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검색창에 '물타기'를 입력해 봤습니다. 지식백과가 최상단에 뜨며 "시사상식사전, 매입 주식이 하락하면 그 주식을 저가로 추가 매입해 매입평균단가를 낮추는 투자법"이라고 나와 있군요. 금융 전문 기자가 아니라 '내 생각과 다르네'라고 생각하며 연관 검색어에 '물타기 뜻'이 있어 클릭했습니다. 비슷합니다. 그런데 웹문서 분류에 이런 글이 있네요. '다른 주제를 들고 와서 이목을 끄는 것'

▲ 출처=네이버 갈무리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러고 보니 이상합니다. 불과 몇 주 전만해도 네이버와 관련된 이슈를 취재하고 기사를 쓸 때 가장 집중한 이슈는 네이버 뉴스 배치 조작, 순화하자면 '뉴스 임의 배치'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글 코리아와 관련된 글로벌 ICT 역차별 논란과 관련된 장황한 기사를 쓰고 있네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을까요? 제가 어리석기 때문이겠죠. 숨 한 번 고르고, 약간 길게 보며 곰곰히 생각해 볼 순간이 왔습니다.

 

네이버와 구글 코리아가 난타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해진 창업주가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문제를 꺼냈기 때문입니다.

단지 '억울해요'라고 말했으면 그냥 넘어갔겠죠. 그런데 무려 14번이나 '구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구글 때문에 억울해요'라고 말하면서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크게 보면 세금, 고용, 공공성입니다. 이해진 창업주는 구글이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고용도 별로 없으며, 공공성 측면에서 딱히 자랑할 수준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2일 구글 코리아가 반박자료를 내며 발끈했어요. 매출은 공개할 수 없으나 세금은 정상적으로 내고 있으며 수백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고, 공공성 측면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9일 네이버는 재반박 자료를 내놓으며 맞불을 놨습니다. "구글 코리아가 세금을 잘 내고 있다면 매출을 공개해라. 고용 인원이 얼마나 되나. 너희들 망사용료 내지 않지? 그리고 공공성? 너희도 어뷰징, 상업성 심각하잖아. 또 막대한 로비도 하면서 무슨...우리는 민감한 정보 밝혔다. 이제 너희 차례야"

모든 사람들이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글 코리아의 국내 매출이 얼마로 추정되는지, 그 돈이 어떻게 싱가포르로 가는지, 고용 조건과 공공성에 대한 가치는 무엇인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 출처=네이버 입장문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여?"

저 개인은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구경꾼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화재와 싸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느새 네이버와 구글 코리아의 충돌을 보면서 그 단면에 집중하고 있어요. 구글 코리아 세금, 고용, 그리고 공공성에 이르는 모든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서 네이버가 빙그레 웃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네이버가 글로벌 ICT 역차별 이슈를 정성스럽게 꺼내자 뉴스 배치 조작 이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전략일까요?

확정할 수 없지만 단서는 있습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해진 창업주가 계속 구글 이야기를 하며 글로벌 ICT 역차별 이슈를 거론하자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제윤경 의원은 "구글이 문제 없다는 것이 아니다"면서  "거기는 괜찮고 네이버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구글 이야기를 그만하라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그러나 이해진 창업주는 계속 구글 이야기만 꺼냈습니다. 구글의 한국 점유율이 낮아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나왔어요. 결국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이 "잘못된 논리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론으로 구글 코리아가 2일 자료를 내며 현안의 이슈는 완전히 글로벌 ICT 역차별 문제로 이동했습니다.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구글 코리아가 네이버에 희망의 동아줄이 되는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겠네요.

네이버는 9일 자료를 통해 전선을 더 확장시켰습니다. 세금과 고용, 공공성 이슈는 물론 알고리즘과 외부의 압력에 대한 새로운 제안까지 나아가며 판을 키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데이터, '네이버는 2016년에만 734억원의 망사용료를 지불했다'까지 거론하는 카드도 꺼내며 모두의 눈을 잡아뒀습니다.

네이버 9일 자료에서 의미심장하게 본 대목이 두 곳 있습니다.

먼저 네이버의 전제.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주의 국회 발언에서 구글과 관련된 언급은 “세금을 (하나도) 안 낸다”, “고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제대로) 안 낸다.”, “(이익에 합당한) 고용이 없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는 해당 문제들이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것인 만큼 맥락상 분명한 부분이라고 강조했어요.

사실이겠죠. 다만 세금을 (하나도) 안 낸다, 고용이 (하나도) 없다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지점이 왜 중요하냐면, 구글 코리아가 발끈하며 2일 입장자료를 낸 시작점이 바로 여기이기 때문입니다. 구글 코리아는 '세금을 (하나도) 안 낸다, 고용이 (하나도) 없다'로 해석했기 때문에 2일 자료를 낸 겁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네이버는 '그런 뜻은 아니야'라고 말하네요. 싸움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핵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후 "그래도 싸우자"고 말한다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다음으로는 핵심 이슈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 창업주는 국정감사 전 왜 화두로 부상했을까요? 증인출석 거부해서? 총수로 지정되어서? 맞는 말이지만 결정타는 뉴스 배치 조작입니다. 정치권에서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해진 창업주는 국정감사에 출석해 글로벌 ICT 역차별 이슈만 줄기차게 거론했습니다. 그래요. 위에서 설명했으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9일 네이버 자료입니다. 모든 논란의 시작인 뉴스 배치 조작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요.

이상합니다. 2일 구글 코리아가 자료를 통해 제기한 대목은 이 문제거든요. 허위클릭과 검색어 조작 등의 문제에서 이해진 창업주가 "구글도 그런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구글 코리아가 "구글 검색 결과는 100% 알고리즘 순위에 기반하고 있으며, 금전적 또는 정치적 압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겁니다.

그런데 9일 네이버 자료를 봅시다. 허위클릭과 검색어 조작에 대한 이야기에 어뷰징과 알고리듬 논란, 금전 압박과 정치 압박만 거론했어요.

축구협회 직원의 민원으로 네이버 스포츠 뉴스 담당자가 손으로 마우스를 조작해 뉴스 배치를 바꾼 일과 어뷰징, 알고리듬 이슈가 같을 수 있나요? 물론 네이버가 이 부분만 보는 확증편향 증세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도 어뷰징 하잖아, 알고리듬 논란도 있잖아, 금전적이고 정치적인 압박 있잖아"라고 받아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공공성의 큰 의미로 보면 직원의 일탈행위와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포털의 검색사업모델을 동일하게 버무리는 것은 무슨 조화입니까? 그 사이에 물의를 일으킨 담당 직원은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차별 문제 중요하다...다만

글로벌 ICT 역차별 문제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집중하면 곤란합니다. 구글 코리아 세금, 고용, 공공성의 가치가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은 것 사실이고 특혜받고 있다는 의혹도 실체가 있지만 네이버는 네이버의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이야기가 다른 곳에서 나왔다면 모를까, 네이버 스스로가 나서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합니다. 또 하나. 네이버도 누군가에게 역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국내 ICT 인프라가 성장하려면 네이버와 같은 기업을 사회가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 동의합니다. 열심히 뛰어야 하는 사람 응원하지 못할 망정 국정감사에 불러 의미없는 호통치는 것. 지양돼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슈를 나눠서 살펴야 하는 법입니다. 이 부분이 아쉽습니다.

그나저나 네이버와 카카오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최근 8개의 매체를 퇴출시켰다고 합니다. 언론이 아닌 네이버가 언론사와 함께 상생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대해봅니다. 네이버는 국내 ICT 업계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기업이며, 더욱 떳떳하게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