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마의 벽’이라는 배럴당 60달러(브렌트유)를 넘는 등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공급감소 속에 수요가 늘어나니 유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동시에 고유가는 생산을 늘리도록 하는 유인이 된다. 다시 공급이 늘면 유가는 안정을 찾을 것이다. 그럼에도 2008년 6월 배럴당 157.87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된 유가 100달러 시대가 재현되기에는 변수가 지나치게 많아 보인다. 유가 상승 바람을 일으키는 마녀의 발목을 잡을 족쇄는 가격 그 자체인 것이다.

유가를 끌어올린 요인은 공급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산유국들의 감산합의로 공급이 준 것이 첫 번째 요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은 그들의 말을 빌자면 ‘유가 재균형’을 위해 생산을 억제해왔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전 세계 산유량의 2%에 해당하는 하루 180만배럴의 생산을 줄이기로 합의하고 이를 이행해왔다. 산유국들은 유가 수준이 “공정한 가격이 아니다”며 산유량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OPEC의 맏형이자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와 비 OPEC 산유국 중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가 감산합의를 주도했다. OPEC 회원국 중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이라크가 말을 잘 듣지 않고 물량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감산합의 이행은 착실하게 이뤄졌다. 감산합의의 목표는 원유시장의 공급과잉을 없애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감산합의 참여국들은 산유국별 감산합의 이행률을 꼬박꼬박 챙겼다. 이행률의 등락이 있긴 했지만 유가상승세를 보면 잘 지켜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산유량을 줄인다고 해서 시장에 나오는 원유가 갑자기 줄지는 않는다. 비축물량이 넘치는 탓이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서 수급이 빠듯해지면서 유가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산유국들은 앞으로 감산의 고삐를 더 죌 태세다. 내년 3월 말로 종료되는 감산시한을 내년 말로 다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게 그것이다. OPEC은 이달 말 빈에서 정례 연례회의에서 감산합의 재연장 여부를 논의한다. 이미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와 러시아는 감산합의 연장을 지지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OPEC 관계자들도 이런 의사를 감추지 않는다.

특히 사우디 실권자 모하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가 고유가 정책을 펴고 있어 재연장은 기정사실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는 석유장관 교체, 아람코 상장, 미래형 국부펀드 조성, 부패 친족 척결 등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으로 통한다. 실권자인 그의 말은 원유시장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갖는다. 그는 10월 27일 “유가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권자의 발언을 감안하면 이달 30일 OPEC회의에서 감산합의가 재연장될 공산은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둘째, OPEC 2위의 산유국인 이라크의 정정불안도 한몫을 했다. 이라크가 쿠르드 자치지역 내 키르쿠크 유전지역을 장악하자 쿠르드산 원유 수출이 하루 60만배럴 수준에서 20만배럴 수준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국제사회와 맺은 이란 핵협정을 폐기하겠다고 한 것도 유가 상승에 기여했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리자 저가에 물량을 쏟아냈는데, 미국이 핵협정을 공식 폐기하면 이란은 다시 제재를 받아 수출길이 봉쇄될 것이라는 시장의 관측에 따라 유가는 오름세를 탔다.

셋째, 미국의 공급 감소다. 미국은 OPEC 회원국이 아니면서 산유량을 늘려 유가에 하락압력을 가한 산유국이다. 미국은 셰일오일 생산을 늘린 덕분에 산유량이 급증했고 2015년 마침내 근 40년간 유지해온 수출제한을 풀었다. 수출이 늘자 유가는 내렸고 다시 이것이 셰일업체들의 채산성을 악화시켜 생산이 줄었다. 이는 원유채굴장비 숫자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유전정보 제공업체 베이커휴즈는 3일로 끝난 주간에 원유 채굴장비 수가 8개 감소한 729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원유채굴장비 수는 최근 5주 중 4주 동안 줄면서 유가를 춤추게 했다.

