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알리바바가 주도하는 쌍11절(광군제)이 올해도 인상적인 성과를 거뒀다. 알리바바 기준 하루 만에 매출 28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줬다.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거래액 비율은 총 거래액의 90%를 차지해 완전한 체질개선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14만개의 브랜드가 참여했으며 알리페이로만 총 14억8000만 건 이상의 결제가 이뤄졌다.

알리바바의 신유통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프라인 인프라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유통을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어 방대한 빅데이터 운용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쌍11절이 의미있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쌍11절을 최근 해빙모드로 돌아선 한중관계 회복의 신호탄으로 여기고 있다. 알리바바 광고에 한류 연예인 전지현 씨가 등장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문 당시 중국에서 한류 연예인들이 일거에 모습을 감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있는 변화다. 여담이지만 전지현씨 주연의 드라마인 '푸른 바다의 전설'은 시작부터 중국 시장을 노렸으나 사드 보복으로 현지에서 정식 방영은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 타오바오 쇼핑몰 이미지에 등장한 전지현 씨. 출처=타오바오 갈무리

국내 기업들의 매출도 쌍11절 덕분에 눈부시게 비상했다. 국내 쇼핑몰의 대중국 플랫폼 매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두 배 이상 뛰었으며 라인프렌즈는 티몰에서 총 매출 46억원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유통 플랫폼이 쌍11절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모처럼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축제 분위기가 만연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얼어붙은 한중관계가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현재, 쌍11절은 두 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일종의 증거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일까? 냉정해 질 필요가 있다. 알리바바에 따르면 올해 쌍11절에서 중국 소비자들이 구매한 국가별 상품 순위 기준 한국은 일본 미국 호주 독일에 이어 5위에 올랐다. 지난해 3위였으나 이번에 2계단 미끄러진 셈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한한령의 존재를 고려하면 선방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사실 진짜 핵심은 여기에 있다.

5위라는 수치는 선방의 키워드가 아닌 중국 현지인의 구매 패턴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 물량은 대부분 '중저가'에 방점이 찍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경제상황이 좋아지며 현지인들의 눈높이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번 쌍11절에서도 여실히 증명됐다. 알리바바 플랫폼 기준 매출 종합 50위권에 들어간 외국 브랜드는 19개지만 한국은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안마당' 역할을 하던 미용 화장품 부문에서는 이니스프리가 9위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으며 의류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합쳐 일본의 유니클로가 1위와 2위를 석권했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 유통 플랫폼이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이번 쌍11절 매출은 선방한 성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세밀하게 살펴보면 중국 현지인들은 이제 한국산 중저가 제품보다, 유럽과 일본을 비롯해 미국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심지어 관심있는 제품의 영역도 다양해지는 분위기다.

3위에서 5위로 밀려난 결정적인 이유다. 이건 '위기 속 다행'이라고 자위할 부분이 아니라 순수하게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현 정부가 외교분야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두 나라의 해빙모드'라는 정치공학적 접근으로 쌍11절 결과에 축배를 들기는 시기상조라는 뜻이다. 시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성급한 예단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강력해지며 모든 콘텐츠와 플랫폼을 최상단 플랫폼으로 빨아들이는 장면도 공포스럽게 이해해야 한다. 아마존이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낮지만, 아마존이 국내 콘텐츠(상품)을 빨아들여 세계에 소개시킨다는 명목으로 플랫폼 전쟁에 우위에 서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얼마 팔아 기분이 좋다"며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알리바바라는 거대한 플랫폼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고찰도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복잡한 문제의 희미한 실마리 하나만 잡았을 뿐이다. 설레발은 그만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