전망이 역설적으로 ‘일하지 않는 프랑스’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또 공공 분야의 비중이 강한 프랑스 특성상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주된 저성장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게다가 프랑스는 삼성이나 LG처럼 국가를 대표할 만한 제조업 브랜드도 없다. 7200억달러에 이르는 만성 무역 적자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언제까지고 프랑스가 자부하는 럭셔리 산업, 서비스 산업만으로 세계 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2%대 저성장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지만 프랑스처럼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의 실업은 2012년까지 계속 오르다가 2014년부터는 하락해 올들어서는 3%대에 머물고 있다.   청년 실업까지 고려하면 체감실업률은 훨씬 높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한국 사회가 차가운 경제적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경직되는 분위기에 접어들긴 했지만, 곧 반등 모멘텀을 찾을 것”이라고 긍정 전망했다. 주된 이유는 한국인 특유의 활력과 경제 정책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국가 내부 분위기 때문이다.

고령화ㆍ자동화ㆍ이민자 문제는 프랑스와 한국 공통의 숙제

한국과 프랑스가 안고 있는 공통의 숙제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대표 이슈가 고령화다. 퇴직 세대가 급증하고 생산활동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경제의 활력이 줄어드는 분위기가 고착화되고 있다. 도시와 교외 지역 간 불균형도 심해지고 있다. 한국은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프랑스도 6000만 인구 중 1200만 명이 수도권에 해당하는 ‘일 드 프랑스’ 지역에 거주(파리 인구는 1000만 명)하고 있다. 파리, 마르세유나 릴, 리옹을 제외하면 대도시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인건비가 싼 노동력을 고용하기 위해 이민자들이나 이주자들을 이용하는 것도 양국 경제의 유사점이다. 한국에서는 동남아나 조선족 노동자를, 프랑스에서는 알제리나 아랍권의 노동자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들 인구비중이 빠르게 늘면서 사회적 분열이 가속화되는 것도 숙제다. 프랑스는 여러 차례 아랍계 거주민들의 테러를 경험했다. 마크롱 정권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도 ‘이민자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이민자에게 반대 경향이 심한 극우당 국민전선과 중도파 전진당 사이에 정책적 차이가 매우 크다”면서 “한국에서도 이민자 이슈가 곧 정치 현안으로 대두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 통합과 갈등 조정을 매우 중요한 정책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만큼 이민자 문제에 능동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문재인 정부와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적폐청산' 리더십을 비교하는 카르 드 말베르 교수(촬영=천영준 기자)

“공공 일자리 81만개 정책은 더 현실적 접근 필요해”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프랑스가 점점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는 추세로 가는 반면, 한국은 정부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국면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만든 26개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 81만개 공공 일자리 창출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고용을 늘려 일자리 정책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을 것”이라고 평하면서도 “공공 일자리가 단순히 ‘공무원 직의 증가’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사회당의 올랑드 전(前) 대통령까지도 공공 개혁을 내걸었지만 노동조합의 반대로 좌절했다. 마크롱 정부는 노동법 개정과 함께 공공 분야의 구조조정을 통해 비대한 정부 비중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공공 일자리 81만개 창출 정책을 제대로 된 일자리 플랜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공 직업 자체보다는 공공 분야 탓에 파생되는 일자리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면 정부 용역이나 기술 개발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ㆍ사회적 기업 수를 늘리거나 정부의 비핵심 사업들을 대행하는 민간 기관들을 만드는 식이다. 프랑스의 경우 청년 실업률이 23%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수준이지만 공공 분야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은 ‘지양’하고 있다. 고용 유연성이 적고 임금의 하방 경직성도 높아 구조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직접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전문가로 제한하는 게 좋고, 기능적 전문성이 약한 일반 노동자들은 ‘공공 산업’의 범주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적폐 청산 완성은 ‘비효율 제거’로부터”

프랑스도 한국 못지 않게 ‘적폐청산’(Degagisme)이 큰 화두다. 원래 이 개념은 급진좌파인 장 뤼크 멜랑숑이 주창했지만, 유행어로 만든 것은 마크롱 현 대통령이다. 기성 정치인들의 우유부단함, 저성장과 실업의 늪에 깊이 실망한 프랑스 국민들은 신선하고 결정력 있는 리더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정치적 현안 뿐만 아니라 사회ㆍ경제 문제가 맞물려 일어난 촛불 혁명이 문재인 정부를 낳았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반부패ㆍ정의실현ㆍ책임성이라는 점에서 두 정부의 방향은 통하는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프랑스는 공공기관의 요직과 지방핵심 보직을 ‘에나’(ENA)로 통칭되는 국립행정학교 출신들이 장악하면서 관료화와 수구화 경향이 짙어 졌다.

수 차례 이어졌던 아랍 과격분자들의 테러도 ‘에나 출신들의 편법 행정’이 낳은 산물이었다는 지적이 프랑스 내부에서 여러 번 제기됐다. 카르 드 말베르 교수는 “마크롱 정부는 공공 파트의 고정관념과 비효율과 계속 싸워야 한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적폐청산도 결국 사람들의 습관과 관행을 고치는 일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