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짬짬이 시간을 내서 미국드라마를 탐닉하는데, 최근에는 중독 수준이다. 선호하는 장르는 The Wire(거대한 마약 조직을 수사하는 경찰 특수팀을 다룬 드라마), Breaking Bad(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고등학교 화학교사가 가족의 앞날을 위해 졸업한 제자와 동업하여 마약을 만드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 Orange is the new black(뉴욕 연방 여자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드라마)와 같은 마약/교도소/갱스터 등 사회적 음지와 관련된 드라마들이다.

물론  The Wire는 버락오바마가 20세기 최고의 TV드라마라는 극찬을 했다 길래 궁금증에 보다가 빠져들게 되었고, Breaking Bad와 Orange is the new black은 최고의 미드를 뽑는 상인 에미상을 수차례 수상했다는 명성과 필자가 넷플릭스의 유료회원이라는 개인적 상황에 시작되었는데, 멈추지 못하고 끝을 보았다.

조폭이 트렌디하게 연장질을 해줘야 흥행이 되는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드라마에서 마약, 갱스터 등의 소재가 흥행의 필수요소인 이유는 시청자들이 사회적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집단 지성의 능력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개인 개별의 무력감은 더 커져가게 될 수 밖에 없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현실을 모두 무시하고 주입된 환상 속에서만 위안받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조폭이나 마약 등 일탈과 개인능력발휘가 가능한 드라마 캐릭터를 통해 참아왔던 답담함과 울분을 풀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욕구가 현대 시청자들에게는 넘쳐난다.

 세상 내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보통 사람들은 두가지 선택을 한다. 필자처럼 드라마 탐닉을 하거나, 자녀양육, 스타를 추종하는 등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한 관심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던가, 알코올이든 담배든 마약이든 심지어 운동을 하던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중독은 야생상태의 뇌를 동물원에 가둬두고 사료를 주며 키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야생의 뇌는 행복이라는 먹이를 다양한 노력을 통해 섭취하게 되는데, 종종 끼니를 거르기도 한다. 반면 중독된 뇌는 야생의 먹이활동을 포기하고, 정기적으로 사료만 섭취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에는 야생의 능력이 퇴화되고, 사료를 통한 행복감만 탐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료가 마약이 될 수도, 술이 될 수도, 담배가 될 수도 있다.

 적폐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자정작용 없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이려면 집단적 중독 상태에 있어야 한다.

사회의 야생 생태계와는 동떨어져서 그 집단만의 먹이활동에만 집중하고, 그 먹이활동에 방해가 되는 경우에는 윤리나 법에 반하더라도 집단적인 행동을 한다. 왜냐하면 그 동안 익숙해졌던 먹이가 없어지면 다시 야생의 생태계에 적응할 수 없고 다시는 행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공포심 때문이다. 적폐조직의 리더는 이러한 금단증상으로 인한 공포심을 잘 조장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작업이 벌써 지쳐가고 있는 듯 하다. 영화 부산행의 좀비처럼, 사회적 마약에 중독된 적폐집단은 직접적으로 공격해봐야 힘만 빠질 뿐이다.

먼저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을 손 봐야 하고, 금단증상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견으로는 우리 사회는 마약을 공급하는 조직을 손보는 능력은 매우 높지만, 금단증상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포용하는 능력은 평균 이하인 것 같다.

나도 중독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미드에도 중독되어 있고, 스마트폰에도 중독되어 있는 것 같아 이런 글 쓰는 것도 참 아이러니 하다. 그래도 변명하자면, 개인 차원의 중독은 사회적 영향이 제한되지만, 극우 / 극좌 / 극단주의 종교 등등 사회적 차원의 집단 중독은 그야말로 대량학살을 일으킬 수 있어 치유되어야 할 적폐이다.

어금니아빠 사건으로 필자는 매우 충격 받았는데, 이영학은 성적행위를 통한 지배를 해야만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매우 장기간 철저하게 중독된 인간인 것 같다. 뇌가 느끼는 행복 매커니즘이 변태적인 방향으로만 중독되어 성적으로 지배할 대상을 유지하는 것에만 행복을 느끼니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악마 같은 짓을 해댄 것이다.

개인적 중독 역시 어그러진 환경에서는 이렇게 무섭다. 이것도 사견이고 다소 비약적이지만, 이런 엽기적인 개인 중독자들이 만들어지는 건 철저히 사회의 적폐를 해결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번 권력의 향방이 좌우로 바뀔 때 마다, 상대 적폐 중독 집단을 물리적으로 궤멸하는 복수로 인해 수많은 좀비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제발 앞으로는 마약 중독자를 어떻게 치유하고 정상 생활에 복귀시킬 수 있는지 벤치마킹을 해서, 사회적 부작용이 없게 적폐를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