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밴드에 올라온 임원의 글

어느 날, 팀원들이 가입해 있는 밴드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실장으로 있는 임원이 유익한 정보라며 새벽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일명 받은 글이었다. 내용은 ‘대통령 공약인 휴대폰 기본요금 인하로 오늘부터 휴대전화 요금 할인 20%로 되네요. (중략) 널리 알리면 좋을 듯’이라는 내용이었다.

글을 올린 시각이 새벽 1시 58분이었고, 마침 그때까지 잠이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자다가 알림 소리에 깼는지 2시 무렵에 답글이 2개가 달린 것도 놀라웠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와 ‘바로 신청해야겠습니다’였다. 그 댓글의 주인공은 상무 바로 아래 직급이지만 팀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들이었다. 휴대폰에서 알람 소리가 계속 울렸다. 새벽에 올린 박 부장과 김 차장 뒤를 이어 이 차장, 강 과장이 출근 직후에야 글을 봤는지 연신 답글을 달아댔다.

그런데 팀 막내가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많은 매체들에서 ‘휴대전화 요금 할인 20% 공약’은 가짜 뉴스로 보도됐고, 루머가 계속 나돌아 통신사들에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성은이 망극하다’는 댓글이 계속 올리고 있었다.

임원이 올린 것이 가짜임을 지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이 ‘감사하다’는 답글을 다는 것이나, 모두가 곤하게 잠든 새벽에 올릴 만한 엄청난 정보인가 하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팀원 모두가 댓글에 동참하는 것을 보다 못한 막내는 댓글은 포기하고 웃는 이모티콘을 하나 남겼다.

 

선이라고 생각한 행동, 누군가에겐 독선

주 실장은 평소 팀원들에게 잔소리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심하게 꾸중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팀원들은 그를 ‘훈계꾼’ 내지는 ‘간섭하는 잔소리쟁이’라고 여긴다. 물론 대놓고 그런 돌직구를 날리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든 피하는 느낌이 역력하다.

젊은 세대들을 좇기 위해, 팀원들이 참여해 상시적인 협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든 단톡방과 밴드 그리고 페이스북에 대한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주 실장이었다. 의도는 순수했다. 그도 소통을 바랬다. 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좋은 방안이라 여겼고,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동창회 모임에서도 은근히 자랑 삼아 얘기했다. 첨단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소통 잘하는 리더’로 말이다.

외부 일이 있을 때는 팀원들에게 스스럼없이 카톡으로 문서를 보내게 해서 검토한 후 의견을 주기도 했다. 지인들이 보내주는 우스갯소리나 좋은 글들은 도움이 되라는 생각에 팀원들에게 챙겨 보냈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와 달리 팀원들은 휴대폰에서 카톡이 도착했다는 신호음만 들려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내가 선이라고 믿는 것이 혹시 독선이 아닌가라고 의심해 봐야 한다.’ 한양대 석좌교수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인 윤석철 교수가 그의 저서 <경제, 경영, 인생 강좌 45편>에서 강조한 말이다. 신세대 스타일로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서 만든 카톡과 밴드가 상사의 입장에서는 언제 어느 때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일지 모르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항상 보이지 않는 구속이다.

프랑스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노동개혁법안에 추가했다고 한다. 2017년 1월 1일부터 법안이 발효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제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법제화 이전에 이미 동참하는 기업들도 생기고 있다. 팀원들을 알뜰하게 챙기고 항상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상사의 마음은 선이라고 믿고 싶지만, 당하는 팀원들에게는 독이다.

 

산교육이라 생각한 “왕년에 말이야”

사실 선배 입장에 있는 팀장이나 임원들은 어떻게 하면 팀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회식 자리도 산교육의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도움이 될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런데 대부분이 “왕년에 내가 말이야”로 시작된다.

그냥 할 순 없으니, 술잔이라도 건네면서 시작된다. 친해지고 싶기도 하기 때문에 엮일 수 있는 뭔가를 자꾸 만들어 낸다. 또 팀원들이 뭔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귀한 계기이기에 다시는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금과옥조를 읊는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사놀음이라 생각할 뿐이다.

‘가장 좋은 부장은 자리에 없는 부장’이라는 말이 있다. 문자나 카톡을 보내고 답장이 몇 분 내로 오는지 카운트하면서 열 받기보다, ‘업무에 열중하고 있구나’ 하는 신뢰를 먼저 장착해야 한다. 상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꾸 뭘 해서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지만, 사실 뭔가를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더 행복해 한다. 팀원들을 키워 주는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