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타는 기차 안에서 시리즈물로 붙어 있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사랑니를 뺀 당신의 자녀에게 헤로인을 주시겠습니까?’라는 문구와 함께 10대 소녀가 치과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오래 전 사랑니를 뺐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흔히 약국에서도 살 수 있는 진통제를 치과에서 받았고 사랑니를 뺀 당일에 2알 정도를 먹은 뒤에는 거의 먹지 않았다.

사랑니를 뺐는데 무슨 헤로인을 준다고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다른 광고에서는 ‘운동을 하다 다친 자녀에게 헤로인을 주시겠습니까?’라는 문구와 축구를 하다 넘어져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이 담겼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에 ‘팔을 다친 자녀에게 헤로인을 주시겠습니까?’라는 광고도 함께 있었다.

의아해서 광고를 자세히 읽어보니 마약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진통제 처방에 대해, 의사와 충분히 상담하라는 내용이었다. 그제서야 이 광고가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의 남용을 경고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종종 미국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나 스포츠에 매진하던 우등생이 사소한 부상으로 진통제를 먹고 나서, 여기에 중독돼서 약국이나 병원에서 이를 훔치려다 체포되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한국에서 흔히 먹는 타이레놀이나 게보린 정도의 진통제가 아닌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를 처방받은 경우는 쉽게 중독된다고 한다.

오피오이드는 아편(Opiate)에서 파생한 단어로 마약류와 같은 효과를 주는 진통제를 오피오이드라고 부른다. 오피오이드류의 약물로는 하이드로코돈과 옥시코돈, 몰핀 등이 있다.

원래 오피오이드 약물은 암환자나 중증환자 등의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경우에만 처방됐다. 한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서는 여전히 오피오이드 약물은 암 환자 등에만 선별적으로 처방되곤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1990년대 후반 제약회사 퍼듀파머(Purdue Pharma)가 정부에 강력하게 로비하면서, 치통 등의 가벼운 통증의 환자들도 의사가 처방한 경우에는 오피오이드를 복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퍼듀파머는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복용하면 환자들이 고통을 참을 필요가 없어진다며 중독성을 걱정하는데 그런 문제도 없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불과 20여년 만에 미국의 오피오이드 약물 남용으로 인한 중독과 사망자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히 과거에는 마약을 직접 손에 댔던 사람들이 중독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평범하던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병원에서 처방받은 옥시코돈이나 하이드로코돈으로 인해, 중독자가 되는 병을 고치러 갔다가 병을 얻어 나오는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3만3000명, 2016년에는 2배가량 늘어난 6만4000명이 오피오이드 약물 남용으로 사망하는 등 매일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사망자가 140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오피오이드 사망자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 세계 오피오이드 공급의 80%가 미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99%의 의사들이 오피오이드 처방 시 3일분 정도 지급하라는 권장안을 지키지 않고, 약 25% 정도의 의사들은 무려 한 달분의 약을 처방했다.

다른 마약류와 다르게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사망한 경우 대부분 정상적으로 구입한 하이드로코돈이나 옥시코돈으로 인한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물로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는 기현상의 뒷면에는 이윤을 추구하는 제약회사들과 이들로부터 대가를 받는 의사들, 환자들이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등 모두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추악한 모습이 있다.

고통을 병이 나아가는 현상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동양의 문화와 달리, 고통은 즉각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병이라고 인식하는 서양의 문화 차이도 오피오이드의 확산을 부추겼다.

오피오이드의 급속한 확산에 놀란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행정명령을 통해 백악관에 오피오이드 위원회를 설치했고 지난 10월 26일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마약성 진통제로 떼돈을 버는 제약회사와 무분별한 처방에도 보험료를 지급하는 보험회사가 있는 한 마약성 진통제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