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 왕실 가계도             출처= 월스트리트 저널 캡처

레바논 총리의 사임, 수도를 노린 탄도미사일 격추, 왕자를 포함한 고위직 긴급 체포 등 사우디아라비아가 격동의 주말을 보냈다.

사우디 살리만 왕자의 개혁

CNN은 5일(현지시간) "레바논 총리 사임, 미사일, 체포 등으로 사우디가 24시간 동안 중동을 뒤흔들었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도 사우디의 상황을 미국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빗대 '토브(아랍 전통의상)의 게임(Game of Thobes)'이라고 표현했다.

CNN은 전날 살만 국왕의 칙령으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반부패위원회를 설립하고, 친척 왕자와 전현직 장관 등이 포함된 최소한 38명의 최고 관리들을 체포했으며 이 중 17명의 명단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명단에는 시티그룹, 트위터, 애플, 디즈니, GM, 뉴스 코프(News Corp.), 아르코 호텔 같은 글로벌 회사들의 주식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킹덤 홀딩스(Kingdom Holdings)의 지분 95%를 가지고 있는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포함돼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의 자산은 약 190억달러(약 21조원)로, 부동산부터 금융, IT·테크, 엔터테인먼트, 호텔, 석유·화학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에 투자를 해 왔으며, 중동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기도 한다.

알왈리드 왕자는 지난 달 로이드 블랭크 페인 골드만삭스 회장과 사우디 리야드에서 만난 뒤 방크 사우디 프란시의 지분 16%를 인수했고, 앞서 3월엔 10년 만에 사우디 은행업 인가를 재취득한 씨티그룹의 마이클 코뱃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향후 계획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아코르 호텔그룹 이사회에 영입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알왈리드 왕자가 체포된 뒤, 그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은 물론, 그가 추진하려거나 추진 중이던 투자들마저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알왈리드 왕자는 최근 들어 애플, 스냅챗 등 실리콘 밸리 거대 IT기업들과 중국계 JD닷컴 등 전자상거래 기업들에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近)중동 및 걸프 군사분석 연구소의 리아드 카와지 소장은 "아랍 세계의 부유한 인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전례 없는 일이고 본 적 없는 일이다. 중동 지역 전체에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 5일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 중동의 ‘워런 버핏’으로 불릴 만큼 부동산부터 금융, IT·테크, 엔터테인먼트, 호텔, 석유·화학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에 투자해 왔다.         출처= alarabiya.net

반부패 숙청 시작됐다

알왈리드 왕자 외에 체포된 장관급에는 아델 빈 파키흐 경제기획부 장관, 빈 술탄 빈 모하메드 알 술탄 해군사령관, 미테브 빈 압둘라 국가수비대 사령관, 리야드 주지사를 지냈던 투르키 빈압둘라 왕자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와중에 5일,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 등은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가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만수르 왕자는 이날 정부 고위 관료 7명과 함께 헬기를 타고 예멘 국경 인근을 이동하던 중 헬기가 추락하면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헬기가 추락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일부 현지 매체에선 전날 압둘아지즈 빈 파하드 왕자도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두 왕자는 모두 현 국왕인 살만 국왕과 빈 살만 왕세자와 왕좌를 놓고 겨뤘던 인물들이다. 만수르 왕자의 아버지는 현 살만 국왕이 2015년 즉위하면서 부패혐의로 폐위시킨 무크린 왕세자의 아들이다. 압둘아지즈 왕자는 파하드 전 국왕의 아들이자 올해 6월 폐위된 무함마드 빈 나예프 전 왕세자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에 앞선 지난 4일에는,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갑작스럽게 총리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우디 순방 직후, 사우디 국영 언론 알아라비야에서 진행한 방송 연설을 통해 "레바논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정치적 통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이란과 그 추종세력이 아랍 국가의 문제에 간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을 발표해 "하리리 총리의 사임은 사우디가 지시하고 강제로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란 역시 "레바논과 중동 지역 전체에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나리오"라며 "그의 이란 관련 발언은 근거도, 근본도 없다"고 밝혔다.

하리리 총리의 사임 발표를 계기로 레바논을 기점으로 수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 간의 영향력 싸움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야신 자베르 레바논 의원은 CNN에 "하리리의 사퇴의사 표명으로 (헤즈볼라와의 평화는)막을 내렸다"면서 "레바논은 또 다시 이란과 사우디의 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4일 발생한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겨냥한 탄도 미사일 발사로 사우디와 이란 간의 갈등에 더욱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예멘 내전에서도 사우디는 왕당파를, 이란은 반군을 지원하며 대립하고 있다. 이날 사우디 항공국은 예멘에서 후티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을 격추해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사우디의 심장을 공격한 첫 번째 사건인 만큼 예멘 내전에서도 긴장이 고조될 전망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

영국 런던 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LSE)의 파와즈 저지스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세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왕국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 2~3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의 능력을 과소 평가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