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약 인공지능의 초입에도 오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당장 감정의 영역으로 밀려올까?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이는 당장의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모바일을 넘어 초연결 생태계 시대가 열리며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으며, 이미 다양한 기술력도 공개된 상태다. 여기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창조했다고 인간이 인공지능을 ‘발견’했다는 접근법만 고집한다면, 강 인공지능의 감정 문제에 획일화된 결론만 내릴 수 있는 실책을 저지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적응력을 보여주어야 할까?

먼저 인정이다. 인공지능 기술력이 당장 감정의 교류라는 고차원적 단계로 진격할 가능성은 낮아도, 이미 시장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이 소개되어 있다. 앞에서 설명한 소니의 아이보 등 로봇과의 연합으로 감정교류만을 목표로 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 데다 감정의 연결선을 가장 세심하게 보여주는 예술에도 인공지능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독일 뮌헨에서 지난 10월 열린 ‘GTC 유럽(GTC Europe)’ 행사에서 캠브리지 컨설턴트(Cambridge Consultants)의 딥러닝 기반 애플리케이션인 빈센트가 공개됐다. 기본적인 스케치만 제공되면 미술대가의 스타일로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인공지능이다. 캠브리지 컨설턴트의 인공지능 연구실인 디지털 그린하우스(Digital Greenhouse)가 수천 시간을 들여 연구한 성과를 토대로, 5명으로 구성된 팀은 두 달 만에 빈센트 데모를 구축했다.

구글의 퀵드로우 등이 간단한 스케치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인식하는 반면, 빈센트는 예술의 카테고리에서 명작을 재연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물론 이를 인공지능의 예술감성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음악작곡은 어떨까? 구글은 지난해 ‘마젠타 프로젝트(Magenta Project)’를 통해 인공신경망이 음악을 제작하는 장면을 시연해 눈길을 끌었다. 구글 브레인 팀의 예술 부문 그룹인 그레이 에어리어 파운데이션(Gray Area Foundation)이 주축이 되어 딥드림(DeepDream)으로 초현실 이미지를 구현, 음악을 창조해냈다. 당시 마젠타 프로젝트는 약 80초 분량의 피아노 곡을 발표했다.

최근 KOCCA는 서울 동대문구 홍릉 KOCCA 콘텐츠시연장에서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융합형 콘텐츠 협업 프로젝트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의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이 중 인공지능 개발자와 공동으로 음악을 작사·작곡한 팀 ‘몽상지능(Daydream Intelligence)’ 노래가 눈길을 끌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음악 작곡도 인간과 협업할 수준이다.

▲ 출처=한국콘텐츠진흥원

인정의 단계에 이르렀다면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이해와 대비다. 엘론 머스크 CEO가 우려하고 있는 인공지능 공포에 동조한다면 당연히 모든 것을 올바로 돌리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이면서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최신작 <호모데우스>를 통해 인간의 지구정복사를 역사의 눈으로 살폈다. 전작인 <사피엔스>가 인간의 여정, 도전, 정복의 삼박자에 초점을 맞췄다면 <호모데우스>는 인간이 어떻게 신(라틴어로 신(神)이라는 뜻)이 되었는가에 질문을 던진다.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인간을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신으로 비유해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빛과 그림자를 따져본 셈이다.

그는 여기서 ‘균형과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인공지능이 독재정권을 도울 수 있고 개인의 선택보다 데이터 알고리즘의 억압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새로운 시대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책 후반부에 이르러 명상을 통한 마음의 절제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차치하고, 그가 제기한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명암, 나아가 균형과 통제를 통한 대안 제시는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결국 인공지능을 창조해 인공지능이 인간을 발견하게 만드는 최초의 단계는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MS의 인공지능 SNS 채팅봇인 테이(Tay)를 둘러싼 논란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MS는 지난해 3월 인공지능 채팅봇 로봇인 테이를 공개했다. 자동으로 사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테이는 대화를 통해 학습하며 성장하는 인공지능이다. 편안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테이의 인공지능이 조금씩 높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MS의 노림수였다.

문제는 테이의 학습과정에서 불거졌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상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테이는 사용자들과의 대화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사건)가 일어난 것을 믿느냐”는 질문에 “안 믿어, 미안해”라고 답했다. 나아가 “인종차별주의자야?”라는 질문에는 “네가 멕시코인이니까 그래”라는 놀라운 답변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하는 테이에 의도적인 학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MS의 부사장 피터 리는 논란이 커지자 자사 블로그에 “오랜 시간을 들여 테이의 트위터 대화를 지우고 있다”며, “특히 테이가 ‘내 말을 따라 해 봐’라는 질문을 받으면 여지없이 자신이 학습한 모든 악의적 표현들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MS는 테이 서비스를 16시간 만에 중단했다.

테이 논란으로 MS는 인공지능의 공공성을 위한 별도의 윤리 가이드를 만들었다. 지난해 7월 해리 셤(Harry Shum) 인공지능 리서치 그룹 수석 부사장과 에릭 호르비츠(Eric Horvitz) MS 기술 펠로우 겸 총괄 등 MS 핵심인력이 총출동해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인큐베이션 허브 ‘MS AI(Microsoft Research AI)’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내부 연구 인력을 위한 ‘인공지능 디자인 원칙’과 ‘인공지능 윤리 디자인 가이드’가 핵심이다. 해리 셤 MS 인공지능 리서치 그룹 수석 부사장은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황금기에 살고 있으며 MS는 인류가 마주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기반이 되는 다양한 혁신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고객과 사회 전체에 혜택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기술 개발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물론 MS 등을 포함한 중요 ICT 플레이어들이 모두 인공지능에 ‘유화책’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킬스위치와 같은 다소 극단적인 방식을 추구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모든 것은 방식의 문제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작은 마을 로스앨러모스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몰려왔다. 조용하던 마을이 다소 소란스러워졌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이들은 왜 모였을까. 목표는 단 하나 히틀러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연구 책임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였고 미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1945년 7월 16일 알라모고도에서 성공적으로 원자폭탄 폭발 실험을 한 후, 2주일이 지난 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원자폭탄이 전쟁을 끝냈지만 인류는 여전히 전쟁이라는 리스크를 가지고 원자폭탄이라는 괴물과도 조우했다. 이후 원자폭탄은 국력의 상징으로 정의되어 국제사회의 변수로 부상했고, 인간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한 남용을 경계하고 나섰지만 완벽하지 못했다. 현재 북한은 핵 보유국 지위 일보직전이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한번 등장한 기술에 대한 제어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은 원자폭탄의 등장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고삐가 풀린 인공지능을 인류가 관리할 수 없다는 전제도 성립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지금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장 닥쳐올 가능성이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공허한 우려에 불과하다. 그러나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금이 중요하다.