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여행가.’ ‘한복’이라는 고유명사와 ‘여행가’라는 단어를 합쳐 만든 합성어다. 필자가 2014년 본격적인 한복여행을 시작하면서 한복과 문화,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만들어 보았다. 한복을 입고 여행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2010년 이후부터 생겨났다. 당시 몇몇 남녀 대학생들은 한국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여행을 하면서 종일 한복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행사에서나 중요한 유적지 혹은 여행지에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다. 한국, 한글, 독도를 알리겠다고 생각하며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한복을 가지고 길을 떠난 것이다. 출발하기 전부터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엽서나 사진, 외국인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물품들을 챙기며 설레던 학생들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들을 딱히 지칭할 말이 없어 ‘한복 입고 외국에 간 대학생’ 정도로 표기했다. 우리가 속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려 했던 시도였다.

실제로 한복을 입고 있으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입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은 한복이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관리도 어려운 특수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복이 좋아서 여행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특정 종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편한’ 옷들이 많은데 왜 그런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한 불편함을 무릅쓰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 궁금해 했다.

2017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한복은 필수적이지 않아 보인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새로운 패션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시즌별로 대량생산하는 의상들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대 한국인들의 특성상, 어쩌면 한복은 고루하고 따분한, 변화가 거의 없는 옷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렵게 공부하고 알아보고 자료를 뒤져보아야 알 수 있는 한복 대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수많은 종류로 만들어진 옷들이 있으니, 굳이 옛것을 되짚어 선택한다는 것이 특이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역사, 전통과 같은 가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큰 흥미를 끌지 못한다. 재미있지도 않고 힙하지도 않다. 그런 것들이 없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수많은 평범한 선택지 중에 하나가 돼 버렸다.

가성비의 시대다. 지불하는 가격이 낮고, 상대적으로 쓸 만한 것들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요청한다. 물론 그러한 물품들은 질이 썩 좋지 못하다. 싼값에 구매해 버려지는 것들도 부지기수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70년대에 이미 소비의 사회를 기호학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쉽게 구입하여 쉽게 버리는 것 자체가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자리 잡힌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물품을 ‘예쁜 쓰레기’라고 부른다. 지금 당장 이슈가 되는 물품을 구입해 SNS에 업로드하고, 금방 손에 닿지 않은 곳으로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어차피 대부분의 물건은 ‘오래’ 사용되지 못한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한복을 만났다. 이제까지 필자가 알아온 한복은 그냥 ‘대충’ 입는 전통옷에 불과했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취향’에 맞는 옷으로 입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충동적으로 한복집에 가 필자의 입맛대로 색깔을 고르고 필자의 기분대로 디자인을 선택해 한복을 한 벌 맞추었다. 필자 역시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복 치마는 원래 길게 입어야 한다는데, 짧게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은 서로 다른 색깔로 한복 색을 맞춰 입는다는데 그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30여만원 하는 한복 한 벌을 맞추어서 과연 몇 번이나 입을 수 있을까? 비싼 돈 주고 충동적으로 한복을 맞추었는데 예쁜 쓰레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2013년, 필자의 첫 여행 한복은 이러한 혼란과 부담 속에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