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스마트 스피커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국내 음원 시장이 함박웃음이다. 인공지능이 스마트 스피커를 선택한 것은 다양한 인터페이스 중 하나를 선택한 것에 불과하고, 기존의 인터페이스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빅데이터와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원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은 운명처럼 음원을 통해 스마트 스피커를 출시하는 방식으로 첫 발을 떼었다.

▲ 자료사진. 출처=픽사베이

다시 각광받는 음원 전성시대

카카오가 인수한 음원 서비스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멜론은 부동의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유료가입자는 연평균 11%씩 성장하고 있으며 3분기에만 약 15만명 늘렸다. 영업이익은 전년 분기 대비 28% 성장한 267억원이며, 매출은 36.7% 증가한 1513억원이다. 국내 음원 시장에서 점유율 6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박성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카카오와 멜론의 협력은 다방면에서 추진되고 있다”며 “향후 시너지는 더욱 배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KT와 LG유플러스가 협력하고 있는 지니뮤직도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 3분기 매출 113억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11억원이다. 멜론의 강세가 여전하지만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0%나 뛰어오르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멜론과 지니뮤직의 성과는 ICT 기업의 트렌드인 인공지능 경쟁력과 만나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멜론은 카카오의 카카오미니 스피커와 함께 빠르게 외연을 확장하고 있으며 SK텔레콤과도 협력하고 있다. 강력한 생활밀착형 플랫폼을 가진 카카오의 인프라와 인공지능 스피커를 구성하는 콘텐츠 파워가 눈길을 끈다.

지니뮤직도 KT의 인공지능 스피커인 기가지니에 기본으로 탑재된 상태다. 3분기 B2B 부문 매출에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6.5% 증가한 254억원을 달성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LG유플러스의 인공지능 스피커도 연내 출시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만약 LG유플러스의 인공지능 스피커도 출시되면 기가지니가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은 기가지니를 넘어 LG유플러스 인공지능 스피커로 크게 확장될 수 있다.

네이버의 네이버뮤직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온라인 플랫폼을 바탕으로 음원 경쟁력을 체화시켜 자신들의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인공지능 스피커인 웨이브는 라인과 함께 네이버뮤직과의 강력한 연동이 핵심이다.

음원 콘텐츠가 인공지능 플랫폼의 핵심요소로 부각되자 ‘능력있는 음원 사업자’를 확보하지 못한 ICT 기업이 방을 동동 구르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가지니와 누구, 카카오미니, 웨이브 등 다양한 인공지능 스피커 플랫폼이 등장하며 음원 사업자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며 “NHN도 간편결제 시장에서는 페이코를 통해 다양한 프로모션으로 승부를 볼 수 있었으나, 인공지능 플랫폼 경쟁에서는 뚜렷한 음원 사업 파트너를 찾지 못해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카카오미니 체험존. 출처=카카오

스트리밍 음원 시장의 딜레마

인공지능을 비롯한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음원, 즉 콘텐츠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필연적으로 플랫폼을 흐르는 콘텐츠의 양과 질에 민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스마트 스피커의 등장과 음원 시장의 호조세가 겹치는 이유다.

그러나 음원 시장의 구조를 플랫폼 사업자와 실제 콘텐츠 생성자로 분리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음원 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실제 음원 시장의 건전성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달리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음원 시장의 주류는 스트리밍이다. 다운로드로 음악을 스마트 기기에 담아 즐기는 것보다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음원 시장에서 스트리밍이 80%, 다운로드가 2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LTE를 중심으로 통신 인프라가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스트리밍 방식이 국내 음원 시장에 불러온 파괴적 후폭풍이다. 2000년대 초 음반업계에 불황이 닥치며 도소매점이 무너지던 당시, 음원 시장은 우후죽순 등장한 불법 플랫폼의 등장에 대비해 스트리밍으로의 전환을 전사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짜’인 불법 음원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낮은 가격’을 무기로 내세우며 사단이 났다. 음원 시장의 질서가 스트리밍으로 재편되며 ‘콘텐츠 대가 지불’이라는 질서를 마련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대가의 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다는 점에 있다.

결정타는 월정액 모델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음원 스트리밍 무제한 듣기 등으로 월정액 모델을 도입하자 콘텐츠의 가격은 더욱 낮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불합리한 수익구조배분도 있다. 가뜩이나 월정액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시장의 내실이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음원 콘텐츠 매출 중 서비스 사업자와 유통사가 무려 49%를 가져가는 수익 모델이 확립되고 말았다. 반면 창작자는 매출의 10%를 나눠가질 뿐이다.

음원 시장이 기술의 발전으로 규모의 경제를 누리기 시작했으나, 플랫폼 사업자를 중심으로 고착화된 불합리한 수익 모델로 인해 생태계가 허약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창작자들이 자신의 저작권을 팔아 새롭게 창작에 나서는 일도 생긴다. 스트리밍으로 고착화된 음원 시장에서 콘텐츠 가치가 헐값에 넘어가자 아예 저작권을 주식처럼 처분해 목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물론 일부 콘텐츠 제작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기도 하지만, 이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대부분의 콘텐츠 제작자는 현재의 유통구조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관련 저작권 거래 사이트인 ‘뮤직코인’이 등장한 이유다.

▲ 우버. 출처=픽사베이

스트리밍, 그리고 온디맨드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음원 시장이 팽창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수익은 플랫폼과 유통사가 가져가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축이 되어 음원 징수규정 개정안을 발표했으나 상황은 지금도 나빠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음원 시장의 팽창과 불합리한 유통 구조의 행간에서 온디맨드 플랫폼 사업자가 미치는 우리 사회의 거시적 영향력을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스트리밍 음원 방식은 ‘자신이 원하는 순간 음악 서비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말 그대로 온디맨드 방식에 가깝기 때문에, 현재 많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벌이고 있는 O2O 사업의 미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망은 우울한 편이다. 만약 지금의 모빌리티, 배달, 숙박 등 다양한 O2O 기업이 온디맨드 방식으로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할 경우 그 연장선에서 공급을 위해 달리고 있는 콘텐츠 제작자들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좁아지기 때문이다. IT 칼럼니스트인 이반 오도니엘스가 “우버는 모든 사회의 비정규직화를 양산할 것”이라고 말한 결정적인 이유다.

온디맨드 플랫폼 사업자는 공급과 수요를 맞추며 생태계 전반을 콘트롤 할 수 있다. 나아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온디맨드 방식이 완전한 트렌드로 자리를 잡으면, 최소한 플랫폼에 속한 공급자부터 서서히 수요자로까지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다. 그 시작은 비정규직화와 낮은 수익 배분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으며, 궁극적으로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의 음원 시장이 그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