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305×145×80㎝ (오른쪽)230×60㎝(전체)

 

“이윽고 지난날과는 판이하게 여윈 모습의 호세가 나타나 다시 한 번 옛날로 돌아가자고 카르멘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냉랭한 그녀는 사랑의 증거로 받았던 반지를 그에게 내던져 버린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호세는 장내에서 울려 나오는 함성을 들으며 카르멘을 찌른다. 그리고 투우장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군중 앞에서 쓰러진 카르멘의 주검을 끌어안고 “내가 죽였다! 아 카르멘, 사랑하는 카르멘! ……하고 외치며 통곡한다.”<비제(Georges Bizet)/오페라 카르멘(Carmen), 이 한 장의 명반②, 안동림 지음, 현암사 刊>

 

밤하늘 수많은 은하수가 깊은 바다 심연으로 들어가 시원의 물과 마침내 만난다. 소멸과 순환의 필연인가, 신성한 의식이 끝난 무대. 인간의 살갗이 서로 부대끼며 황홀한 리듬의 검무(劍舞)가 짜릿한 전율로 몸통을 휘감는다. 엉켜진 마음을 치유 망(網)으로 소통하듯 영원성을 담은 청금석 울트라마린블루(ultramarine blue)빛깔 씨방(房)이 저 사랑과 증오, 권력과 배신, 절정과 허무로 번들거리는 욕망덩어리를 허공으로 내던진다.

은과 금빛 실로 엮여 낸 황홀한 색상의 실루엣이 폭죽 터지듯 가는 신음소리를 내며 어두운 밤하늘을 찬란하게 수놓았다. 누군가 매혹의 허무함을 탄식했다. 또 누군가는 씨앗은 역설의 다발이라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는 것이다. 직관이 최고의 소통인 존엄의 공간에서 다채로운 색채감의 몸통은 ‘발아할 것인가 아니면 스며들어 뜨겁게 달굴 것인가!’ 일생을 건 결정의 떨림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 (왼쪽)265×40×30㎝ (오른쪽)270×45×30㎝

 

◇이성과 감성의 융합

어찌 검들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지축을 뒤흔든 제국의 시대뿐이겠는가. 디지털문명의 거대도시와 첨예해진 에고이즘에 ‘검의 꽃’은 삶의 순결한 출로를 제시한다. 작가는 인류사에서 승리의 깃발에 아로새긴 검의 형상을 단순 간결한 그러면서도 열망을 담은 욕망의 심벌로 환치시켰다. 이것이 현대성이다.

또 무기로서의 검을 조형한 것은 아니지만 문명의 발자취에서 검이 갖는 신화와 역사적 배경을 감안 할 때 ‘The flesh of passage’시리즈는 다각적 의미와 해석의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품은 다채로운 실, 격정의 색감들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촘촘하게 팽팽하게 엮은 표면은 매우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키며 다가가 들여다보게 만든다.

 

▲ The flesh of passage, 315×700×1200㎝ 가변설치, 스텐리스 스틸 레진 실, 2017

 

빛을 받을 때마다 우러나오는 자연색의 순수느낌은 인공적인 것과는 다른 깊이로 감성을 자극한다. 누에꼬치에서 뽑은 견(絹)처럼 한 올 한 올 실들의 근원을 생각해 보라. 생의 깊은 생채기를 동여매듯 그 가는 실들이 팽팽하게 감싸 고름을 뱉어내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 아린 바람을 막아주며 쓰라림을 나눈다. 그것이 함께 부르는 노래, 인의(仁義)의 숭고함에 피어나는 꽃과 다름 아니다.

저 한 자루 검처럼 궁극의 홀로 가는 인생여정에 칼의 끝 마지막 한 점에 거는 욕망의 굴레는 무엇이런가. 그것이 채워지면 비로써 그때 완전한 자유의 평온을 맞이할 것인가. 최정윤(Sculptor CHOI JEONG YUN,崔丁允)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검은 이성, 꽃은 감성이다. 이 융합은 관람자에게 신선한 재미와 상상력을 제공한다. 나아가 자아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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