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는 경제엔 양날의 칼과 같다. 원유 수입국엔 수입물가를 자극해서 결국 소비자 물가를 올린다. 특히 저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엔 독이나 다름없다. 반면 원유 수출국엔 소득증가라는 선물을 안긴다. 산유국들은 원유를 팔아 번 오일달러로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원자재나 소비재를 수입하는 만큼 한국 같은 수출국엔 희소식이 된다. 정유사들도 석유제품을 비싼 값에 팔 수도 있다.

이처럼 고유가는 청신호와 적신호가 뒤섞여 있는 만큼 일도양단식으로 고유가를 평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물론 경기호황에도 물가가 오르지 않아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반길 일임에 틀림없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보다는 신흥시장 기초체력에 기여할 것이라며 긍정 평가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과 물가상승 간 상관관계는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고 하나 최근의 유가상승세를 보고 물가상승을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유가상승은 수입물가를 상승시키고 이것이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휘발유를 비롯한 각종 제품 소비자가격을 올리는 탓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가상승은 다른 원자재 가격도 올린다. 그래서 물가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2017년 9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9월 수입물가지수 잠정치는 82.62(2010=100)로 8월보다 1.7% 상승했다. 올해 2월(83.18)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다. 수입물가가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상승 요인이 된다. 10월 이후 유가가 많이 오른 만큼 10월 수출입물가지수는 더 뛸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경제에 당장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8일 1ℓ에 1502.52원인 보통휘발유는 11월 8일 1513.34원으로 10원 이상 올랐다. 고급휘발유는 1834.50원에서 1842.40원으로 상승했다. 자동차용 경유도 1ℓ에 1293.17원에서 1305.54원으로 뛰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선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류 가격은 10월 중 8.2% 올랐다. 휘발유값은 6.6%, 경유값은 7.6%, 자동차용 LPG는 21.0% 올랐다. 공업제품은 1.5% 올랐다. 채소류 가격이 안정되면서 10월 물가상승률이 10년 사이 최저치인 1.8%를 기록했지만 국제유가 상승이 물가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 가계에 주름살이 잡히기 마련이다. 택시업계와 화물운송업계가 직격탄을 맞는다.

각종 공산품과 서비스 이용 요금도 오르는 만큼 결국 가계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도 오를 수 있다. 저성장에 고통받는 서민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질 수 있다.

앞으로 유가가 계속 오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이어지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하이투자증권의 말을 들어보면 이는 ‘기우’처럼 보인다. 하이투자증권은 7일 낸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대에 진입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은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제유가와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유가 60달러 수준까지 상승하더라도 일시 물가상승 압력을 작용할 수 있겠지만 지속으로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이 물가압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국제유가 상승은 신흥국 경제 펀더멘털에 긍정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하이투자증권은 예상했다. 국제유가 상승이 글로벌 교역규모의 추가 확대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신흥국 수출 경기에 긍정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이투자증권은 “더욱이 국제유가 상승이 일부 산유국을 중심으로 투자와 소비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경기 측면에서도 유가 등 원자재 관련 소재와 자본재 수출에 긍정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유가 상승은 아직은 반길 단계라고 덧붙였다.

박상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결론적으로 글로벌 경기 입장에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 초반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 인플레이션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경기에 긍정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적정 수준이라고 판단한다”고 결론지었다.

원유를 정제한 석유제품을 수출하는 정유사들은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원유가격이 낮으면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원유가격)이 높아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원유가격이 갑자기 상승한다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