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의 GE(General Electric Company)가 중국 하이얼에게 주력이던 가전사업부문을 54억달러에 매각했을 당시, 업계의 반응은 정확하게 반으로 갈렸습니다. '선택과 집중'의 키워드로 단행된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의 승부수에 찬사를 보내는 쪽과 ‘위험한 선택’이라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본 사람들은 GE의 변화의지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GE가 어떤 회사입니까. 1892년 발명왕 에디슨의 손에서 태어난 GE는 전구에서 가전제품으로, 2000년대 이후로는 금융사업에도 손을 뻗친 미국의 자존심입니다.

이렇게 몸집이 큰 공룡이라면 변화의 바람에 둔감할 법 하지만, GE는 잭 웰치가 이끌던 황금의 20년을 성공적으로 보낸 후 제프리 이멜트 시대에 이르러 또 한 번 변신을 거듭한 겁니다. 2014년부터 대대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벌여 해양, 항공, 에너지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캐시카우인 금융사업을 분사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 주도로 정리한 자산은 2600억달러(약 294조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노키아도 제지회사에서 출발했습니다. 중국도 인터넷 플러스 정책 등으로 제조업에 ICT 역량을 접목한 새로운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변화하던 상황에서 GE는 승부수를 던졌어요. 지난해 4월 방한했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과거의 성장공식에 매몰되어 미래를 잊으면 성장할 수 없다”며 “지금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리스크 테이킹(위험감수, Risk Taking)”라며 자신감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만나 산업인터넷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탄생시킨 프레딕스(Predix) 운영체제와 데이터 핀테크 플랫폼에 가까운 저체성을 가졌던 자산성과관리(Asset Performance Management)는 변화하는 GE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 11월, 우리는 GE의 판단을 ‘위험한 선택’으로 본 사람들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16년간 주가가 30%나 빠지는 등 휘청이는 GE를 압박한 주주들의 반발로 올해 8월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CEO(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났고 바로 회장직에서도 사퇴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인 넬슨 펠츠가 이끄는 트라이언펀드가 움직였다는 후문입니다.

뒤를 이어 존 플래너리 GE 헬스케어가 CEO에 올랐고, 현재 GE는 경영진 물갈이에 나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뒤늦게 제프리 이멜트 시절 전용기를 2대나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 방만한 조직운영이 도마위에 오르는 한편, 지난달 20일 발표된 GE의 올해 3분기 매출은 335억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제프리 이멜트는 한때 우버 CEO 물망에도 올랐으나 끝내 선택되지 못했습니다.

▲ 제프리 이멜트 전 GE 회장. 출처=마켓워치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요. 다양한 이유와 해석이 나오지만 제프리 이멜트 시절의 GE가 보여준 혁신의 화려함이 ‘더욱 정교하게 설계되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프리 이멜트 시절의 GE를 경험하고 현재 글로벌 제조업체 한국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 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혁신에 대한 열망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방향성을 조직원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나아가 “혁신을 말하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정치적인 모습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도 중요한 패착”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원동력, 즉 화려함에 필요이상으로 방해받지 않는 구체적인 방향성입니다.

제프리 이멜트 시대의 GE를 보면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와 테슬라의 엘런 머스크 CEO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약사업까지 뛰어들며 인공지능 알렉사 에브리웨어 전략을 추구하는 종합 ICT 기업 아마존의 문어발 경영과, 화려한 미래비전을 제시하며 현재를 저당잡혀 미래를 약속하는 테슬라의 비전이 의미하는 묘한 교집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마존의 문어발 경영은 제프리 이멜트 시절의 GE가 아닌, 한때 계열사가 수백개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의 GE와 비교됩니다. 그러나 제프리 이멜트 시절 GE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키워드로 금융사업 등을 분사하며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뛰어든 것도 새로운 영역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봤을 때, 일종의 문어발 전략이라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 방식이 GE가 보여주는 우울한 미래가 비슷할 것이라고 보는 논리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사실일까요? 디지털 플랫폼 구축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졌던 두 회사가 외형적으로 비슷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아마존은 유통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데이터의 보물창고로 만들어 고객의 욕구를 먼저 읽어내는 것을 추구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단순한 디지털 전략이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문어발 전략이라는 주장입니다.

GE를 디지털 인프라 기업으로 바꾸며 파격적인 선택을 보여준 제프리 이멜트의 선택을 화려한 경영자인 엘론 머스크와 비슷하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물론 제프리 이멜트는 실패했으나, 엘론 머스크의 결론은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역시 ‘화려함에 필요이상으로 방해받지 않는 구체적인 방향성’이 말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반대의 주장도 나옵니다. 특히 모델3 리스크에 빠진 상태에서 미국 네바다 주 사막에 위치한 기가팩토리를 둘러싼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는 엘론 머스크의 운명이 제프리 이멜트 행보와 겹쳐질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고 불투명한 시대, 우리는 거대공룡기업을 빠르게 혁신하려고 했으나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 제프리 이멜트의 퇴진을 봤습니다. 만약 한국 기업이었다면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국회 국정감사에 수십번을 불려갔을 것 같은 제프 베조스 CEO와,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을 추구한다는 엘론 머스크 CEO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특히 엘론 머스크 CEO가 궁금합니다. 이 또한 앞으로의 글로벌 ICT 업계 방향성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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