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기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자랑한다. 누구의 쇠사슬이 더욱 반짝이는지, 더 무거운지.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있지 않는 자유인을 비웃기도 한다”

 

극작가이자 논쟁적 인물인 리로이 존스(아미리 바라카)가 남긴 말입니다. 1968년 그가 던진 이 짧은 문장에 현재의 대한민국 언론 상황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우리에게 언론사는 전파를 플랫폼으로 삼는 방송사, 혹은 종이를 플랫폼으로 삼는 신문사를 의미했습니다. 정보의 확보와 교류가 어려웠던 시절 언론사는 그들만의 강력한 카르텔을 구축했고 독점과 자만의 울타리를 쳤어요. 콘텐츠와 플랫폼을 독점했으며 이를 통해 창출되는 의제설정능력을 협상카드로 삼아 권력과 결탁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불어닥친 인터넷 혁명, 인터넷 대중화의 바람은 언론사에게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콘텐츠와 플랫폼을 모두 가지고 있는 쪽은 언론사였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포털사가 콘텐츠 수급을 위해 다양한 사업자를 만나 읍소하며 언론사의 문턱을 ‘닳도록’ 오간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 포털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언론사의 플랫폼 권력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콘텐츠는 서서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SNS가 폭포처럼 휘몰아치며 거대한 흐름은 통제할 수 없게 됐어요.

그렇게 언론사의 포털 종속화는 일종의 ‘공식’으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014년 10월 유럽의 악셀 스프링어는 구글 종속을 거부하며 자체 플랫폼으로 승부를 걸었으나 결국 백기투항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큰 틀에서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언론사들은 한때 SNS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도 했습니다. 포털처럼 정형화된 뉴스 플랫폼 규격을 마련하지 않은 SNS에 많은 이용자들이 몰리자 이를 겨냥한 색다른 시도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이 탄생했습니다.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은 절반의 성공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언론사들은 포털과 싸우기도, 또 화해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화해도 대형 언론사와의 문제라는 한계는 있지만 말입니다.

포털과 언론의 관계를 조망하며 최근 국내 사정만 고려하면 크게 세 가지 변곡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클러스터링 중심의 포털 검색 제휴 뉴스 노출입니다. 지난 2014년 12월6일 단행된 네이버 뉴스검색개편이 중요해요. 네이버는 뉴스 검색에 클러스터링 기술을 도입해 비슷한 주제의 기사를 묶어 3개의 기사만 노출시키고, 나머지 기사는 추가 버튼을 눌러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뉴스 검색제휴 언론사들을 모두 모바일에 노출시키도록 조치했습니다.

클러스터링을 통해 실시간 검색어에 맞춰 기사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어뷰징을 막아내고, 모바일 제휴 확대로 더 많은 모바일 콘텐츠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반응은 엇갈렸지만 큰 틀에서 군소 언론사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로 검색 제휴에 머물러 있는 뉴스 콘텐츠가 모바일에 적용되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클러스터링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콘텐츠의 질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키워드에서 실제 노출되는 기사는 하나가 됐기 때문에, 결국 얻는 것은 별로 없었어요.

두 번째는 2015년 5월28일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 출범을 꼽을 수 있습니다. 뉴스 제휴 평가의 권한과 책임을 포털이 온전히 포기하는 대신,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전권을 쥐게 됐습니다. 위원회 출범으로 뉴스 제휴 평가는 더욱 철저히 비공개로 수렴됐으며 그 기저에는 ‘거대 언론사가 전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불안감이 넘실거렸습니다. 포털은 뉴스 제휴 평가 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논란에서 발을 뺌과 동시에 전재료 협상 등의 부담에서도 ‘살짝’ 짐을 덜었어요.

▲ 2015년 5월28일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 출범.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이후 위원회는 몇 차례 뉴스 제휴 평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며 착실하게 존재감을 쌓았습니다. 2016년 1월 별도의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침을 확정했으며, 최근 2기 위원회가 정식 출범했습니다. 인터넷신문 등록제를 둘러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도 이 즈음입니다.

세 번째는 기존 제휴 매체 탈락이 벌어진 11월3일입니다.

위원회는 8월16일부터 2주간 뉴스콘텐츠와 뉴스스탠드 제휴를 원하는 언론사의 신청을 받고 뉴스콘텐츠 네이버 2개 카카오 1개, 뉴스스탠드 39개 총 41개(중복 1개)매체가 평가를 통과했다고 밝혔습니다. 최초 신청 매체수 기준으로 통과 비율은 15.02%입니다.

핵심은 기존 제휴 매체도 처음으로 재평가해  탈락 매체를 선정한 대목입니다. ‘네이버 카카오 뉴스 제휴 및 제재 심사 규정’에 따라 네이버 9개, 카카오 3개, 총 12개 매체를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그 결과 8개 매체가 탈락했다는 설명입니다. 민중의소리와 아크로팬, 팝뉴스를 비롯해 콘텐츠 제휴를 맺은 코리아타임스가 떨어지는 충격적인 일도 벌어졌어요.

위원회는 다음 달 4분기 재평가를 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누적벌점이 6점 미만인 경우 재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어요. 물론 최소한의 구제장치는 있지만 앞으로 퇴출매체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가 됐다는 평가입니다. 나아가 위원회는 ’기사로 위장한 광고홍보 전송’ 규정에서 ‘홍보’ 단어를 제외했고 ‘기사로 위장한 광고’를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를 유도하는 것으로 구체화했습니다. 또 소비자를 오도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진행했어요. 앞으로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8개 매체가 포털에서 ‘탈락’하자 언론계는 난리가 났습니다.  탈락 언론사에서는 기자들이 나서 포털 콘텐츠 제휴 탈락을 두고 사측의 구체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게시했으며 다른 언론사는 ‘죄송하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반면 몸값이 올라간 언론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포상을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냉엄한 현실이지만...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언론사가 플랫폼 권한을 완전히 포기했음을, 또 영원히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일종의 상징입니다. 기업이 자체 플랫폼으로 브랜드 저널리즘을 강화하고, 최근 존재감이 낮아졌으나 피키캐스트가 미디어로 규정되는 복잡다변한 상황에서 언론사의 입지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차라리 플랫폼 권력만 해체되어도 ‘다행’이라는 자조섞인 반응까지 나옵니다. 범람하는 매체의 파도에서 기자는 이제 정보를 독점하는 존재가 아니고, 또 콘텐츠 제작을 독점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기자들의 바이라인을 연결해 특색있는 콘텐츠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스타 마케팅이 서슴없이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로봇 기자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제 언론사들은 포털 플랫폼에 종속되지 못했음을 죄송해하고 스스로를 비판하고 있는겁니다.

물론 현실입니다. 포털에 제휴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매체의 몸값이 출렁이는 시대에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위원회의 매체 탈락 발표 후 “어뷰징과 광고기사 중 어뷰징에 무게를 두고 심사를 진행했다”는 정보 아닌 정보가 각 언론사 데스크에 중요 자료로 보고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언론사는 중대기로에 섰습니다. 모두가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며, 또 플랫폼 권력은 완전히 해체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