미국의 원유재고 감소도 유가 상승에 기여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로 끝난 주간에 미국 원유재고는 240만배럴이 감소하고 휘발유 재고는 400만배럴, 정류유는 30만배럴 각각 줄었다. 이 수치들은 석유제품 수요가 강하고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정유사들이 활발하게 공장을 돌리면서 원유재고가 줄었다는 설명이 가능한 대목이다.

필 플린 프라이스워터스그룹 선임 시장 분석가는 7일 마켓워치에 “최근 공급 감소 조짐과 미국 셰일 생산 둔화가 유가상승 여건을 조성해 미국산 원유가격이 배럴당 50~55달러 박스권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다”고 진단했다.

넷째, 세계 최대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수출부진도 유가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지난 8월 베네수엘라 정부가 초헌법적인 ‘제헌의회’를 만든 직후 미 금융권이 베네수엘라 정부, 국영기업과 채권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강력한 금융 제재를 가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석유회사들은 원유생산에 필요한 화공약품과 유전 시설 유지보수를 위한 장비를 제때 사지 못해 애를 먹었다. 베네수엘라는 유황성분이 많은 자국산 원유에 저유황 경질유인 미국산 원유를 수입해 섞은 다음 수출해왔다. 돈줄이 막힌 베네수엘라의 원유수출이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11월 2일 국영 석유회사 PDVSA의 부채 11억달러의 원금만 상환하고 채무이행을 중단하며 해외 채권단과 부채 재조정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것은 베네수엘라의 처지가 얼마나 다급한지 잘 보여준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제재 탓에 베네수엘라 산유량이 지난 1년간 하루 평균 2만배럴 줄어든 데 이어 내년에 다시 24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다섯째,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과 중국 경제의 호조에 따른 원유수요도 유가를 떠받치는 요인이 됐다. 미국 경제는 2분기(4~6월) 3.1% 성장했다. 국내총생산(GDP)이 18조달러를 넘는 거대 경제가 이 정도 성장하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했음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세계 2대 경제대국 중국도 중속이라지만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10월 20일 발표된 국가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1~3분기 GDP 성장률은 6.9%로 집계됐다. 3분기 성장률이 6.8%로 조금 내렸지만 경제규모에 비하면 결코 낮은 성장률은 아니다. 성장에는 에너지 소비가 따르기 마련이다. 중국의 9월 원유수입량은 하루 900만배럴로 미국을 앞질렀다. 10월 730만배럴로 급락했지만 중국의 원유 갈증은 끊이지 않는다.

진 맥길리언 트러디션 에너지 시장조사 매니저는 마켓워치에 “시장에서는 감산 연장과 견고한 수요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서 “세계 경제도 상황이 좋아 원유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가 하락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유가 상승 자체가 유가에 화를 자초하는 모습이다. 미국 셰일업체들이 산유량을 늘려 재고가 쌓이자 유가가 강한 하락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이 8일 발표한 주간재고동향에 따르면, 미국 내 산유량은 지난 3일로 끝난 주에 하루 평균 6만7000배럴 증가한 962만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1970년에 세운 하루 평균 963만7000배럴의 신기록에 근접한 수치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셰일업체들이 생산에 나선다면 미국의 산유량은 올해 새로운 기록을 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켓워치는 “유가상승은 미국 원유 생산업체들이 생산을 늘릴 유인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숙청 사태, 사우디와 이란 간 대립, 미국과 이란 간 갈등 등의 불확실성도 유가 약세 요인으로 꼽힌다.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부패척결을 이유로 왕족과 장관, 기업인들을 체포하는 등 권력 다지기를 강화하고 있는데 그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사우디는 또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을 조종해 자국을 공격했다고 비난했고, 이란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상호 비방전이 계속되면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타이키 캐피털 어드바이저스의 타리크 자히르 전무는 “EIA 보고서에서 놀랄 수치는 미국의 생산량이 2015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라면서 “미국 생산이 늘고 재고가 쌓이니, 앞으로 사우디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소식이 생기지 않는다면 유가가 앞으로 더 내려도 놀랄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