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던 중,

국내 유력 경제연구소가 얼마전 펴냈던 자료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건 일본 사회학자가 쓴 ‘나는 형제를 모른척 할 수 있을까

-형제 부양에 대한 불안과 리스크‘라는 겁니다.

초고령 사회에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형제 격차와

형제 부양에 대한 불안,해결방법에 대해 쓴 책이 원전이었습니다.

일본이 우리와 대비, 십여년 앞서가기에 그주제가 솔깃했습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로 인한 부모 부양에 불안감 얘기에 더해,

형제 얘기까지 리스크로 표현되는 자체가 영 맘에 걸렸습니다.

 

이 생각은 강력해서 바람을 쐬러 지방을 내려갔는데,

계속 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진입로까지 비포장길을 가는데

심하게 터덜거렸습니다. 그러나 그출렁거림에도,

가파른 산행길였음에도 그 얘기는

머릿속에 계속 생각되어졌습니다.

 

먼저 음식이 귀했던 시절, 여러 형제 친척들과

열리게 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콩 반쪽도 나누어 먹어라’

그 말씀에 이 형제 리스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또 생각납니다

한센인이자 시인이었던 한하운 시인.

그가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에서 썼습니다.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나막신을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먼 전라도 길‘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친구들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끝에 한센인의 공동체를 향해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는 시인의 발걸음에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일본 문화와 우리는 다르고, 다들 상황도 다르겠지요.

이왕 만능인 해결책이 없는 형편이라면,훗날 일 생겼을 때,

다 열고 얘기하며 꺼내 쓸 사랑,애틋함을

공동체와 더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