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의 방만한 운영으로 혼이 난 서울시가 얼마 전에는 방만한 축제 예산 집행으로 곤욕을 치렀다. 올해 서울시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 예산은 201억원이다. 축제 현장을 이용한 방문자들은 “왜 이 행사들을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얼마 전 김장철을 기해 서울광장에 설치한 김장독 상징물은 “대변을 연상케 한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핀잔에 시달려야 했다.

공공 미술 전문가나 설치 전문가들도 “급조된 축제들이 광화문ㆍ시청 일대 교통을 혼란케 하고 외국인들도 불쾌하게 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중앙정부 단위에서 치러지는 문화예술 행사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감시를 받아 많이 정제가 됐지만, 지자체 단위에서 치르는 축제들은 방만 행정의 표본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역 축제는 그 유형이 다양하다. 전통문화유산에 관련된 축제, 특산물 홍보와 관련된 축제, 지역민들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축제 등으로  나뉜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축제 예산은 지자체장들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로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범위가 넓어 졌다.

과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예를 들어 사과나 배 축제를 한다고 치자. 여러 지자체에서 자기 지역의 농축산물을 모티브로 행사를 주최하다 보면 과연 ‘특산물’의 홍보 효과가 날지 의심스럽다. 최근 들어 농축산물 시장에는 ‘지리적 표시제’, 즉 원산지 표시로 인증을 받는 관행이 일반화하고 있다. 상품의 설득력과 신뢰성 강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과하면 오히려 생산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인증이 제대로 된 시장 신호(market signal)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축제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행사가 넘쳐나면 ‘선의의 이벤트’가 될 수 없다. 자율학기제를 도입했더니 지역 축제를 보고 와서 소감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지역 중ㆍ고교들이 있는가 하면, 방과 후 특기적성 활동의 하나로 지역 축제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학교들도 있다. 당연히 재미있는 것 넘치고 호기심 가질 것 많은 10대 들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사일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뿌리의 빈곤이다. 유럽에서 3월 말 ~ 4월 초마다 치러지는 부활절 축제(Easter)나 일본의 마츠리(祭) 같은 것들은 어느날 지자체가 급조한 전시성 행사가 아니다. 그 지역 주민들의 교류와 아이디어가 누적되며 추진되는 자발적인 이벤트다. 이처럼 역사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해외 축제 행사와 달리 우리네 지역 축제들은 지자체장의 업적주의와 단기 성과 주의로 오염돼 있다.

지금이라도 지자체장들은 과거 동제(洞祭)나 향제(鄕祭)가 왜 인기 있었는지 고민해 보길 바란다. 어렵고 힘든 시절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고 서로 하소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는 것이 축제의 본질 아니던가. 재미있는 것이 많고, 즐길거리가 많은 시대에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전시성 행사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돌이켜볼 일이다. 차라리 ‘사과 3000원 할인 캠페인’이 축제의 기본 정신에 더 알맞지 않은가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